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절.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
3장 1-18절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의 상황과 자기를 동일시하면서 말씀합니다. 1절에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고난 당함에 절규합니다. 15절에 자기를 쓴 것들로 배 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18절에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언약에 근거해서 소망을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자기의 고초와 재난을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고초는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재난’은 원래 ‘집 없이 유리하는 것, 안식을 누릴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1장 7절에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이라고 하였습니다. NIV는 ‘방황’(wandering. 포로 생활의 경험일 것)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것은 쑥(15절)이고 담즙(5절. 고통으로 번역)이라고 합니다. 쑥과 담즙은 유다 백성이 겪고 있는 고초와 재난을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특별하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단지 기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행동을 취해 달라는 뜻입니다.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에게 친히 개입하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내면에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뜻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3-25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노예로 살면서 고된 노동을 하였고 그 고통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친히 그들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 20절.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
예레미야는 자기의 마음이(히. 나프쉬. 영혼, 생명으로도 번역) 그것을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19절의 ‘고초와 재난’입니다. 그것은 그에게 낙심을 주었습니다. 좌절하게 만들었습니다. 낙심은 깊은 영적 침체를 가져옵니다. 어떤 기억은 우울하게 하고 침체에 빠지게 합니다. 자기에게 있어서 기억은 낙심을 가져왔습니다. 19절에 하나님께서도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면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 21절.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
‘담아 두다’는 말은(히. 아쉬브) ‘돌아오다’(슈브)의 사역형입니다. 그 의미는 그의 마음을 다시 돌이켜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의지적입니다. ‘내가 이것에 대해 생각하였다’라는 의미입니다. 표준새번역은 “그러나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 생각으로 낙심에 무너지지 않고 소망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가 생각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22절에 언급되고 있는 “하나님의 인지하심과 긍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22절.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
예레미야가 21절에 소망을 말한 이유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인자’(히. 하쎄데. 헤쎄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언약적인 사랑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R. 데이비슨은 “하나님께서 결코 자기 백성을 떠나지 않는다는 불변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긍휼(히. 레헴)은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데이비슨은 “그의 자상함과 불쌍히 여김”이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 16장 5절에는 인자와 사랑을 제하고 유다를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 소망을 말합니다. 출애굽기 34장 6절에 근거합니다. 그것은 과거의 말씀이지만 현재적인 경험으로 가져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까? 진멸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현재적으로 고초와 재난을 겪고 있지만 진멸되지는 않았습니다. 헤티 랄레만은 “하나님의 크고 신실하신 사랑과 긍휼은 마치 이 단어들이 문자적으로 22절 사이에 있는 단어들을 감싸듯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감싸 안는다”라고 설명합니다.
| 23절.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
‘이것들’은 22절의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입니다. 그것이 아침마다 새롭습니다. 표준새번역은 “주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신실이 큽니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현재적 관계를 맺으시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기억하고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의 아침은 소망을 품는 아침이었습니다. ‘아침마다’는 날마다 새롭게 주어지는 아침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더욱 공급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시편 30편 5절에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아침은 소망의 빛이고 소망의 시간입니다.
그는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다고 고백합니다. 성실하심(히. 에므나. faithfulness)은 신뢰하다, 신실하다, 한결같다, 견고하다 등의 의미입니다. 트렘퍼 롱맨 3세는 “이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과 그분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끈기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흔히 시편에서 성실하심을 보여주는 분으로 찬양받는다(33편 4절. 92편 2절. 143편 1절)”라고 설명합니다.
| 24절.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
‘내 심령에 이르기를’은 내 심령에 말한다는 의미라기보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라고 고백하는 주체가 내 심령(히. 나프쉬)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기업은 ‘분깃, 소유, 산업’ 등으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기업은 땅, 토지입니다. 여호수아 19장 9절에 각 지파에게 할당된 땅을 기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부모나 친척으로부터 땅을 유산으로 상속받았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기업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민수기 18장 20절에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내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10장 9절에 레위 지파에게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라고 하십니다. 시편 73편 26절에 “하나님은 내 미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라고 하십니다(시 142편 5절). 그들은 땅이 없어도 하나님이 계시는 한 살 수 있었습니다. 땅은 잃었어도 하나님이 계시면 기업은 여전히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 땅도 잃고 집을 잃었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기업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란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소망이십니다.
| 25절.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
원문을 보면 25절, 26절, 27절 모두 “토브”(good)로 시작합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하나님을 바란다,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뜻입니다. 간절히 고대하는 것입니다. 끈기 있게 인내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임을 알고 기다립니다. R. 데이비슨은 “여기서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을 그 큭징으로 하는 기다림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선’(히. 토브)은 앞에서 언급한 “무궁한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8절에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다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 때문에 징계 가운데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들이 죄악을 회개하고 돌아오면 받아두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은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26절.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언약에 근거한 “끈질긴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다고 기다립니다. 시편 40편 1절에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의지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선을 맛볼 수 있고,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토브)에 대한 선한 반응(토브. 좋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하나님은 과거에 묶이지도, 현재에 갇혀 계시지도 않았다.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 때문에, 미래는 언제나 생명의 새로움과 약속으로 열려 있었다”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