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주님께 물로써 세례를 베푼 사람은 세례 요한입니다. 요한은 마태복음 3장 11절에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었다”고 하는데,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세례를 받으셨는가,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 시기의 상황
먼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역사적 상황이 어떤 상황이었는가, 봅시다. 누가복음 3장 1-2절에서 이 상황을 가르쳐줍니다. 누가복음 3장 1-2절을 봅시다.
“디베료(티베리우스) 가이사가 위에 있은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이 시대는 ‘디베료’(티베리우스. Tiberius)라는 로마의 황제(2대 황제)가 통치하던 시대임을 가르쳐줍니다. 디베료가 왕위에 있은 지 열다섯 해(15년)라고 했습니다(기원후 12-37년 3월까지 통치. 어떤 분은 14년부터 통치했다고 함). 이 때는 주후 27년쯤 됩니다.
‘디베료’(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양자였습니다. 이때의 ‘양자’는 ‘남의 자식이 있는데 그 자식을 내 호적에 넣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로마법에서 “주인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양자가 되었다는 것은 곧 상속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티베리우스는 새로운 정복 사업을 잘 시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해군을 강화시키고 검투사 경기를 벌이는 관습은 없앴다고 합니다. 유대인 4명이 한 여인의 재물을 훔치려고 모의했다고 해서 유대인 전체를 로마 밖으로 추방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의 말년이 좋지 않았는데, 고발 풍습이 늘어나고 사람을 자주 처형을 시켜 공포 정치의 성격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누군가에 의해 담요로 질식당해 죽었습니다.
이 때의 유대의 총독은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이 사람은 우리의 신앙고백에도 나오는 사람입니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5대 총독으로 기원 후 26년부터 35년까지 통치하였습니다. 아그립바는 빌라도가 “아주 고집스럽게” 유대인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빌라도는 “고집불통이며, 방자하고 잔혹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빌라도는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의 말에 의하면 “자살로써 스스로를 심판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를 무섭게 뒤쫓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갈릴리의 분봉왕은 헤롯입니다. 이 사람은 헤롯 안디바스입니다. 아버지 헤롯 대왕이 주전 4년에 죽고 난 이후부터 주후 33년까지 다스렸습니다. 대제사장은 가야바(주후 18-36년)였습니다. 주후 7년부터 15년까지는 그의 장인 아나스가 대제사장 노릇하다가 시위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안나스는 계속 실세를 가지고 행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때의 유대인의 상황은 어떠할까요? 누가복음 3장 15절을 봅시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백성들은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이 유대인들에게는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기다림은 더욱 간절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공생애의 시작
주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먼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이때의 주님의 나이는 누가복음 3장 23절에 의하면 30세쯤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었더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사촌 관계였지만 그 이전에 서로 접촉이 없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1절에 세례 요한이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고 얘기한 데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보냈고,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가정을 충실히 돌보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서로 접촉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심의 의미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3장 11절에 세례 요한은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3장 6절을 보면 백성들이 죄를 자복할 때 세례를 주었고, 8절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의미로 세례를 받았다면 예수님은 죄가 있는 분이 되고 그렇다면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은 죄가 있어서, 회개할 것이 있어서 받으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심의 의미는 첫째로 요한복음 1장 31절 말씀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1절을 봅시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나타내기 위함입니까? 33절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분은 곧 34절에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선포가 되었지요.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즉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주신 것은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이심을 잘 가르쳐주십니다.
둘째는 마태복음 3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의미를 또 한 가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주님께서는 자신이 받는 세례는 모든 의를 이루는 수단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입니다. ‘모든 의’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거룩한 뜻입니다. 즉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주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합당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올바른 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14절에 요한은 자신이 도리어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의로운 일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순종하는 일임을 가르쳐주는 의미도 있지만 세례 요한이 지금까지 행한 일을 인정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증거 했는데 이것이 합당한 증거의 내용임을 인정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어도 세례를 받으셨는데 이것은 장차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룰 것임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7절과 고린도후서 5장 21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여 하심이라”(히 2장 17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장 21절)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과 동일시 되셔서 그의 백성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죄가 없지만 세례를 받으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중요한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저주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시고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은 바로 이런 구속자로서 이 땅에 오셨음을 잘 보여주는 행위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