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극장판<공각기동대>, 텔레비전판 <공각기동대1기(총26화)>, <공각기동대2기(총26화)>를 봤다.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숙제라니? 만화영화 보는 숙제? 그렇다. 와키쇼키(?)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가 많이 인용해 차라리 원전이라고 할 만화영화다. 웅장한 스케일과 미래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존재론적 성찰, 그리고 멋진 사이보그 주인공들의 매력적인 캐릭터와 인상적인 장면들은 역시 <매트릭스>의 원전이라고 할 만큼 강렬하다.
영화가 미국이라면, 만화는 역시 일본이다. 헐리우드가 잘 만드는 것이 공허한 블록버스터나 SF영화라면, 일본의 SF만화는 헐리우드의 볼거리와 더불어 깊이까지 보여주고 있다. 역시 <에반게리온>과 더불어 본다면 요즘 SF의 근간을 잡는 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사이버펑크라는 SF의 흐름까지 만들었으니.
극장판에서 말하는 물리적 실존을 떠난 사이버스페이에서의 업그레이드된 인간 실존의 거듭남이라는 모티브는 <매트릭스>와 텔레비전판 <2기>에도 반복된다. 미래 사이버문명의 깨달음 내지 해탈, 혹은 구세주를 통한 차원상승을 다루고 있다. 우주처럼 무한한 마지의 세계인 사이버 바다 자체가 물리적 실존에 대한 초월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는 텔레비전판 <1기>에 나오는 스마일맨 사건에서 제기된 ‘Stand alone Complex'라는 말이다. 이것은 <2기>에서도 중요하게 사용되는데, 인간 개개인이 각자 떨어져 있으나 무의식의 영역에서 연결된 듯 움직인다는 이론이다. 주인공이 활동하는 공안9과의 운영도 SAC방식이다. 하지만 군중의 의식은 어떤 계기에 의해 촉발되어 점차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발전해간다는 이론이기도 하다. 혼돈이론과 융의 집단무의식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문제는 그것을 나쁜 의도로 그런 상태를 유발하여 통제하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 그 앞에 상당히 무력하다는 것이다. 과거 역사에 적용해봐도 그렇지만 이 만화처럼 미래사회에 그 위험성은 더 증가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인간이 아닌 로봇이나 AI가 고스트로 불리는 영혼을 갖게 되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 역시 참으로 인상적이다. 특히 다찌고마라는 일종의 장갑차들은 서로 개개의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지만 정보를 수평적으로 공유하며 동시에 각자의 개성을 갖게 되는 단계를 겪고 인간을 위해 자기희생을 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독립적 판단을 내리는 죽음을 선택하는 영혼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영혼이 인간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이제 점차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언어와 정신이 인간만의 독점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완고할 정도로 인간중심적 잣대만을 고집하는 사람만 인간의 고유성과 우월성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또 한 가지는 인간의 정체성 문제이다. 인격이라는 것이 기억 자각 활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정보화시대에 정보 조착을 하면 자기 정체성을 전혀 다른 존재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한두 가지 물질적인 기억의 보관에 은근히 집착하지만 주인공 소령은 자주 회의에 빠진다. 바이러스가 고스트(영혼)까지도 침입해 인격을 조절하는 상황에서, 과연 자신의 정체성이 조작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 이 생긴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의식이라는 것도 조작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참으로 로봇처럼 무력하고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아무튼 <공각기동대>의 여러 시리즈들은 이런 사이버사회의 정체성과 관계 등에 대해 심리철학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한다.
주인공 소령이 내뱉는 말 중 인상적인 것도 많다.
‘너의 세상이 싫으면 네가 변하든가 세상을 피해 고독하게 살아라’
범죄자에게 한 말이다. 세상이 싫다고 세상을 파괴하려 하지 말고 적응해 살던가, 아니면 세상을 피해 은둔해서 살라는 주문이다. 상당히 냉소적인 말이지만 울림이 강하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 그토록 막강한 관리사회에 진입하였다는 말이며, 이는 일본인의 처한 근대적 자의식에서 거듭되고 있는 진술이다. 이 군국주의와 관리사회라는 무겁게 누르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두가지 방법! 나를 바꾸는 것이 하나! 고립되어서 자기 세계로 도피하는 것이 둘!
하지만 이런 냉소의 말을 내뱉으면서도 소령은 불의와 싸우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나가는 모순을 지닌 존재이다.
‘미숙한 인간의 특징은 이상을 위해 고귀한 죽음을 택하는 데 있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이상을 위해 비굴한 삶을 택하는 데 있다.’는 심리학자 빌헬름 슈테겔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미숙하게 정의를 위해 죽지 말고, 비굴하게라도 살아남아 정의를 하나하나 추구하라는 말이다. 스마일맨과 소령은 적이었지만 결국 같은 길을 가는 동지가 된다. 비굴한 현실에서 살아가며 이상을 추구하는 자로서 말이다.
하지만 절망도 있다. ‘물은 낮은 데로 흐른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성향은 이성적이기보다 분위기에 휩쓸리고 쉽게 격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지키고 보호해야할 존재가 때론 비천하게만 보이는 공허함을 토로한 말이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인지 소령은 인간 영혼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물질적 실존을 버리고 사이버 내 실존으로 거듭나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사이버(가상현실)가 현실을 압도해가는 시기에 살고 있다. 우리의 물리적 환경은 이미 발터벤야민이 선언한 복제시대 이후 이미지 과잉에 넘친다. 원본이 없거나 무의미해졌다. 이미 이미지 안에서 기존 이미지들을 합성하며 끊임없이 이종교배가 일어나는 이미지 폭발의 시대에 진입한 것같다. 아우라를 지닌 원본이 없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를 내포한다. 고유성, 동일성, 정체성의 근거가 점차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의 자의식도 더 이상 19세기와 다른 것이다. 그 이전 18세기와는 전혀 다르다. 사이버 내 아바타로서 자기 이미지를 구축하고 그 존재를 실존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상황이 진행됨에 따라, 이 만화가 제기하고 있는 물음들이 공상만화에 국한된 것이 아닌 게 될 것이다.
일찍이 동서의 현인들이 통찰했듯 우리는 생각 속에 산다. 그래서 현실은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만 보고 생각하는 대로 느끼고 산다. 문명이란 어쩌면 지난한 본말전도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생각을 구성하는 기억과 정보가 조작된 것일 때? 문득 나는 누구인가? 라는 섬뜩한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사이코는 따로 있는 질병이 아니다 사이키한 인간 자체의 자각이다. 하지만 존재의 중심을 생각과 이미지 속으로 이동한 현대인의 실존은 여전히 어둠속을 헤매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 뇌까리며 헤매는 몽유병자처럼.
Lithium Flower - Scott Matth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