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에 대해서는 서신 서에 3번 나오고 있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으로서 사도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참된 일꾼으로서 그의 생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의 생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런 누가의 생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누가에 대한 기록
2세기에 쓴 것으로 보이는 『누가복음 소개문』에서 누가에 대해서 고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누가에 대한 자료를 볼 수가 있습니다.
『누가는 수리아 안디옥 출신의 직업 의사였다. 그는 또한 사도들의 제자였으며, 후에는 바울을 수행하여 그가 순교하기까지 같이 다녔다. 누가는 아내도 자녀도 없이 일심으로 주님만 섬겼으며, 84세의 나이로 베오디아에서 성령에 충만하여 잠들었다1).』
수리아 안디옥은 바울과 바나바가 1년 간 가르쳤고(행 11장 25-26절)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했던 안디옥 교회(행 13장 1-3절)가 있던 그곳인데, 이곳 출신으로 직업 의사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도 다음과 같이 누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안디옥 태생의 의사로서 바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나머지 사도들과도 친숙히 알고 지냈다. 그는 자신이 그들에게서 얻은 신령한 치료의 기술의 개요를 두 권의 영감 된 책으로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그 중 한 권이 누가복음이다. 그는 이 복음서에서 자신은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가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기록하였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을 좇았다고 증언하였다. 또 한 권의 저서는 사도행전이다. 이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일이 아니라 친히 목격한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특정한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나의 복음”이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누가복음을 언급한 것이라고 한다2).』
유세비우스는 누가가 한 일 중에 중요한 것이 두 권의 책, 곧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남겨준 것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이런 기념비적인 일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에 대한 서신서의 기록
서신 서에는 누가에 대한 기록이 3번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골로새서 4장 14절을 봅니다. 이 골로새서는 62년경에 감옥에서 쓴 서신입니다.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 말씀에 누가를 “사랑을 받는(아가페토스) 의원 누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가”라는 이름의 뜻은 “빛”입니다. “사랑을 받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관계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까울 것이 없는 소중한 존재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두기고”에 대해서도 이런 표현을 쓰고 있지요. “사랑을 받는 형제”라고. 누가는 의사로서 바울과 함께 하면서 바울을 돌보았을 것입니다. 그의 돌봄은 단순한 의사로서 돌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대가 없이 돌보는 행위였습니다. 그는 평생 바울을 돌보았지만 그 대가로 한 푼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바울이 소중함을 인식한 행위였습니다. 누가는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바르게 인식했고, 바울의 위치를 알았던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골로새서 4장 10-11절을 보면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가 나오는데 이들은 유대인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 하는 자들”(11절)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고 있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에 함께 일하는, 신뢰할만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소개되고 있고 “애써 기도하는 사람”으로 소개된 12절의 “에바브라”, 14절의 “누가와 데마”는 헬라인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누가는 신약 성경 저자 가운데 유일한 이방인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곧 이방인으로서 있다고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했고, 사도 바울과 함께 하면서 복음 사역의 협력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누가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는 곳은 빌레몬서 24절입니다. ‘누가’에 대해서 누구라고 소개하고 있는가, 봅시다.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누가는 의사로서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에 큰 도움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었을 때 누가의 도움은 큰 가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20절을 보면 ‘드로비모’를 병이 들었기 때문에 ‘밀레도’에 머무르게 했는데, 이것은 누가의 조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조병수).
여기에서 바울은 누가를 “나의 동역자”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동역자”는 “함께 일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이 일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이 인생의 참다운 가치임을 인식한 사람들입니다. 누가는 여기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인 “의사”의 직업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누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무엇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지 알았던 사람입니다.
세 번째로 언급되고 있는 구절은 디모데후서 4장 11절입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옥에 있었는데 ‘누가’가 어떻게 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서신으로 65년쯤에 쓴 것으로 보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1절을 봅시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이때는 사도 바울이 자신이 “떠날 기약이 가까웠음”(딤후 4장 6절)을 생각하고 있는 시간이요, 감옥에 있기 때문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함께 했던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10절). 사도 바울을 해롭게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14절). 이러한 때에도 누가는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여기서 누가는 바울의 구술을 받아서 이 서신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누가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여 떠난 데마와는 달리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임을 누가의 생은 얘기를 해줍니다. 시간이 가도, 고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한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충성”의 참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누가
누가가 사도 바울과 합류해서 함께 한 곳이 어디일까요? 사도행전 16장 8-12절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이때는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때, 주후 50년쯤입니다. 로버트 L. 레이먼드는 그의 『바울의 생애와 신학』에서 “16장 10절의 ‘우리’라는 말로 볼 때에, 여기서 세 사람(바울, 실라, 디모데)으로 이루어진 선교 팀에 누가가 합류하게 되고, 이제 네 사람이 된 선교 팀은 즉시 유럽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p. 198.)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절에는 “나”로, 사도행전 1장 1절에는 “내”로 얘기하다가 후에 “우리”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20장 1-12절까지, 27장 1-8절까지 보면 ‘우리’의 그룹이 나옵니다. 27장 1-8절은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가는 상황입니다. 이때 유라굴로라는 폭풍을 만나 배가 부서지기도 했는데, 누가도 바울과 함께 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에도 바울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쓴 누가
누가가 행한 기념비적인 일, 그것은 바로 성경을 쓴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진리와 교회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일을 행한 것입니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공헌을 한 것입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여기에는 약 60여 년간의 기독교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공통적으로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절과 사도행전 1장 1절에 수신자를 “데오빌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데오빌로(하나님의 친구, 혹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만 “로마 사회의 기독교 지식인 계층의 대표적인 인물”(브루스)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예수님의 지상 사역”(누가복음)과 “예수님의 천상 사역”(사도행전)을 체계적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여기 “한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가는 이것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한 사람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깊게, 그리고 바르게 소개하여 확신하는 신앙으로, 성숙한 신앙으로 세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을 바로 세우고자 시간을 투자하여 글을 썼던 것입니다. 이 열정은 곧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그의 열정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열정은 누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가졌던 열정입니다. 사도 바울도 보면 골로새서 1장 28절 같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도 바울의 열정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8절을 봅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사도 바울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 성숙한 자로 세우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각 사람이지만 그 각 사람에게 “모든 지혜”를 쏟아 부었습니다. 누가에게도 이런 열정이 있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장 3절에 누가는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폈다”고 얘기합니다. 누가는 예수님에 대해서 소홀히 하지 않고 그 분의 시작부터 부활하셔서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는 모든 부분까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배우는 학도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고 많은 증인들의 얘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평생에 가장 중심에 놓여 있는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최고의 관심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중심적인 관심사였습니다.
예수님께 대해서 참된 관심을 갖지 않고는 진정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누가는 모든 교회가 자신처럼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최고의 관심을 갖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의 의미를 바로 알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배우고 풍성하게 이해하십시오.
누가복음 1장 3절에 누가는 수신자를 “각하”라고 부르고 있는데, 사도행전 24장 3절을 보면 “각하”는 총독 같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 쓰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결핍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곧 누가는 영적인 결핍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참된 지혜는 이런 영적인 결핍을 볼 줄 아는 데서 드러납니다. 영적인 결핍은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에서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결핍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의 영적인 결핍은 큰 것입니다.
누가는 영적인 결핍이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풍성한 글을 썼습니다. 이 영적인 결핍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진정으로 길을 걸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점점 빈곤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빈곤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갈수록 예수님을 모릅니다. 헌법은 아는데 예수님은 모르고, 교회 활동은 배우는데 예수님은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겉으로 볼 때 몸이 커도 철분이 부족하면 빈혈이 생깁니다. 교회가 이런 빈혈 증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많이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서로에게 많이 전해주어야 합니다. 누가로부터 우리는 이것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1) F. F. 브루스. 『바울 곁의 사람들』, 기독지혜사. pp. 43-44.
2)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은성, p.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