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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토대토기의 등장 2003-기원전 요서/요동에서 한반도 남부로의 주민 이동

작성자아제|작성시간12.11.11|조회수2,157 목록 댓글 46

<그림 출처-국립김해박물관 편, 변진한의 여명-점토대토기의 등장 특별전 도록, 2003>

위 그림이 한반도 남부지역의 원형점토대토기 유적입니다. 영남지역에만 검은색 배경 표시가 되어 있는데, 이건 출처인 특별전도록이 영남지역의 점토대토기문화를 설명하는 책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이 지역에만 원형점토대토기 문화가 확산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요서~요동에 걸친 원형점토대토기문화가 한반도 남부 전역으로 확산된 겁니다.

 

 

 

* 그동안 한국 학계의 주류(김정배 등)는 한반도 남부의 한(韓)족도 북방 예맥족이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지역화한 집단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기본적으로 한(韓)이나 예맥이 완전히 다른 집단이 아니라 뿌리가 동일한 집단이라는 이야기지요. (결국 고구려,백제,신라가 사실상 동일 계통의 집단이란 주장과도 연결됩니다) 점토대토기와 관련된 연구는 이같은 전통적인 입장을 뒷받침하는 연구일 수 있습니다. 즉 점토대토기의 확산 과정을 보면 한반도 남부 거주민 중 상당수는 기원전에 6~3세기대에 요서-요동에서 이주한 집단의 후손일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니까요.

 

* 우리가 주로 역사시대 이후의 주민 이동만 주목하기 쉬운데 최근 고고학계의 연구 동향을 보면 역사기록이 분명하지 않은 기원전 6~3세기대에도 요서-요동에서 한반도 남부로의 대규모 주민 이동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고고학계에서는 점토대토기 문화의 확산 이전 단계에도 단순한 문화 전파가 아니라 주민 이동과 그에 따른 문화 교체 현상을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청동기의 시작과 관련이 있는 돌대문토기도 마찬가지이고, 그 외에도 주민 이주를 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점토대토기 관련 이주민의 이주 이전에도 청동기시대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만주-한반도 북부에서 한반도 남부로의 주민 이주가 있었다는 이야기죠. 

 

* 그 이후에도 주민 이동은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고조선 때도 남부지역으로의 주민 이동을 보여주는 기록이 중국 사료에 남아있고, 삼국사기에는 고조선 유민이 진한 6촌을 이루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구려-부여계 유이민의 백제 건국 설화도 주민 이동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청동기시대부터 초기철기를 거쳐 역사시대에 까지 여러차례 걸쳐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주민 이동은 만주-한반도 북부-한반도 남부 주민의 형질인류학적-유전적 특성을 유사하게 만드는 핵심 동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지난 2003년 열렸던 변진한의 여명-점토대토기의 등장 특별전도록에 나오는 지도와 본문 일부를 발췌해 소개합니다. 점토대토기와 관련된 논문이 많지만 너무 전문적이어서, 이 도록의 지도와 내용을 우선 소개드립니다.

 

 

기원전 10세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던 무문토기시대(청동기시대)는 이전의 신석기시대에 비해 농경의 발달과 확산으로 인하여 생산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이처럼 선사시대 중에서 가장 발달되었다고 할수 있는 무문토기 사회는 기원전 4세기가 되면 고고학적 자료상에 일련의 변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기원전 3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새로운 문화양상으로 바뀌어진다. 이 새로운 문화는 중국 동북지방에 연원을 둔 것으로 한국식 동검문화라고도 불리우며, 한국식 동검, 원형의 덧띠를 붙인 토기(원형점토대토기를 지칭함), 목관묘 등 유물과 유구에서 이전과는 다른 문화 내용을 가진 사회로 변화한다.

 

(중략)

 

수백년간 무문토기인의 대표적 분묘로서 기원전 6-5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지석묘는 기원전 4~3세기 대에 와서는 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에도 일부 (지석묘가) 잔존하기는 하지만, 중서부지역에서는 대전 괴정동 유적과 같이 기원전 3세기를 전후한 시점부터 이미 목관묘가 등장하고, 영남지역도 그 영향에서 예외일수는 없다.

 

(중략)

 

점토대토기란 토기의 구연부에 점토띠를 덧붙인 무문토기를 의미한다. 이 점토띠의 단면 형태를 기준으로 원형점토대토기와 여기에서 변화된 삼각형점토대토기로 구분된다. 원형점토대토기의 등장과 더불어 청동기에서는 요령식동검에서 한국식동검으로 변화하며, 묘제에서는 지석묘가 소멸하면서 목관묘가 나타나고, 철기도 사용하기 시작한다.

 

(중략)

 

이들 토기는 이전까지 한반도에서 보이지 않던 것으로 중국 요령지역의 유적에서만 그 예가 확인된다. 이러한 점에서 기원전 3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요령지역의 주민이 한반도로 이주하였고, 이로 인해 한반도에서는 이전의 송국리형 문화가 쇠퇴하면서 점토대토기와 한국식 동검을 표지로 하는 새로운 문화가 펼쳐진 것으로 보인다.

 

(중략)

 

송국리형 문화의 취락은 여러 동의 주거지로 이루어져있고 비교적 대규모 취락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주로 구릉이나 하천변에 입지하면서 인근에 농경지와 같은 생산시설도 함께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후 원형점토대 토기가 유행하는 시기의 취락은 이와 달리 소규모의 취락을 형성하면서 비교적 지대가 높은 곳에 입지하고, 주거지 자체도 소형화되는 경향이 있다.

 

(중략)

 

점토대토기 문화는 그 출현 당초부터 거의 남한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점에서 안정적인 정착보다 확산 자체에 우선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주장이 최근 제기된 바 있다. 즉 요령지역에서 한반도 남부에 들어온 점토대토기인들은 한 곳에서의 정착보다는 영역의 확대가 큰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러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한정된 시기에거의 남한 전역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고, 또 대부분의 유적이 소규모인 점도 그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어쨌든 토기의 변화, 유적의 입지와 분포 등 거의 모든 고고학적 자료상에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이전의 농경사회와는 다른 성격의 사회였음에 틀림없다.

 

 

 

* 고고학계에서 진행되는 점토대토기 관련 연구와 논쟁은 여려가지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이 카페 회원분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원전 3세기(학자들에 따라서 기원전 6세기로 높여 보기도 함)부터 한반도 남부지역에 기존의 송국리형문화나 지석묘문화와 다른 새로운 문화가 나타났다.

 

2. 이 문화에 사용되는 토기는 그 이전에 한반도에 없었고, 북한지역에서는 아직 뚜렷하게 확인이 되지 않는데, 요서-요동 지역에서는 발견된다.

 

3. 새로운 토기의 등장과 함께 주거지, 묘지, 도구 등이 셋트 개념으로 변경되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문화 전파가 아니라 요서-요동 지역에서 한반도 남부로 주민 이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 이 새로운 이주민은 짧은 시간에 한반도 남부지역 전체(지도에 검은색 점 표시)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 다시 말해서 기원전 6~3세기대에 요령(요서~요동)에서 한반도 남부로 주민 이동이 상당히 대규모로 발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요서~요동에서 해상으로 직접 한반도 남부지방에 상륙했는지, 아니면 북한을 거쳐 이동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고학자들은 북한을 경유했다하더라도 서해안을 경유하는 방식의 이주 정도만 가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지역에서도 앞으로 점토대토기가 발견될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까지 발견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 북부 지역은 한반도 남부지역에 비해 분포 밀도가 낮은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죠.

 

* 원형 점토대토기 관련 이주민의 원 거주지역인 요동은 전통적으로 고조선 내지 맥족과 관련 있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서 지역의 원형 점토대토기 관련 지역도 하가점 상층문화 중에서도 십이대영자 유형의 분포지역입니다. 다시 말해 국내 고고학자들 중 일부가 고조선이거나 고조선과 관련 있는 집단의 분포 지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하가점 상층문화 전체가 고고선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가점 상층문화 중 십이대영자 유형만 고조선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임) 다시 말해 요령-요동에서 한반도 남부로의 이주는 완전한 이민족 집단의 이주라기 보다는 상호 동일 계통의 집단일 가능성이 있는 이주민의 이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최근 송국리형 문화에서 점토대토기 문화로의 교체 양상이 생각만큼 단시간에 진행된 것이 아니고, 그 교체 양상도 이주-정복을 연상할만큼 격렬한 것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위 도록의 설명은 세형동검문화=점토대토기문화를 전제하고 있지만, 세형동검의 전파-확산 시기와 점토대토기의 전파-확산의 구별되는 별개의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최신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여하간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고고학도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세부적인 설명과 입장이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요서-요동에서 한반도 남부로 주민이 이동했다"는 것 외엔 시기, 양상 등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학계의 입장이 유동적입니다. 특히 고인골을 확보해 형질인류학적-유전자인류학적으로 검증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추가 연구를 통해 이 같은 연구를 좀 더 보완해야 합니다.

 

* 참고로 일본 야요이 문화의 형성 과정은 이처럼 청동기시대에 여러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만주-한반도 북부에서 한반도 남부로의 주민 이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 열도로까지 이동했을 수도 있고, 한반도 남부 원거주민 중 일부가 밀려서 이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청동기시대 한반도의 사례를 기초로 보면 일본 열도로의 이동도 1차례로 한정되지 않고 여러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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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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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아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1.12 일제 강점기 때 독립투사들의 투쟁 근거는 민족주의에서 출발하지요. 1945년 일제 강점기 종식 이후 한민족의 국가를 재건하는데 국제 사회가 동의한 것도 한국인은 일본인,중국인과 구별되는 별개의 민족이런 점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어찌보면 애국심의 원천이자 국가 존립을 뒷받침하는 핵심 논리입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영미식 반민족주의담론에 너무 매몰되는 것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세계화시대이고, 한국이 다민족주의 사회로 바뀌어가는 것이 시대추세라고해도 ‘민족주의가 해체된 한국이란 국가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남는 것이 사실이죠.
  • 답댓글 작성자아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1.12 그런데 문제는...과연 그런 민족주의적 애국심의 원천으로... 사실인지 아닌지도 불확실한 고대사에 너무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지난 20여년 간 인터넷에서 고대사와 관련한 거칠고 조악한 수준의 논쟁으로 얻은 것은 또 무엇일까요. 통설과 조금만 달라도 인신공격 수준의 격렬한 비판을 하는 쪽도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그 반대쪽 분들은 알맹이는 없이 지나치게 공격성만 앞세운 도발적 논쟁으로 민족주의 자체에 반감을 품는 사람만 양산한게 아닌가 싶은 우려도 듭니다. 과연 우리가 고대사와 관련한 감정적 논쟁으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 근본적 성찰이 필요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 답댓글 작성자garimtto | 작성시간 12.11.14 이성적 관점이 필요해! 라는 말을 하고 싶어도, 옆나라들의 민족주의가 극성인지라. 참 여러모로 골 아픈 위치입니다.
  • 작성자baaclia | 작성시간 12.11.12 저어됩니다. 우리를 알려면 주위의 인군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보다 동적인 역사상을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辰韓古之辰國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의적인 역사해석이라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원래 이 체계는 지석묘문화인을 예족으로 설정하기 위한 체계로 보이고 반도내 지역적으로 다른 언족이 살았다 하더라도 예맥언족 또한 반도내에 이른 시기부터 살았다(과거를 어떻게 아노). 는 대꾸로 역동적인 역사상을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저어됩니다. 이것도 끌어 안고 저것도 끌어 안으려는 노력은 삼국사기를 다시 편찬할 수 밖에 없었던 김부식의 고민을 그대로 이어 받고 있는 것
  • 작성자baaclia | 작성시간 12.11.12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사체계는 그렇더라도 역사공간에서는 좀 더 다양하고 역동적인 역사상을 꾸려내야 하는데 적어도 두 발은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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