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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부계 Y

한국인의 C2b(F1067) 하플로그룹-4(K700)

작성자초재|작성시간20.04.25|조회수503 목록 댓글 0

3.      C2b1a1b (K700)


K700 한국에서는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정도로, CTS2657  절반에 미치지만, 중국에서는 CTS2657이나 F845 비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하위 하플로로서, 특히 중국에서 인구가 많기로 손꼽히는 산동성(중국 성중 인구가 광동성에 다음의 2위로서 1 5만명, 2019) 하남성(중국 성중 인구 3위로서 9,559만명, 2019)에서 다른 C2 하위하플로에 비해 높은 비중을 보인다.

 

중국에서 K700 C2b(F1067) 아니 전체 C2(M217)에서 어떻게 가장 비중이 높은 하위 하플로가 되었는 지에 대해서, 현재 우세한 가설은 K700 바로, 전설의 왕조로 아직도 존재여부가 증명되지 않은 하왕조를 제외하면, 중국 역사상 등장하는 최초의 왕조로서, 갑골문, 정교하고 화려한 청동기 유물, 대규모순장풍습 등으로 유명한 ()왕조의 주류 부계 하플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까지 상왕조 시대 고인골의 유전자가 측정된 것이 없고, 따라서, K700 상왕조의 주류 부계 하플로라는 것도 단지 추측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측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위의 K700하플로 트리에서 윗부분의 F3944이후로 하위 하플로가 계속 길게 나열된 부분이 있고, MF1915 ShanDong_Kong이라고 되어 있다. 현재 공자의  고향은 산동성 곡부에 있고, MF1915 공자의 부계하플로로 유력하기에 적은 것이다. , 공자 가문이 원래 상나라 왕족의 후예이기에, 공자가문의 부계 하플로가 상나라 왕족의 부계 하플로라고 추정할 있다는 것이고또한 현재 K700 분포도 상나라의 수도인 은허( 때문에 상왕조를 은殷이라 칭하기도 ) 있었던 하남성과 이에 인접하고 은나라의 영향력이 강했던 동이세력이 있었던 산동성에 많이 분포하는 이유도 있다. 공자의 부계하플로에 대해서, 조금 뒤에, 다루기로 하고, 다시 K700 하플로 트리를 보기로 하자.

 

K700 크게 F1319 CTS3385 나뉘는 , 중국에서는 F1319 CTS3385 인구 비율이 4.3:1이며, 한국에서는 3.3:1 정도 된다(23mofang KRGDB). 앞의 장에서 다룬 CTS2657 보면, 아래 하위하플로 비율에서 한국과 중국에서 많이 차이가 나는 비해서, K700 경우, 하위하플로인 F1319 CTS3385 비율에 있어서, 그렇게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것에 대한 해석으로서, CTS2657 하위하플로는 한국에 들어온 경로나 시기가 다르고, 특히, 사회적 선택에 의해서, 특정 하위하플로가 한국에서 인구수를 크게 확장했기 때문에, 출발지에서의 비율과 다른 반면에, K700 경우, F1319 K700 원래 중국 북방에서 이미 이러한 비율로 혼합이 인구집단이  있었으며, 집단이 한반도로 진입한 시기도 유사하고, 한반도에 진입한 이후에도 CTS3385 한반도에서 약간 비율이 증가했지만, 비율에서 있어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킬만한 사회적 선택이 없었다고 본다면, 적절하지 않을까싶다.

 

<그림 2> 중국에서의 F1319 분포 (23mofang자료에서 인용) 


한국과 가까운 중국 북방지역에서 K700 전체인구 F1319 3.51%, CTS3385 0.87%로서, 한국에서의 비중(F1319: 2.79%, CTS3385:0.71%)보다 많이 높은 , 이는 F1319 비중이 특히 높은 산동성이 인구가 많은 이유도 있고, 근대에 들어서, 현재의 동북3성인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에  闖關東(츰관동, 여기서 관은 만리장성의 동북끝인 산해관을 말하고, 산해관 너머, 동북방으로 뛰어 들어간다라는 의미) 이라하여, 많은 한족 인구가 원래 인구가 드물었던 지역으로 이주하여 인구를 폭발적으로 확장시켰는 , 중에 다수는 원래 산동성지역에서 진입한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것이다.

 

위의 K700 하플로  트리에 나온 전장유전체 분석이 한국인 샘플은 둘로서, KPGP KP00337( 샘플과 부계 혈연관계인 KP00343 있다) Ulsan 10K 프로젝트에서 나온 UL00713이다. 샘플은 동일하게 MF1882 속하는 , MF1882에는 Y-full 보면, 카스피해 연안의 투르크계가 주류인 아제르바이잔공화국에서 나온 샘플이 있다. 중국인 샘플이 많이 분석된 Y-full 트리에 중국인 샘플이 없고, 2018년에 이미 16만명이 측정에 참가하였고, 현재는 이보다 휠씬 많은 수가 검사되었을 중국 유전자검사회사 23mofang 트리에도 MF1882 하위분지가 없이 나왔기에, MF1882 중국인 중에 매우 소수인 것일 것으로 보인다. Y-full TMRCA 따르면 MF1882 7100년으로, 한국의 샘플과 아제르바이잔의 샘플은 7000 동일한 부계조상에서 분리된 것으로 있다. 그러면, 한국인 샘플의 조상들은 언제 멀리 아제르바이잔까지 부계의 친척들과 분리되어, 한반도로 진입하였을까?

 

현재 MF1882 해당하는 중국인의 Y염색체 풀시퀀싱 자료가 없고, 한국인 샘플도 뿐이기에,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는 것은 어렵지만, MF1882에서 하위로 내려 M3003 BY111240 있는 , 23mofang에는 하위하플로가 없기에,  BY111240  순수히 한국인의 조상에게서 분화되어 생긴 하위하플로라고 가정하면, 하플로그룹의 형성은 3200 전으로  추정한다.

 

Y37829에는 Y-full에서 bam화일로 분화년대를 추정한 한국인 샘플 YF64519 있는 , 샘플의 TMRCA 2500 정도이고, 샘플과 동일하게 Y37829 양성인 중국인 샘플과 러시아 체첸 공화국 샘플에서 나온 분화년대를 평균하면, Y37829 분화년대는 3000 전이다. 한국인 샘플 UL00713 YF64519 분화년대 사이에 , 3000 전인,  B.C.1046 무왕이 상왕조를 멸망시키고,새로운 주왕조를 개창한 시간대가 있다. 위의 년대분석을 고려하면, K700 속하는 한국인의 조상들은 상나라의 유민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이 실제 상나라 왕족이었는 , 아니면, 상나라 북방의 하북성지역이나 요서지역에 자리잡았던 동맹세력의 일원이었는 불확실하다.

 

상왕조의 유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단지, 이들이 보다 북쪽에서 하남성 방면으로 남하했고, 동북방을 중요시했다는 정도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것이다. 상왕조가 초기 탕왕이 하나라의 걸왕을 몰아내고, () 도읍을 정하기 전의 시대인 선상문화(先商文化) 하북성 남부의 하칠단(下七)문화가 대표적 , 문화는 산동성 지역의 악석문화(岳石文化) 영향이 강하게 보인다고 한다. 장광직 같은 이은 상왕조는 하남성 지역의 漳河形같은 회색토기를 만들던 피지배층과 산동성 해안지역의 청동기를 만들던 지배층이 만나서 이룬 것이라고 주장한다.  악석문화는 이전의 산동성 용산문화와 다르게, 바다를 건너, 요령성지역의 하가점하층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하칠단문화, 악석문화, 하가점하층문화 등이 연대상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 이들문화의 지층이 서로 겹치는 것도 있어서,   전후관계를 명확히 하기도 어려운 점이 있으나, 어느 한쪽에서의 일방적인 인구의 유입보다는 일정 정도 상호적인 교류가 있었고, 이들 외에도 다른 주변의 문화들과도 인구혼혈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상왕조 시작전인 기원 3000~2000 즈음이면, 대부분의 동아시아인을 이루는 주요한 부계 하플로가 이미 확장을 시작해서, 지역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부계하플로들이 서로 섞이기 시작했고, 이러한 점은 최근에 조사된 앙소문화나 용산문화 유적의 고인골들에서 C2b(F845), Q1a1(M120), O1b1(Page59), O2a2b2(F444) 다양한 부계 하플로 들이 발견되는 것으로도 있다.

 

2020 4 현재까지 측정되고, 공표된 고인골 중에, K700 하위 하플로로서 확정된 것은 산동성 임기(臨沂) 선연지(先硯池) 1700 서진 시기의M2분묘에서 발굴된 고인골에서 나온 것은 F1319였다. 선연지는 본래, 書聖으로 추앙받는 동진시대 유명한 서예가인 왕희지를 배출한 낭야() 왕씨가 남쪽으로 이주하기 전의 고택이 있던 곳으로, 낭야 왕씨는 서진시대에도 명문 귀족이었음은 물론, 동진 시대에도 동진의 왕족인 사마씨와 함께,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의 유력한 권세가였다. 그러나, 선연지의 중앙에 있는 분묘는 이미 도굴되어, 문자로 표식이 될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아 주인이 누군인지 알기 어려우나, 낭야왕씨가 이미, 동진으로 남천한 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고, 낭야 왕씨였다면, 집안의 중앙에 사당이 아닌 분묘 자체를 두는 것은 당시의 풍습으로 , 기이한 일이므로, 낭야 왕씨의 분묘이기 보다는 당시, 산동성 일대에 분봉된 서진 사마씨 왕가의 일가인 사마관(司馬覲) 분묘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하나, K700 하위하플로가 유력하나, 하위 하플로가 밝혀지지 않은 고인골이 있는 , 2300 , 전국시대 조나라 영역이었고, 현재는 내몽고자치구 지역인 대보산(大堡山)유적에서 발견된 C2b 밝혀진 고인골이다. 대보산 유적에서 나온 고인골은 하플로 O , 하플로 N 하나, 하플로 C 하나인 , 하플로 C C2a 북지가 아닌 C2b 것까지만 밝혀졌다. 전국시대 조나라는 원래 () 나라를 삼분한 삼진 중의 하나로, B.C.307 무령왕(武靈王)대에 이르러, 북방기마민족의 복장과 기마전술을 채용하여, 급격히 강대해져, 북방의 유목민족들인 임호, 루번 등과의 전투에서 이기고, 백적의 후예인 중산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영토를 넓힌 것으로  나온다 (<史記,趙世家> 遂下令易胡服,改兵制,習騎射) . 그러므로, 이들 조나라 병사들 중에는 북방유목민족의 후예도 있었을 것이다.

 

K700 하플로 트리에서  HGDP00423 Brahui(파키스탄 지역의 드라비아어를 사용하는 민족), HG003917 방글라데시, 아제르바이잔, 체첸공화국 , 서유라시아으로 진출한  샘플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서, 이들은 분명, 흉노, 유연(아바르), 돌궐, 서요, 몽골 등의 유목민족들이 서유라시아 방면으로 진출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K700 계속 중원지역에서 머문 집단의 하플로이기 보다는, 일부분은 상왕조의 건국에 참여하고, 일부분은 동북지역에서 이들 유목민족들과 가까운  지역에 남아서, 후에 일부분은 이들에 동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CTS2657 하위하플로들이  요동이나 길림성 지역 등의 동쪽에 치우쳐 있었고, 그래서 M407 제외하면, 몽골고원에서 발원한 이들 유목민족들에 동화되어, 서유라시아로 진출할 기회가 적었다면,  K700 보다 서쪽의 요서남부나 하북성 북부, 내몽골 동부 지역 등에 분포해서, 상대적으로 이들 유목민족의 일원이 가능성도 많았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정확히 어떤 고고학 문화와 상응하는 지는 답하기는 어려우나, 상왕조와의 연관성을 생각한다면, 내몽고 동부지역에서 융성한 노호산문화(老虎山文化) 유력한 후보가 있다고 보고, 보다 일찍 황하하류로 진출한 그룹은 선상문화의 선행문화로 여겨지는 후강이기(二期)문화시기 이미 중원지역에 등장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K700 상왕조 왕실의 부계 하플로라는 가정과 중요한 연관을 지닌 공자의 부계 하플로 문제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공자의 부계 하플로 문제는 단지, K700 상왕조 관련성을 해명하는 , 의의를 지닌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사회에서 오랜 동안,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 , 유교적 종법질서의 핵심인 족보에 기록되는 부계 혈통중심주의의 기원과 한계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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