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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청주 운보미술관

작성자이종원|작성시간26.06.06|조회수67 목록 댓글 1

문화와 종교가 서로의 옷을 바꾸어 입는 순간은 언제나 낯설고도 눈부시다. 페루 쿠스코 대성당에서 마주한 흑인 예수, 그리고 최후의 만찬 식탁 위에 올라온 기니피그의 생경함이 그러했다.

 

가만히 기억을 거슬러 오르면 학창 시절 명동성당에서 마주했던 토착화 미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얗고 둥근 밀떡 대신 시루떡이 제단에 모셔지고 붉은 포도주 대신 뽀얀 막걸리가 잔에 채워지던 순간, 그것은 가슴을 툭 치고 들어오는 신선한 충격이자 신앙이 우리네 삶의 냄새를 맡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여기, 막걸리 냄새가 풀풀 나는 또 하나의 거룩한 성화가 있다. 바로 운보 김기창 화백이 남긴 <예수의 생애> 30점 연작이다.

 

예수의 탄생부터 부활에 이르는 거대한 서사가 한국화 특유의 유려한 필선과 담백한 색감 속에서 조용히 숨을 쉰다.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은 이 위대한 작업이 이루어진 시공간이다. 1952년, 온 나라가 포화와 비명으로 뒤덮였던 한국전쟁의 한복판. 운보는 피란지였던 군산의 처가에서 이 성화들을 한 점 한 점 완성해 나갔다.

 

어느 날 밤, 어두운 동굴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내리비쳤고 운보는 차갑게 식어버린 예수의 시체를 부둥켜안은 채 피를 토하듯 통곡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새벽녘 정신을 차렸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어둠이 아니라 창을 타고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이었다. 운보는 그 빛나는 방에 앉아 비로소 예수의 행적을 더듬으며 붓을 들었다.

 

그에게 붓질은 단순한 예술이 아닌 가장 간절한 기도였다. 찢겨 나간 산하와 죽어가는 동포들의 현실이 곧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고난이었다면, 전쟁의 종식과 평화는 곧 예수의 부활이자 예술의 부활이어야 했다. 우리 민족이 짊어진 시대의 십자가와 예수의 수난이 그곳에서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과 정서로 성경을 읽어 내려간 그의 화폭은 그래서 더욱 절절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동정녀 마리아의 방 한구석에는 다소곳이 물레가 놓여 있고, 최후의 만찬 식탁 위에는 빵 대신 김치와 탕국이 오른다. 갓을 쓴 이들에게 둘러싸여 조선의 궁궐 마당에서 문초를 받는 예수의 모습은 또 어떤가. 이는 단순히 외형의 변화를 넘어,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고 신앙을 우리 민족의 거친 현실 위로 굳건히 대지 내리게 한 숭고한 시도다.

 

생각해보면 운보의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수난이자 극복이었다. 어린 시절 청각을 잃고 침묵의 세계에 갇혔던 그가 아니던가.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그 깊고 고요한 내면의 바다에서 그는 신앙이라는 닻을 내리고 삶의 모진 풍파를 견뎌냈다. 들리지 않았기에 그는 마음의 귀를 열었고, 그 마음으로 신의 음성을 그렸다.

 

이제 그의 곁에 나란히 누운 또 하나의 영혼, 예술적 동반자이자 평생의 연인이었던 우향 박래현과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린다. 살아서는 서로의 빛이 되어주고 죽어서는 땅의 거친 흙 속에 나란히 묻힌 그들의 묘를 가만히 바라본다.

 

시대를 아파하고 신앙을 품었으며 마침내 위대한 예술로 부활한 두 사람의 깊은 예술혼을 향해 마음 깊이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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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반딧불이 | 작성시간 26.06.07 나들이 목록에 추가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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