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은 이종사촌 엘자 아인슈타인을 사랑하다>
아인슈타인이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하고 자신의 치솟는 명성을 즐기고 있는 동안 마리치는 자신이 증오하던 도시 프라하에 남겨져서, 한때 합류하려고 애쓰던 과학계의 일부가 아니란 점에 낙심하고 있었다.
마리치는 1911년 10월에 있었던 아인슈타인의 강연이 끝난 후 그에게 “나도 그곳에 가서 강연을 듣고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당신이 아직도 날 알아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필리프 프랑크가 처음 프라하에서 마리치를 만났을 때 그녀가 정신분열증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도 동의했다.
그는 훗날 동료에게 그녀의 우울증은 “그녀의 외가로부터 유래된 정신분열증적인 유전인자 때문임이 틀림없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이 1912년 부활절 휴가기간에 홀로 베를린으로 간 것은 그들의 결혼이 불안정한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세 살 연상의 사촌을 만났다.
엘자 아인슈타인은 루돌프 아인슈타인과 판니 코흐 아인슈타인의 딸이었다.
그녀는 부모 양쪽으로 모두 아인슈타인의 인촌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인슈타인의 아버지 헤르만의 친사촌으로 그의 사업을 도와주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인슈타인의 어머니 파울린의 언니였다.
따라서 엘자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종사촌이었다.
엘자는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이제 서른여섯 살의 나이로 두 딸 마르고트와 일제와 함께 부모와 같은 아파트 건물에 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사촌을 닮았고 나이가 들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처음에는 엘자의 동생과 시시덕거렸다.
그러나 부활절 방문이 끝나갈 무렵에는 엘자로부터 자신이 바라던 편안함을 찾았다.
그가 프라하로 돌아간 후에 엘자는 곧바로 편지를 보냈다.
그의 집이 아니라 사무실로 몰래 편지를 보내어 주고받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그런 방법으로 나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 당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지난 며칠 사이에 당신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이 보낸 편지를 없애달라고 했고 그는 그녀의 말에 따랐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답장을 평생 동안 서류철에 보관했다가 훗날 “좋은 시절의 특별히 아름다운 편지들”이란 표식을 붙였다.
아인슈타인은 엘자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고백했다.
“나에게는 누군가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너무 비참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당신입니다.”
엘자는 어떻게 하면 아인슈타인을 화나게 만들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마리치의 엄지손가락 밑에 있다고 약을 올렸고, 공처가라고 주장했다.
그녀가 바랐듯이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답장했다.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된 남자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약속합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런 사실을 증명해 보일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훗날 아인슈타인의 아들 한스 알베르트는 여덟 번째 생일이 지난 직후였던 1912년 봄에 부모의 결혼이 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아인슈타인은 사촌과의 연애에 대해서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엘자에게 보낸 편지에 “우리가 서로에 대한 매력에 굴복해버린다면 혼란과 불행만 생길 뿐”이라고 적었다.
아인슈타인이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하고 자신의 치솟는 명성을 즐기고 있는 동안 마리치는 자신이 증오하던 도시 프라하에 남겨져서, 한때 합류하려고 애쓰던 과학계의 일부가 아니란 점에 낙심하고 있었다.
마리치는 1911년 10월에 있었던 아인슈타인의 강연이 끝난 후 그에게 “나도 그곳에 가서 강연을 듣고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당신이 아직도 날 알아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필리프 프랑크가 처음 프라하에서 마리치를 만났을 때 그녀가 정신분열증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도 동의했다.
그는 훗날 동료에게 그녀의 우울증은 “그녀의 외가로부터 유래된 정신분열증적인 유전인자 때문임이 틀림없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이 1912년 부활절 휴가기간에 홀로 베를린으로 간 것은 그들의 결혼이 불안정한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세 살 연상의 사촌을 만났다.
엘자 아인슈타인은 루돌프 아인슈타인과 판니 코흐 아인슈타인의 딸이었다.
그녀는 부모 양쪽으로 모두 아인슈타인의 인촌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인슈타인의 아버지 헤르만의 친사촌으로 그의 사업을 도와주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인슈타인의 어머니 파울린의 언니였다.
따라서 엘자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종사촌이었다.
엘자는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이제 서른여섯 살의 나이로 두 딸 마르고트와 일제와 함께 부모와 같은 아파트 건물에 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사촌을 닮았고 나이가 들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처음에는 엘자의 동생과 시시덕거렸다.
그러나 부활절 방문이 끝나갈 무렵에는 엘자로부터 자신이 바라던 편안함을 찾았다.
그가 프라하로 돌아간 후에 엘자는 곧바로 편지를 보냈다.
그의 집이 아니라 사무실로 몰래 편지를 보내어 주고받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그런 방법으로 나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 당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지난 며칠 사이에 당신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이 보낸 편지를 없애달라고 했고 그는 그녀의 말에 따랐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답장을 평생 동안 서류철에 보관했다가 훗날 “좋은 시절의 특별히 아름다운 편지들”이란 표식을 붙였다.
아인슈타인은 엘자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고백했다.
“나에게는 누군가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너무 비참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당신입니다.”
엘자는 어떻게 하면 아인슈타인을 화나게 만들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마리치의 엄지손가락 밑에 있다고 약을 올렸고, 공처가라고 주장했다.
그녀가 바랐듯이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답장했다.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된 남자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약속합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런 사실을 증명해 보일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훗날 아인슈타인의 아들 한스 알베르트는 여덟 번째 생일이 지난 직후였던 1912년 봄에 부모의 결혼이 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아인슈타인은 사촌과의 연애에 대해서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엘자에게 보낸 편지에 “우리가 서로에 대한 매력에 굴복해버린다면 혼란과 불행만 생길 뿐”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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