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프랑스인의 스페인 취향

작성자김광우|작성시간10.12.16|조회수569 목록 댓글 0

마네의 프랑스인의 스페인 취향

 

 

 

 

 

 

마네의 <발렌시아의 롤라 Lola de Valence>, 1862, 유화, 123-92cm.

이 시기에 유명한 <악의 꽃 Les Fleurs du Mal>을 발표한 샤를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1821년 4월 9일-1867년 8월 31일)는 마네에게 이 작품의 제목을 <악의 꽃>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며 말했습니다.

 

벗이여, 발렌시아의 롤라에게는 장밋빛이나 검은 보석과도 같은 상상하기 힘든 매력이 두드러져 보이네. 서가 사이에서 무대로 전해지는 소음에 싸여 기분 좋게 포즈를 취한 롤라, 그녀의 야성적인 표정과 흑백 그리고 붉은색의 어울림은 우리에게 선열한 인상을 풍기네.

 

1857년 6월 25일에 발표된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는 모두 100편의 시가 실렸습니다. <악의 꽃>이 풍기문란하다는 서평에 자극을 받은 내무부 공안국이 이 시집을 고발했고, 보들레르와 출판사는 공중도덕 훼손죄로 기소되었습니다. 보들레르와 출판사는 벌금형을 받았으며 시 6편은 삭제 명령을 받았습니다. <악의 꽃>에 대해 법적 구속이 없어진 건 1949년이었습니다. 프랑스 대법원이 <악의 꽃>에 대한 유죄선고를 파기하고 그와 작품에 법적 명예를 회복시켜주었습니다. 그 날 8월 31일은 82년 전에 타계한 그의 제삿날이었습니다. <악의 꽃>은 현대 시의 시조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국 문화를 좋아한 프랑스인은 스페인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많은 화가들이 스페인 문화를 회화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복잡한 무늬와 화려한 색의 스페인 의상은 그들의 기질을 적절하게 나타냈으며 프랑스인은 스페인인의 열정적 춤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1862년 여름 캄프루비 Camprubi 댄스단의 파리 공연에서 롤라 멜레아가 선보인 춤은 파리 시민들을 매혹시켰습니다. 마네는 그녀를 모델로 그린 <발렌시아의 롤라 Lola de Valence>를 이듬해 마르티느 화랑에서 소개했습니다.

 

 

보들레르는 마네에게 <발렌시아의 롤라>를 칭찬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벗이여, 내가 이해하는 자네 그림의 모든 아름다움 속에서 욕망의 흔들림을 읽었네. 하지만 지금 <발렌시아의 롤라>에서 본 검고 붉은 보석의 욕망은 얼마나 매혹적으로 반짝이는지.

 

 

 

 

 

마네의 <스페인 발레 Le Ballet Espagnol>, 1862, 유화, 60.9-90.5cm.

 

 

 

호형호제하는 시인 보들레의 권유로 마네는 이 공연을 간람한 후 매우 만족해했습니다. 중앙의 무용수가 유명한 돈 마리아노인데, 그는 일주일에 사흘 공연을 하지 않을 때 멤버들과 함께 마네를 위해 포즈를 취해주었습니다.

 

 

그해 마네는 파리에 온 스페인 투우사들을 화실로 초대하여 실재 모델을 보고 그리면서 스페인인의 특징을 표현했다. 또한 스페인 연예인들을 모델로 그리기도 했으며 <스페인 발레 Le Ballet Espagnol>가 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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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스페인 가수: 기타리스트 Le Chanteur Espagnol: Le Guitarero>, 1860, 유화, 147.3-114.3cn.

1861년 살롱에 입선해 처음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기타리스트가 코믹한 배우처럼 묘사되었지만 붓놀림이 대담하며 사실주의 색채가 강렬합니다. 그가 탐구해온 대가들의 회화적 장점이 두루 나타난 작품으로 배경을 어둡게 하고 조명의 효과를 극적으로 살린 작품입니다. 색과 색의 대비가 인물의 강렬한 인상으로 관람자의 기억에 남게 합니다.

 

 

 

<발렌시아의 롤라>와 <스페인 가수: 기타리스트 Le Chanteur Espagnol: Le Guitarero> 등 사실주의 그림들을 보들레르와 시인이며 소설가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하며 예술의 공리성을 배격한 데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1811-72)가 매우 좋아했습니다. 고티에는 한때 화가를 꿈꾸었던 사람입니다. 고티에는 회화나 조각의 조형미를 문학작품에 도입하여 형식을 존중하는 유미적 작풍을 수립함으로써 훗날 고답파Ecole parnassienne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답파는 낭만파 시인들의 감상주의와 모호한 언어 사용에 반발하여 신중함과 객관성, 완벽한 기교와 정밀한 묘사를 강조했습니다. 고답파가 이끈 시운동은 운율과 시 형식에서의 새로운 실험과 소네트의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스페인 가수>를 보고 고티에가 적었습니다.

 

 

"보라! 오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웃기는 기타리스트가 여기에 있다. 벨라스케스는 그에게 친근한 눈짓으로 인사할 것이고 고야는 담뱃불을 빌리러 그에게 다가갈 것이다. 이 자연스럽고도 매력적인 인물은 마네의 회화솜씨를 돋보이게 한다. 물감을 입힌 형태 속에 과감한 붓놀림과 너무나도 사실적인 색감이 있다."

 

 

마네는 목판화와 석판화를 포함해 판화 전반에 관심이 많았으며 1862년 5월에 결성된 에칭작가협회에 창립멤버로 참여했습니다. 보들레르는 『화가와 에칭작가』에서 전통목판화를 에칭화로 한 단계 발전시킨 공로를 마네에게 돌렸습니다. 시인은 1862년에 열린 에칭전시 평론에서 마네에 관해 적었습니다.

 

 

다음 전시회에서 우리는 스페인 취향을 물씬 풍기는 마네의 작품을 보게 될 것이며, 스페인 화가들의 천재성이 프랑스로 옮겨져 왔다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포착할 것이다. 마네와 르그로는 현대의 리얼리티(이 자체가 이미 바람직한 징후이다)와 생동감이 있고 풍부하고 섬세하면서도 과감한 상상력을 한 그릇에 담아낸 훌륭한 화가들이다. 상상력이 결여된 화가의 재능은 주인 없이 행동하는 하인에 지나지 않는다.

 

 

르그로Regros(1837-1911)는 프랑스 태생의 영국 화가, 동판화가, 조각가로 괴이한 주제의 판화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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