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료모음집

역사서 각권의 신학적 메시지 - 김지찬교수

작성자이남수|작성시간12.03.19|조회수386 목록 댓글 0

역사서 각권의 신학적 메시지 - 김지찬교수(총신 신대원)

 

우리는 구약 성경 중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까지를 역사서라고 부른다. 이 역사서 각권의 신학적 메시지를 각권의 구조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여호수아서

1. 입성

1:1-5:12

하나님 : 요단을 건너라

2. 정복

5:13-12:24

하나님 : 여리고를 취하라

3. 분배

13:1-21:45

하나님 : 땅을 나누라

4. 미래

22:1-24:33

여호수아 : 여호와를 섬기라

 

여호수아서는 “셋 더하기 하나”구조로 되어있다.

 

즉, 여호수아서는 크게 네 부분인 입성, 가나안 정복, 가나안 땅 분배, 미래의 문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4단락은 주도권이라는 관점에서 3+1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첫 세 단락은 하나님의 주도권적인 명령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네 번째 단락에는 하나님의 주도권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이 단락의 바로 앞에 있는 21: 43-45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성취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하셨으므로 이제 남은 것은 인간 편의 반응이라는 것이다.

 

제 4단락에는 하나님 편의 주도권이 나타나지 않는 대신 사람 편에서 여호수아가 취한 세 번의 주도권이 나타난다. 여호수아의 세 번의 주도적 부름은 “여호와를 향한 섬김 ”이라는 주제로 이어짐을 볼 수 있다. 결국 네 번째 단락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분배 받는 목적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 목적은 바로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여호수아서의 3+1의 구조를 통하여 볼 수 있는 신학적 메시지는 온 땅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시고 분배하여 나누게 하시면서 그 목적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는데 있음을 볼 수 있다. 땅이 없다가 땅을 갖게 된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참 자유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다. 이는 토라,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나타난다.

 

②사사기

 

사사기는 삼부구조로 되어있다. 서론(11:1-3:6), 본론(3:7-16:31), 결론(17:1-21:25)으로 쉽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음악에 비유하면 서곡, 주요악장, 코다로 볼 수 있다. 서곡에서는 이스라엘의 사명 미완수가 나타난다. 이는 이스라엘의 정복의 실패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가 그 내용이다.

 

주요악장에는 징계와 여호와의 신이 임한 사사들의 구원이 나타난다.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아비멜렉,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 삼손이 여호와의 신이 임한 사사들이다. 마지막 코다에서는 종교적 혼란과 도덕적 부패가 주요 내용이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종주인 여호와께 불충성하고 불순종하는 백성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사사기의 주요악장(3:7-16:31)에서는 “범죄-진노-압제-부르짖음-구원-재범죄”의 순환이 무려 6번이나 반복되어 나타난다. 이 같은 반복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성격이 “위기의 신앙”임을 잘 보여준다. 어렵고 힘들 때만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다시 옛날의 불순종의 상태로 돌아가는 모습이 사사기에 잘 나타난다.

 

그러면 사사기가 보여주는 이스라엘의 죄악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알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린”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단 한번도 여호와를 버린 적이 없다. 그러면 “바알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고 바알도 섬긴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행위를 이스라엘이 자신을 버린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십계명의 제1계명의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을 어긴 것이다. 그러므로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안식의 땅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불안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음을 볼 수 있다.

 

③룻기

 

룻기는 드라마 구조로 볼 수 있다. 서막(1:1-6)과 결미(4:13-22) 그리고 그 사이에 4개의 막들(1:7-4:12)로 이루어진 드라마틱한 내러티브 구조를 가지고 있다. 룻기에는 “흉년과 풍년”(1:1,6), “이민과 귀향”, “즐거운 자와 쓴 자”(1:20), “풍성함과 텅 빔”(1:21)등의 이항 대조의 형태가 나타난다.

 

특별히 “공허와 채움”의 패턴은 룻기의 주제를 드러내고 플롯을 전개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막과 결미는 텅 빔과 채움의 전체적인 틀을 드러내고 있으며, 중간의 막들은 텅 빈 나오미의 삶이 어떻게 풍요로움으로 채워지는가를 말해 준다. 나오미의 삶을 텅 빔에서 채움으로 변형시킨 것은 룻과 보아스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룻의 죽음에 이르는 충성과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있을 것을 각오하고 룻과 결혼하여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수행하는 보아스의 인애를 통해서 피폐해진 나오미의 삶을 풍성하게 바꾸신다. 이는 룻기의 하나님은 이적으로 그의 백성의 메마른 삶을 풍요롭게 바꾸지 않으시고 믿음의 공동체가 서로 돌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의 원리는 인애의 삶이라는 메시지이다. 마지막으로 룻기의 나레이터는 결미에서 족보를 말함으로써 나오미의 삶이 룻과 보아스의 비이기적인 사랑과 충성을 통해 풍성하게 채워진 것처럼 여호와께서 여호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한 이들의 후손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을 사사 시대의 불안에서 참 안식으로 인도하였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 족보의 궁극적인 목적은 위대한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④사무엘서

 

사무엘서는 한나의 기도와 다윗의 기도로 둘러싸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삼상 1장의 한나의 불임을 출생으로 고통을 찬양으로 고독을 예배로 바꾸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한나의 삶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삶도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성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무에서 새로운 역사적 가능성을 창조하시는 여호와의 변형의 능력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무엘서 내러티브이다.

 

이 같은 강조점은 마무리하는 사무엘하 24장에도 나타난다. 이스라엘의 삶이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성에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서 결론 부분에 이르게 되면서 다윗 왕이 자신이 이루어 놓은 업적에 고무되어 이제 이스라엘은 스스로 일을 해결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려 인구 조사를 한다. 이로써 다윗은 죄를 지어 죄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된다.

 

사무엘서는 이를 통해 한나가 불임 가운데서 신뢰로 아이를 얻고 경배하였듯이 다윗은 교만으로 백성 7만을 잃고 회개 가운데 하나님께 돌아서기만 한다면 하나님을 경배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수 있을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이 사무엘서의 복음이다.

 

또한 사무엘서는 한나의 노래와 다윗의 노래로 둘러싸여져 있다. 이 두 노래는 승리의 노래로서 여호와의 구원의 행위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승리하시며, 그의 겸손하고 고통 받는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으로서 칭송받고 있으며, 이 같은 구원과 승리가 미래를 보장해 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무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역전의 하나님임을 선포하고 있다.

 

사무엘서 전체를 훑어보면 여호와께서는 고통당하는 자를 구원하시고 더 나아가 고통을 가한 자들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신다. 한나가 브닌나를 이기게 하시고 다윗이 사울을 무너뜨리고 승리하게 하신다. 반면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넘어뜨리신다. 이를 우리는 브닌나와 엘리의 아들들과 골리앗과 블레셋과 사울과 압살롬이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볼 수 있다. 심지어 밧세바와 인구 조사의 행위로 드러난 다윗의 교만을 꺾으시고 그를 넘어뜨리시는가를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임을 알 수 있다.

 

⑤열왕기

 

우리는 열왕기가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설교된 역사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열왕기상하를 읽으면 열왕기가 삼부구조로써 세부분으로 나누어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솔로몬 통치(왕상 1:1-11:43)와 북방 왕국 멸망까지의 분열 왕국의 공관 역사(왕상 12:1-왕하 17:41)와 유다왕국, 히스기야에서 바벨론 포로기까지(왕하 18:1-25:30)로 나누어진다. 첫 부분은 솔로몬의 내러티브로 볼 수 있다.

 

솔로몬의 내러티브는 열왕기 전체를 이해 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해 준다. 솔로몬 내러티브의 구조는 둘로 나누어진다. 율법을 잘 지키는 지혜로운 왕으로써의 솔로몬(왕상11-11장)과 율법을 어기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말과 여자와 부를 추구하는 솔로몬의 모습(왕상9-11장)으로 대조된다.

 

두 번째 부분 북방 왕국 멸망까지의 분열 왕국의 공관 역사(왕상 12:1-왕하 17:41)는 왕국과 동시대에 통치하던 왕들의 이야기로 “등극공식”과 “죽음 공식”이라는 두 틀이 한 왕의 이야기를 감싸고 계속 나타남으로써 두 왕국의 왕들의 내러티브를 하나의 연속된 역사로 이어주고 있다.

 

특별히 열왕기는 엘리야와 엘리사 등이 어떻게 왕정이 후원하는 바알 숭배를 무너뜨리고 승리하게 되었는지를 중심에 위치시켜 말함으로써 바알과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대조를 통해 열왕기상하의 중심 주제인 인간의 주도성을 나타내는 왕들과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선지자들 사이에 나타나는 대립 구도를 강하게 드러낸다.

 

등극 공식에 나타나는 평가는 매우 도식적이다. 북방 이스라엘 경우는 “여로보암의 죄”를 지었는가의 여부로, 남방 유다 경우에는 “다윗의 길”을 따랐는가의 여부로 간단하게 평가하고 있다. 열왕기 기자는 등극과 죽음의 공식인 프레임워크의 신학적 공식 안에서 “여로보암의 죄”의 반복적이고 고정적인 언어를 사용을 통해서 왕국의 멸망은 죄로 말미암아 불가피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인 유다왕국, 히스기야에서 바벨론 포로기까지(왕하 18:1-25:30)에서는 죄로 말미암아 북방 이스라엘은 멸망당하나 이스라엘은 무려 400년동안 다윗의 왕조가 지속된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으로 인해 다윗 왕조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열왕기 기자는 여기서 이스라엘에게 임한 운명과 동일한 처벌을 받지 않으려면 유다가 개혁할 필요가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그러나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이 있었으나 남 유다 역시 죄악으로 인해 멸망하여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고 만다. 열왕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옥에 갇혀있었던 여호야긴의 석방의 이야기함으로써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여호야긴은 죄수로 죽지 않았고 바벨론 왕의 존경 받는 손님으로 죽는다.

 

여기서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듣는다. 땅과 왕과 성전을 상실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모든 희망의 종결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들을 상실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새로운 땅과 새로운 성전에 이르는 신앙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땅과 새로운 성전으로의 회복은 하나님에게만 달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열왕기는 회개와 신앙을 촉구하며 미래를 기대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희망의 메시지인 셈이다. 열왕기가 우리에게 주는 신학적 메시지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것은 여호와께서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저주로 내리신 것임을 밝힘으로써 열왕기는 여호와께서 역사의 주인이심을 선언한다.

 

그리고 열왕기는 왕들과 백성들의 죄를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회개 할 것을 촉구한다. 열왕기에서는 다윗의 언약이 왕의 행동에 의존하는 것으로 재해석되지만 왕상 9장의 “왕조 하사 계약”을 통해 우리는 다윗의 언약이 아직 유효함을 보여주며 마지막 여호야긴 왕의 석방과 바벨론 왕의 식탁에서의 영예를 통해 그 희망을 보여준다.

 

⑥ 역대기

 

역대기는 삼부구조로 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족보가 나오는데 창조부터 회복까지 나온다.(대상1-9장)

 

이 부분에서의 중심 주제는 이스라엘의 원래적 통일성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이스라엘의 보존이다. 여기서 우리는 재건된 성전이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면서 시작한 사역의 지속 혹은 회복을 가리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성전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 창조 이래로 이스라엘과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 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부분은 통일 왕국 시대의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이다.(대상10-대하9장)

 

이 부분의 중심 주제는 두 가지로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말씀으로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하사하시겠다는 약속(대상 17:3-14)과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으로 성전 봉헌에 대한 응답으로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이다.(대하7:12-14) 이 부분은 역대기의 신학적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영원한 왕조를 하사하시겠다는 약속과 솔로몬에게 말씀하신 성전 봉헌에 대한 응답으로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헌신을 강조 할뿐 아니라 기도의 집으로서,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의지의 상징으로서 성전의 중심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였고, 성전에서 기도할 때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기에, 하나님께서 포로 후기에도 언약에 충실하시다면 이스라엘은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이며, 오늘의 삶을 지속할 용기를 얻게 될 것을 말해 준다.

 

마지막 부분으로 분열왕국 시대의 유다 왕들의 통치가 나타난다.(대하10-36장) 이 부분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다루시는 기본 원리 제시이다. 여기에서 역대기 기자는 특정한 행동 방식에 따라 세 왕씩 묶는 트리오 패턴을 사용하여 역대기의 주요 주제인 각자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과 회개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드러낸다.

 

역대기의 구조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역대기의 신학적 메시지는 창조로부터 재건된 성전으로 끝나는 역대기의 큰 틀은 이스라엘이 교회, 예배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의 피력이다.

 

또한 성전은 회개하면 하나님의 용서가 있는 회개와 용서의 장소이기에 역대기 기자는 다윗의 언약과 성전의 강조를 통해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여 말한다. 역대기 저자는 성전 외에 포로 후 유다 공동체의 언약의 삶의 핵심 요소로 율법과 선지들의 소유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신뢰함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⑦에스라-느헤미야

 

에스라- 느헤미야의 구조와 의미를 여는 중요한 “문예 열쇠”는 귀환자 명단이다. 에스라의 2장과 느헤미야7장의 귀환자 명단의 반복은 그 사이에 놓여 있는 장들을 통일 시키며, 에스라2장부터 느헤미야7장까지를 하나의 중앙 단락으로 형성시키는 인클루지오 기능을 감당한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전체 구조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로 고레스가 유다 포로민들에게 원하는 자는 누구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여호와의 집을 지을 것을 허락하는 조서를 내리자(스1장)

 

두 번째 부분으로 포로 귀환민들이 이에 따라 하나님의 집을 지은 것이다.(스2장-느7장)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부분으로 공동체가 율법에 따라 하나님의 집의 완공을 축하하는 것으로 끝난다. (느8-13장)

 

특별히 중앙 단락에 위치한 두 번째 부분은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민들이 권위 있는 문서(왕들의 조서와 율법)에 따라 하나님의 집이 어떻게 건설되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 건축이 세 명의 페르시아 왕, 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의 통치에 걸쳐서 일어났으며, 예루살렘 성전과 거룩한 자손과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집이 궁극적으로 완공된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에스라-느헤미야의 신학적 메시지는

 

첫째, 성전 재건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것이다. 즉 포로 후 하나님의 집의 재건은 궁극적으로 여호와의 사역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권력들을 이용해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신 것처럼 그의 백성을 재건하실 때에도 세상의 권력들을 이용하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둘째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일반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 성분으로 강조한다. 귀환자들의 명단을 반복함으로써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지도자들이 아니라 많은 백성의 행동 참여를 통해 역사가 흘러간다는 점을 강조한다.

 

셋째, 하나님의 집을 성전에서 거룩한 자손들과 예루살렘 시로 확대된다. 마지막으로 에스라-느헤미야서는 놀랄 정도로 많은 문서들에 의존해 있는 것의 기록을 통해 본문의 권위를 부각시킨다.

 

⑧에스더

 

에스더서의 구조는 역전의 패턴이 지배하고 있다. 또한 에스더서에는 놀라우리만치 일련의 “동시 발생적 사건”(우연)이 나타난다. 이런 일련의 우연의 일치들은 특정한 방향, 즉 완전한 180도 반전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이런 일련의 삶의 현상을 “페리페테이아” 즉 “운명의 역전”이라고 부른다. 페리페테리아의 원리를 통해 우리는 인간 삶은 인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 통제 밖의 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 결국 에스더에 있는 우연의 일치와 “페리페테이아” 원리는 사건의 표면 아래에 숨어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행동을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에스더서의 신학적 메시지는 첫째 우리는 에스더서를 통해 포로민들의 라이프스타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에스더를 통해서 여호와와 전통적인 여호와 종교에 충성을 보이면서 이방 세계에서 풍요롭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둘째, 에스더서는 하나님에 대한 명시적 언급은 없지만 인간의 삶 가운데 눈에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 방식을 주목하여 보여 준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