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이전에 어찌 이러한 화가가 있을 수 있겠는가?

작성자김광우|작성시간16.11.29|조회수17 목록 댓글 0

당나라 이전에 어찌 이러한 화가가 있을 수 있겠는가?

 

 

 

중국 명나라 말기의 문인, 화가 겸 서예가 동기창董其昌(1555-1636)은 남종화南宗畵를 북종화北宗畵보다 더 정통적인 화풍으로 한다는 상남폄북론尙南貶北論을 주창했습니다. 그는 서화에 능하고 선리禪理를 시문서화詩文書畵의 이론을 응용하여 설했습니다. 서는 처음에 미불未芾을 종으로 했고, 진나라 사람의 평담 자연의 경을 이상으로 일가를 형성했습니다. 형동邢侗 미만종米万鍾 장서도張瑞圖와 함께 형장미동邢張米侗으로 불리었습니다.

 

동기창의 화지畵旨

왕우승(즉 왕유)의 시에 이르기를, “전생에 잘못하여 시인이 되었으나, 전생의 나는 응당 화가였으리라고 하였는데, 나는 왕유의 구름에 감싸인 봉우리와 돌자취에서 아득히 천기가 나오고 붓을 움직이는 구상의 종횡무진함은 조화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당 이전에 어찌 이러한 화가가 있을 수 있겠는가?

오대 때 승려 혜숭과 송나라 초의 승려 거연은 모두 산수화를 잘 그렸다. 거연의 그림은 미원장(즉 미불)이 그 평담천진平淡天眞함을 칭찬하였다. 혜숭은 우승(즉 왕유)을 스승으로 삼았으나, 또 정교한 면으로 뛰어난데, <강남춘권江南春卷>이 가장 좋다. 한 사람은 육도(즉 육바라밀) 중의 선정禪定 같고, 한 사람은 서래선西來禪 같은데, 둘 다 화가의 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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