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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좇아서

누가복음 7장 31-35절. 예수님의 비유 / 결혼식놀이와 장례식놀이

작성자이남수|작성시간12.04.09|조회수1,448 목록 댓글 0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셔서 가르치시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실 때에 자주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본문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32절에 ‘비유컨대’라고 하셨지요. 31절에 “이 세대의 사람”, 즉 주님 당시의 세대의 사람들을 비유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당시 유대인 사회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평을 하였는가, 비유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32절)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비유는 32절 말씀입니다. 32절을 봅시다.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이 비유는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결혼식 놀이와 장례식 놀이는 사용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아이들이 춤을 추면서 혼인 잔치를 흉내 내면서 놀고 장례식에서 애곡하는 것을 흉내 내면서 놀았습니다.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이런 놀이를 했는데, 예수님께서 이 놀이를 가지고 그 당시 사람들에 대해서 설명하셨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우리’는 누구고, ‘너희’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그 세대 사람들이고 ‘너희’는 요한이나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그 당시 사람들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일에 대해서 이 비유를 사용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는 요한과 예수님이고 ‘너희’는 그 당시 세대 사람들이라는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사람들이 요한과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서 비판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 당시의 세대 사람들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대해서 악평하는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맥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의 그릇된 악평에 대해서 다루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에 대한 악평(33절)

 

예수님께서는 먼저 세례 요한에 대해서 그 당시 사람들이 악평한 일을 얘기하십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누가복음 7장 30절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아니했다고 지적합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했는데, 이들은 이런 요한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게 생각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가 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 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세례 요한을 비판했습니다. 그 당시에 세례 요한은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신 것이 아니고 메뚜기나 석청(石淸)을 먹고 살았습니다. 이런 요한을 보고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사는가?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의 눈으로 볼 때 이런 세례 요한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도 산다면 이런 사람은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귀신이 들렸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비판을 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에 대해서 비판거리를 만들어서 ‘귀신이 들렸다’고 악평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악평(34절)

 

이들 종교 지도자들의 비판은 바른 판단 기준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에 대해서 비판을 했는데, 그 내용이 34절에 나옵니다.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이들이 예수님을 비판한 것은 세례 요한을 비판한 것과는 반대입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먹지 않는다고 했는데 예수님에 대해서는 너무 먹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악평을 한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민중들에게 존경을 받는 그룹들이었고, 이들은 그 당시 민중들의 신앙과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볼 때 예수님은 그들 계층과 특권을 위협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좋지 않는 얘기들을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했는데, 이것은 마태복음 9장 9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의 집에서 많은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면 자신들과 가까이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그 당시에 천대 받고, 죄인 취급당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십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하나님 앞에 참으로 의롭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은 자기-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죄인 됨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사람을 위해서 오셨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세리나 죄인으로 불리는 사람들 속에 있다고 해서 그 인격이 비천해지거나 죄가 묻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악평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에 대해서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악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예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시고,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가를 잘 계시해주는데, 이런 계시의 내용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할 때 예수님을 그릇 대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 사람들이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악평을 하여 비판을 받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이해되지 못하는 현실이 많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취하신 태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악평하는 사람들의 평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이런 악평하는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고 다니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럴 의미가 없음을 예수님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의 진실을 가르친다고 해서 들을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계층이 무너질 것을 염려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악평을 해서 민중들로 하여금 좋지 않은 여론을 갖도록 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녔지만 이들은 대부분 실리적인 것을 추구하고 다녔기 때문에 자신을 떠날 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계승한 제자들을 특별히 세우셨고, 이런 제자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5절 같이 말씀하십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태복음 11장 19절도 봅시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어떤 일을 옳다, 아니다 판단할 때는 어떤 전통적인 시각이나 사람들의 악평을 가지고 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릇된 여론이 많이 있는데 그런 여론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여론을 따라서 판단하는 일이 많은데 이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세례 요한이 33절 같이 행한 것이나 예수님께서 34절 같이 행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정당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어떤 사실을 가르쳐주는지를 올바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혜는 이런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악평, 그 당시의 여론에 따라서 움직이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 나라의 경륜을 알고 그 시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요한이 취한 행동이나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대를 아는 것도 지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에 대해서 바르게 알지 못해서 바르게 평하지 않고 악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3절과 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말씀에 대해서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이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느냐가 아니라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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