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절.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
천부장은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이 천부장의 계획입니다. 바울이 천부장에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묻습니다. 그러자 천부장이 ‘네게 헬라 말(Greek)을 아느냐?’ 묻습니다. 바울이 헬라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가졌습니다. 그는 바울이 유대인이라 헬라 말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헬라 말은 애굽에서 널리 사용되었고, 국제적인 언어였습니다. 바울은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려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용기를 볼 수 있습니다. 분노한 폭도들을 향해 정면으로 서서 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 38절.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
천부장은 바울에게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이 아니냐?’ 묻습니다. F. F. 브루스는 3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주후 53년쯤). 자객은(헬. 시카리온) 라틴어 ‘시카리’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짧은 단도를(sica) 가진 자입니다. 단검을 옷 속에 감추고 다니면서 군중 가운데 있다가 사람을 찌르는 일을 하였습니다. 반로마적인 극단주의자들입니다. 요세푸스 기록에 의하면 수를 3만 명이라고 했는데, 잘못된 숫자일 것입니다. 애굽인은 4천 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취하기 위해 감람산으로 간 애굽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도시의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를 따르는 자들 가운데 400명이 죽고, 200명이 잡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지도자는 도주하였습니다. 그 도주한 지도자가 다시 나타난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 39절.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
바울은 그들과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유대인이다’고 합니다. ‘소읍(小邑)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22장 3절) 시의 시민’이라고 말합니다. 다소 출신 유대인이지 그런 소요를 일으킨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소읍이 아니다’라는 말은 ‘평범하지 않은 도시’라는 뜻입니다. 대단한 도시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다소는 작지 않은 도시입니다. 바울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 40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
천부장이 바울의 요청을 들어줍니다. 신분이 보장되었기에 군중을 향해 연설할 수 있도록 합니다. 바울은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조용히 한 후 히브리 말로 말합니다. 히브리 말은(26장 14절) 아람어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층계의 꼭대기에 서서 저 아래 성전 바깥뜰에 서 있는 유대인들을 향해 아람어로 말했을 것으로 봅니다(F. F. 브루스).
| 22장 1절.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
‘부형(父兄. 아버지와 형제들)들아’는 스데반도 사용했던 표현입니다(행 7장 2절). 연로한 자들에 대한 존중의 용어일 수도 있고, 몇몇 제사장들이나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들이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변명’(헬. 아폴로기아. 24장 10절. 25장 8절. 26장 1절. 24절. 19장 33절)은 변증적 성격을 가집니다. 법정에서 제기된 고소에 대해 합당하게 답변하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증언의 개념(눅 12장 11절. 21장 12-15절)을 가집니다.
| 2절.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
바울이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자, 무리는 더욱 조용해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듣고자 하였습니다. 대개 디아스포라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하워드 마샬). 1세기에 가장 위대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불리는 필로도 히브리어로 된 모세의 책들은 읽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주의를 끌 수 있었습니다.
| 3절.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
바울은 그의 이력서를 제출합니다. 나는 유대인이라고 합니다(빌 3장 5절). 그는 베냐민 지파(롬 11장 1절. 고후 11장 22절)였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은(빌 3장 5절) 바리새인입니다. 길리기아(Cilicia) 다소(Tarsus)에서 났습니다. 그는 다소의 시민이었습니다. 21장 39절에 “소읍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리피테스가 아테네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것을 가져온 것으로 봅니다. 다소는 내륙 쪽으로 16.1km 떨어진 시드누스 강가에 위치합니다. 상업(직물 산업으로 유명함) 중심지, 여행의 교착 지점, 대학 도시, 스토아 철학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은 “이 성에서 자랐다”라고 합니다. ‘이 성’에 대해 어떤 분은 다소로 보기도 하나 예루살렘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유년기에 예루살렘에 온 것 같습니다. 그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받았습니다. 가말리엘은(5장 34절) 힐렐의 손자로 1세기에 가장 존경받는 랍비였습니다. 베냐민 지파 출신이고, 바리새파 교사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주후 50년쯤 별세한 것으로 봅니다. 그는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습니다(갈 1장 14절. 빌 3장 6절). 그리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자”라고 합니다. 그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율법을 준수하려고 한 데서 나타납니다. 로마서 10장 2절에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바울에게도 해당합니다.
| 4절.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한 열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열심으로 “이 도(the Way. 9장 1-4절. 2절)를 박해하였다.”라고 합니다. 그는 교회를 박해하는 열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다고 합니다. 사람을 죽은 것은 스데반의 죽음을 기억하고 하는 말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지지하는 것도 박해입니다.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습니다. 그 외의 박해가 있었습니다(26장 10절). 그는 박해자였습니다(고전 15장 9절. 갈 1장 13절. 빌 3장 6절. 딤전 1장 13절). 그는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5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
바울은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해서는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가(산헤드린 공회 구성원들임. 9장 1절) 증인이라고 합니다. 20년 전 대제사장은 가야바입니다(주후 18-36년 재임). 그는 로마 총독 비텔리우스(Vitellius)에 의해 파면되었습니다. 그가 살아 있을 가능성도 있으나 대개 40-50년 사이에 죽은 것으로 봅니다. 이 당시 제사장은 아나니아(23장 2절)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는 약 220-250km 떨어져 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뿌리 뽑는 일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결박하려고 했던 그리스도인들은 원래 다메섹에 살고 있으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라기보다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하여 간 사람들로 보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브루스). 로마서 10장 2절에 그것은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 6절.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엄청난 경험을 합니다. 오정쯤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바울을 둘러 비치었습니다. 9장 3절 상황에 ‘오정’(26장 13절)을 붙였습니다. 오정의 태양을 능가하는 강렬한 빛입니다. 한낮의 태양보다 더욱 강렬한 빛이 그에게 왔습니다. 그것은 꿈이나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 7절.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
바울은 땅에 엎드러졌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9장 4절).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바울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음성이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십니다. 그는 교회를 박해했는데, 하늘에서 주님 자신을 박해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으로 이 땅에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대하는 자세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 8절.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
바울은 대답합니다. “주님, 누구십니까?”라고. 주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답하십니다. 9장 5절에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나사렛’이 더 첨가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나사렛 출신이심을 밝히셨습니다. 바울은 청중에게 그에게 말씀하신 분의 정체를 더욱 분명히 알도록 ‘나사렛’을 넣습니다. 바울이 박해했던 분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예수님에 대한 박해는 곧 하나님을 향한 대적임을 의미합니다.
| 9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
바울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신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계시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라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대화는 바울과 예수님 사이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9장 7절에 같이 가던 사람들이 “소리만 들었다.”라고 합니다. 소리는 들었지만, 무슨 얘기인지는 알지 못한 것입니다.
| 10절.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
바울이 주님께 대한 반응으로 묻습니다.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그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모든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인식한 것 같습니다. 8절에 ‘나사렛 예수’라고 하셨는데,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님의 답은 다메섹으로 들어가면 바울이 해야 할 모든 것을 누가 이를 것이라고 하십니다(행 9장 6절). 직접 주님께서 알려주시지 않고, 그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십니다. 사람을 써서 일하시는 주님이십니다.
| 11절.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
바울은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6절에 오정쯤 하늘로부터 큰 빛이 그를 둘러 비치었습니다. 그 빛의 영향으로 볼 수 없게 됩니다. 함께 있는 동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가야 했습니다. 26장 14절에 다 땅에 엎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료들은 9절에 빛을 보았지만, 시력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었다가 바로 회복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빛을 경험하는 것이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 12절.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
바울이 만난 아나니아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눅 1장 6절). 다메섹에 사는 모든 유대인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칭찬은 그가 율법을 따라서 사는 경건한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사도행전 9장 10절에 그는 이미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 13절.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
주께서 환상 가운데 아나니아에게 나타난 일은 빠져 있습니다. 바울이 경험하고 있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와 곁에 서서 말합니다. “형제 사울아”라고 부릅니다. 사울을 형제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부른 것입니다. “다시 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아나니아를 통해서 시력을 회복시키십니다. 바울은 즉시 아나니아를 쳐다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바울이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9장 17-18절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 14절.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였다.”라고 합니다.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일어난 일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구약 성경의 계시는 예수님과 신약 교회와 연속성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선택하신 목적을 가르쳐줍니다. 첫째,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그 의인”(the Righteous One)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3장 14절. 7장 52절).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입니다(고전 9장 1절. 15장 8절). 셋째,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친히 듣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친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 15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신 목적(14절)이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이제 “그를 위하여” 즉 그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보고 들은 것을 전파하고 설명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의미합니다(9장 15절. 22장 21절. 26장 17절. 갈 1장 16절). 바울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 앞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브루스는 “그리하여 이제 그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확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바울의 전파에는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신 나사렛 예수가 이스라엘의 메시아요, 영화롭게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고, 인류의 구주라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 16절.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주저하지 말라고 합니다.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롬 10장 12-13절. 고전 1장 2절) 세례를 받고 죄를 씻으라고 합니다(행 2장 38절. 벧전 3장 21절). 세례는 삼위 하나님의 내적인 은혜의 역사에 대한 외적인 표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표이고, 죄 용서를 가시적으로 상징적으로 표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 17절.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
그는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9장 26-30절). 그리고 성전에서 기도합니다. 기도의 장소로 성전을 사용하였습니다. 바울은 성전을 모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황홀한 중에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전의 참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 18절.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
기도할 때 주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아직은 계시가 주어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15절에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지만, 그의 증언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안전을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 19절.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
바울은 자기가 행한 일을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었고 각 회당에서 때렸다고 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행한 일입니다.
| 20절.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
바울은 자기도 증인이지만 스데반도 ‘주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그 스데반이 피를 흘렸습니다. 스데반은 순교의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곁에 서서 찬성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가 산헤드린 공회원에 속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26장 10절).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도 지키었습니다. 그것을 그들도 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그런 사람인 것을 그들이 알고 있는데, 정말 듣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 21절.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
주님께서 바울에게 또 말씀하십니다. “떠나가라”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고 하십니다(롬 11장 13절. 갈 2장 2절. 7절. 행 13장 46절). 15절의 ‘모든 사람 앞에서’의 중심 의도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바울이 떠나야 하는 것은 단지 증언을 듣지 않아서만이 아니라 주님의 계획대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뜻을 신실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 22절.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
바울의 변증적 변명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들이 듣다가 소리를 지릅니다. 분노가 크게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무리는 더 이상 바울이 말하는 것 듣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살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21장 36절). 이방인들에 대한 얘기가 유대인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바울에게 이방인들을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메시지가 그들을 크게 화나게 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 크신 구원 계획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족속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도록 하겠다고 하셨습니다(창 12장 3절). 그런데 유대인들은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지, 그들에게 맡겨진 제사장 나라의 사명은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난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것입니다. 떡은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떡이 굳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전자렌지에 떡을 넣고 너무 돌리면 돌처럼 딱딱해져 먹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 ‘은혜와 감사’를 잊으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굳은 떡과 같이 됩니다.
| 23절.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
무리는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렸습니다. 옷을 벗어 던진 행위의 의미는 명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티끌을 날리는 것은 ① 극도의 비애 표시(욥 2장 12절) ② 저주의 울분 표시(삼하 16장 13절) ③ 애통과 격정 표시(계 18장 19절) 등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대한 행위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에 대한 행위로 먼지를 떨어버리는데(행 13장 51절. 18장 6절) 그것과 같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이 신성 모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바울의 유대인 됨을 거부하는 의미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 24절.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대 |
천부장은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고 합니다. 고문을 해서 이유를 알아내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심문하면 무슨 일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바울이 아람어로 얘기했기에(22장 2절) 천부장은 그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채찍은 그 당시에 아주 무서운 고문 도구입니다. 뼈와 금속이 부착된 몇 가닥의 가죽 끈으로 만들어진 도구입니다. 노예가 외국인들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채찍질에 사람이 자주 죽기도 하고, 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 시민에게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 25절.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
천부장의 명령에 따라 가죽 줄로 바울을 매었습니다. 채찍질하려고 사람을 기둥에 묶는 줄이 가죽 줄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챘습니다. 바울은 곁에 서 있는 백부장에게 말합니다.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말합니다. 로마법은 로마 시민에게는 품위를 떨어뜨리는 처벌을 하면 안 되도록 했습니다. 매질과 십자가형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로마 시민에게는 적법한 재판 절차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 26절.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
백부장은 바울의 얘기를 듣고 신속하게 상관에게 보고합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고 알립니다. 어찌하려 하느냐? 묻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중 시민권을 가지고 삽니다. 하나는 지상 시민권이고 또 하나는 하늘의 시민권(빌 3장 20절)입니다. 바울은 지상의 시민권을 유익하게 사용하였습니다.
| 27절.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
천부장이 직접 바울에게 와서 말합니다. 로마 시민인지 확인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로마 시민임을 밝힙니다.
| 28절.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
천부장은 자기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 당시 로마 시민권을 얻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로마에 대한 뛰어난 공을 세움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상당한 돈을 지불함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셋째, 로마 시민의 가정에서 태어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천부장의 이름이 23장 26절에 글라우디오 루시아로 나옵니다. 글라우디오(Claudius) 황체 치세 때 시민권을 산 것 같습니다(브루스). 루시아는 그가 헬라 태생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이었다고 답합니다. 바울의 아버지나 조상이 어떻게 로마의 시민권을 받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29절.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
심문하려던 사람들(군인들)이 바울에게서 물러갑니다. 바울이 로마의 시민인 것을 알고 즉시 심문을 중단합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인 줄 알고 그를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그가 행한 로마법 위반에 대한 얘기가 상급자에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바클레이는 “가끔 바울이 위엄을 세우려고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그의 임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불필요하게 순교를 초래하거나 무모하게 자기 생명을 내어버릴 이유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는 기꺼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을 준비가 되어 있으나 자기 생명을 던져버리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라고 설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