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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인물들

마가 -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함께 역사 하는 자

작성자이남수|작성시간10.01.07|조회수1,094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 말씀은 마가복음 1장 1절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이 복음서를 쓴 마가의 인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인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답할 것입니다. 이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가라 하는 요한


 사도행전 12장 25절에 “마가라 하는 요한”이라고 마가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요한은 유대 식 이름이고 마가는 로마 식 이름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두 개의 이름을 쓰는 일이 많았습니다. 바울도 사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요.


 사도행전 12장 12절에 “마가라 하는 요한”을 얘기하고 그의 어머니가 “마리아”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의 이름이 마리아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마리아라는 이름은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모친도 마리아였어요. 골로새서 4장 10절에 마가에 대해서 얘기해주는데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소개합니다.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을 했던 사람인데 이 바나바와 관계된 사람이라고 하지요. ‘생질’(국어사전으로는 누이의 아들임)은 ‘조카’ ‘사촌’이라는 뜻인데, 가까운 친척 관계를 나타낼 때도 이 말을 씁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표준 새 번역. ‘바나바의 사촌’).


 베드로전서 5장 13절에는 베드로가 “내 아들 마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혈육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어떤 분은 마가를 예수님의 70인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보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홑이불을 버리고 도망친 젊은 소년이 이 마가였다(막 14장 51-52절)고 보기도 합니다만 확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마가의 어머니는 예루살렘에 집이 있어서 교회의 모임 장소로 제공을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2장 12절에 “마리아의 집”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마가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이 ‘마리아의 집’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을 정도로 꾀 컸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와서 찾아간 곳이 바로 이 마리아의 집이지요. 베드로는 이곳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고, 성도들의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는 이런 베드로와도 접촉을 했을 것입니다. 그가 전하는 말씀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신앙적인 가정에서 생활한 것입니다 자신의 어머니의 집은 교회로 모이는 터전이요, 훌륭한 신앙의 학교였습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학교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삶을 눈으로 보고 맛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전체적인 삶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마가


 사도행전 12장 25절에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 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 11장 27-30절과 연결해서 보셔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온 선지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아가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성령님의 지시를 받아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행 11장 28절)고 예언합니다. 클라우디우스가 황제로 있을 때(기원 후 41년 1월 24일 - 54년 10월 13일), 특히 기원 후 45-48(46년)년 사이에 유대 지역에 극심하게 흉년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께서 이처럼 가르쳐주신 뜻을 잘 깨닫고 유대 교회를 돕기 위해 헌금을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기원후 46년경에 바나바와 사울을 보내어 예루살렘의 장로들에게 헌금을 전달합니다. 이 일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오면서 마가를 함께 데리고 온 것입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마리아의 집에 유숙했을 것입니다. 이때 마가는 바나바와 바울을 만났을 것이고, 특히 친척인 바나바를 통해서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마가는 바나바와 바울을 따라서 안디옥으로 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의 지시를 따라서 이미 불러 시키신 일을 위해서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웁니다. 이렇게 해서 제 1차 전도여행이 이루어집니다. 이 여행은 기원 후 47년경부터 48년까지 있었습니다(사도행전 13장 1절 - 14장 28절). 이때 사도행전 13장 5절을 보면 마가가 수행원으로 함께 갔습니다. 안디옥에서 실루기아로(안디옥 서쪽 26km 해안) 내려가 배를 타고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로 갑니다. 그곳에서 구브로 섬 동쪽 해안에 위치한 살라미에 가서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고 바보(살라미에서 약 140km 떨어짐)로 갑니다.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고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갑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사해행전 13장 13절에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렀을 때 요한이 즉 마가가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하지요. 바울과 바나바는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갑니다. 13장 1절의 수리아의 안디옥과는 다른 곳입니다. 밤빌리아는 동서 너비가 약 120km, 남북의 길이가 약 48km 정도 되는 비옥한 평야 지대인데 타우루스(Taurus) 산맥이 북쪽에서 남쪽 해안까지 이어져 있다고 합니다. 해안 지대는 좁은 지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버가(‘탑’이라는 뜻)는 이 밤빌리아 주의 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버가는 지중해에서 약 12km 내륙에 있는 케스트루스 강 서쪽 8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도여행은 계속 되었지만 마가는 이곳에서 도중에 이탈한 것입니다.


 마가가 이곳에서 왜 돌아갔는가에 대해서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전도여행을 하면서 보니까 자신의 사촌 바나바가 주도적이어야 했는데 바울이 그랬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고, 어떤 분은 풍토병(말라리아) 때문으로 보기도 하는데, 아마도 이 여행이 힘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전도여행은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파선의 위험, 강도의 위험, 대적들의 위험 등. 사도행전 15장 38-39절을 보면 마가의 이런 행동은 바울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을 보아 힘든 길이었기 때문에 돌아간 것 같습니다. 마가가 도중에 왜 돌아갔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그의 인생에서 크게 실수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때의 일이 문제가 되어 제 1차 전도여행 때는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갈라서서 복음을 전하는 현실로 이어집니다. 사도행전 15장 38-39절에 나오지요. “서로 심히 다투었다”고 합니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마가를 데리고 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는 택하여 움직입니다. 2차 전도여행은 기원 후 50년에 시작이 됩니다. 아마도 마가는 바나바와 함께 하면서 더욱 영적인 장성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마가는 자신으로 인해서 벌어진 일을 가지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 생각을 하고 자신에게 있는 결핍을 극복하고자 더욱 전진했을 것입니다. 이런 마가를 후에는 바울도 인정을 해줍니다. 사람이 자신의 생애에서 이것은 없었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했던 것은 그런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을 극복하면서 계속 진보하고, 장성해 나가는 것, 넘어졌다 해도 다시 일어나서 갈 줄 아는 것, 이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견고하게 있으면 이런 길을 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함께 역사 하는 자


 빌레몬서 24절에 바울은 마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나의 동역자”라고 합니다. 이 빌레몬서는 바울이 첫 번째 로마에서 구금 되어 있을 때 쓴 옥중서신입니다. 그 구금 기간이 기원 후 60-62년인데 빌레몬서는 이 기간 중에 썼습니다. 마가의 문제로 바나바와 다투었던 것이 50년에 있었으니까 약 10년이 지났습니다. 10년이 지나서는 바울이 마가를 ‘나의 동역자’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골로새서도 이 구금 기간에 쓴 서신인데 골로새서 4장 10-11절에 이 마가에 대한 얘기가 또 나오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4장 10-11절을 봅시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 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 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세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입니다. 이들은 ‘할례파’입니다. 유대인 태생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아리스다고(‘최상의 지도자’라는 뜻. 이방인 이름임. 그러나 헬라파 유대인임)는 바울이 나와 함께 갇혔다고 합니다. 직접 감옥에 갇힌 것인지 감옥에 갇힌 바울을 돕고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소개하고 골로새 교회에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기쁘게 환영하라고 합니다.


 여기 나와 있는 세 사람에 대해서 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 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있을 수 있지만 사도행전 28장 30-31절에 바울이 로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다”고 하시는데 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 의미를 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바울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신약에서 이곳에서만 이 ‘위로’라는 말이 사용되었는데 사도 바울의 고통을 잊게 해주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마가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통해서 마가가 이미 주님을 위해서 완전히 자신을 드릴 수 있는 일꾼으로 서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상된 일꾼이었습니다.


 이후에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일한 것 같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마지막 서신인데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합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나의 일’은 곧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입니다. 그 일에 유익한 존재라고 하십니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날 시각이 얼마 남지 않음을 생각하고 마가를 보고 싶어 하였습니다. 이 마가가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전해내려 오는 얘기로는 후에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워 최초의 감독으로 일했고, 에베소에서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마가가 예수님에 대해서 바르고도 깊은 인식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서 신앙이 장성했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유익한 존재가 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을 다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기념비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로 서 나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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