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참교육 단상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열풍(?)이 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부터 완고한 국가교육 시스템에 대해 말하기를 포기했다. 누구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데 혼자 말하는 느낌 때문이다. 학교를 떠난 뒤 더욱.
그래서 학교교육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땡기지 않았다.
그런데 ‘참교육’을 반어적으로 사용하는 드라마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글작업에 집중할 수 없어 산만하던 터라 이 드라마를 5편까지 보고 말았다.
처음엔 역시 거북했다. 1~3화까지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구도가 참교육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모습이 반교육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통쾌한 복수의 카타르시스에서 파시즘의 향기가 느껴졌다. 국가주의와 동거하는 교육신화도 여전해 더 불편했다.
<공각기동대>와 같았다. ‘공안9과’라는 가상의 국가기구 ‘공각기동대’로 국가를 위협하는 테러를 막는-응징하는- 스토리를 보며 나는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이 이렇게 미화되는가 싶어 몹시 불편했다. 그럼에도 <공각기동대>가 다루는 미래사회의 에피소드들은 문제 제기적이었고 충격적이었다. AI의 자의식은 가능한가? 사이버 공간 속 인간의 정체성은 진짜 정체성인가? 전자정보화 시대의 도래는 새로운 파시즘사회의 도래가 아닐까? AI의 환경 속에서 인간의 주체성이 유지될 수 있을까? 등 이 30년 전 미래사회에 대한 질문이 충격적이었다.
<참교육> 첫 에피소드도 <공각기동대>만큼이나 충격적이고 불편했다. 그런데 4화로 가니 ‘참스승’의 허상으로 초점을 이동하고, 5화로 가니 ‘학부모 갑질’로 학생에서 교사, 학부모로 소재를 전환하며 우리사회의 현실과 모순을 폭넓게 건드렸다. 과격한 폭력성과 지나친 단순화 한계에도 불구하고 교육 관련 사회 문제를 잘 건드렸다. 학교를 둘러싼 억압된 무의식을 폭로하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성공적이기까지 하다.
국가교육과 학년제를 긍정하기보다 부정하는 입장을 가진 나에게 이 드라마는 문제의 해결보다 제기적인 면에서 인정하게 한다. <오징어게임>도 그렇지만 한국 드라마가 잘 다루는, 참을 수 없는 억압과 폭력 문제는 여전히 우리 역사의 또 사회의 단면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