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작성자김광우|작성시간18.05.09|조회수43 목록 댓글 0

현실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성록自省錄>(11. 목판본)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70)의 서간 가운데서 수양과 성찰에 도움이 되는 서간 22통을 뽑아 엮은 책입니다. 1585(선조 18) 나주에서 처음 간행되었고, 1793(정조 17)에 중간되었습니다.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일본에서는 16세기에 간행한 것도 있고, 1659(현종 즉위년) 우가이鵜飼信之가 훈점訓點한 것을 1665년에 중간한 바 있습니다.

답기명언사단칠정분이기변제일서答奇明彦四端七情分理氣辨第一書는 기대승奇大升(본명 기명언奇明彦)에게 답한 것입니다. 정지운鄭之雲<천명도天命圖>에는 사단四端은 이발理發이고, 칠정七情은 기발氣發이라 했으나, 기대승은 사단칠정이 모두 정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와 기는 서로 대대對待해 체와 용이 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자사와 맹자의 성설性說에 관해 논설을 가했습니다.

<자성록> 중 기대승에게 답한 편지에서 퇴계의 인간적인 면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빼어난 기상을 품었고 큰 기둥이 될 자질을 갖추었습니다. 관직에 나서기도 전에 그대의 이름은 멀리까지 알려졌습니다. 그러니 벼슬을 얻자마자 온 나라 사람들의 관심이 그대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먼 길을 가는 첫 걸음에서 나처럼 특별한 병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벼슬을 버리려 한다면 사람들이 쉬이 놓아주겠습니까? 사람들이 놓아주지 않는데 스스로 버림받고자 할 것 같으면 그렇게 할수록 오히려 더 붙잡으려 할 것입니다. 아픈 사람처럼 사직을 청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사람들의 책망도 병든 나에게 하는 것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그대에 대하여 걱정스럽고 두려워하는 점입니다.

관직을 구하기 전에 먼저 그대의 뜻을 결정했어야 옳았습니다. 그래야 공부에 전념하여 도를 얻을 수 있었을 테지요. 한 세상의 붉은 기치를 세워놓고 이 나라에 끊어진 공부의 전통을 주창하는 큰 인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하지 못하고 과거시험을 보았고 관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미 머리를 굽혀 부끄러움을 참으면서 현실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관직을 그만두고 본래 바라던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고 하면서 남에게 상의를 구하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늦은 깨달음이라고 생각됩니다. 세속을 떠나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그 소원을 과연 달성할 수 있을까 우려되는 바가 큽니다.

 

기대승은 1568(선조 1) 우부승지로 시독관侍讀官을 겸직했고, 1570년 대사성大司成으로 있다가 영의정 이준경李浚慶과의 불화로 해직되었습니다. 1571년 홍문관弘文館 부제학 겸 경연수찬관과 예문관 직제학으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1572년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되고, 이어서 종계변무주청사宗系辨誣奏請使로 임명되었으며, 대사간, 공조참의를 지내다가 병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던 도중에 고부古阜에서 객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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