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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피라미드, 춘천 소양강댐

작성자이종원|작성시간26.06.07|조회수90 목록 댓글 3

중학교 시절이었을까. 빛바랜 사회 교과서 표지를 장식했던 ‘소양강 다목적댐 준공기념탑’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것은 단순한 건축물의 사진이 아니라 우리 현대사에서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거대한 신화의 상징이자 아득한 시작점이었다.

 

소양강 다목적댐 준공기념탑

멀리서 바라보면 하늘을 향해 웅장하게 솟구친 두 개의 거대한 탑신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걸음을 가까이 옮겨 갈수록 탑은 다른 몸짓을 보여준다. 물을 뜻하는 영문자 ‘W(Water)’의 유려한 선이 보인다.

탑 전면에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소양강다목적댐 준공기념탑’이라는 굵직한 친필 휘호가 세월의 무게를 버티고 서 있다. 그 아래로는 지난 2023년 대한토목학회가 이 거대한 구조물에 헌사한 ‘대한민국 토목문화유산’ 동판이 단단하게 박혀 있다.

 

눈길을 더 높이 던져 탑의 꼭대기를 바라본다. 한 손에 거대한 톱니바퀴를 쥐고 있는 남자의 조형물이 붙어 있다. 뒤쪽은 한복을 입은 여성. 거칠고 투박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거친 건설 현장 이면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눈부신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그늘에서 묵묵히 삶을 지탱하며 희생했던 우리 어머니들과 여성들의 지대한 헌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해 목이 메어온다.

 

정주영 회장의 담판, 돌과 흙이 이룬 기적

1960년대의 대한민국은 매년 잔인하게 반복되는 극심한 가뭄과 홍수로 대지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던 시절이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시키고 산업화의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력과 용수의 확보가 절박했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거친 강물을 다스릴 유일한 해결책은 오직 하나 거대한 댐을 짓는 것뿐이었다.

 

소양강댐 건설의 역사에는 대한민국 토목사에 길이 남을 극적인 일화가 흐른다. 당초 설계를 맡았던 일본의 건설용역회사는 소양강댐을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 제안했다. 웅장하고 단단해 보이는 계획이었으나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은 이 계획에 강력히 반대하며 가로막고 섰다. 만약 콘크리트 댐을 지으려면 막대한 양의 시멘트와 철근을 수입해야 하는데 당시 우리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다. 게다가 아직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만에 하나라도 적의 폭격을 당해 댐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한강 하류와 서울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물바다가 될 것이라는 치명적인 이유였다

 

정주영 회장이 내놓은 대안은 뜻밖에도 댐 주변에 지천으로 널린 흙과 자갈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사력식(모래와 돌) 댐’이었다. 사력댐은 폭격을 맞더라도 그 부위만 잠시 내려앉을 뿐, 댐 전체가 도미노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돌과 흙이 지닌 자체 무게로 인해 다시 아래로 가라앉으며 스스로 틈을 메우는 강인한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다수의 전문가와 관료들은 "세계적인 기술자들도 콘크리트로 설계했는데, 왜 미개하게 돌을 쌓으려 하느냐"며 거세게 비난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물러서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그것은 국가의 운명을 걸고 벌인 뜨거운 논쟁이었다. 결단력 있는 기업가의 혜안을 믿어준 최고 통치자의 결단 이것만은 오늘날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극적인 담판 덕분에 우리는 귀한 외화와 공사비를 대폭 아낄 수 있었고, 우리 땅의 자재를 최대한 활용하는 무모하고도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냈다.

 

 

험난했던 나날. 온몸으로 막아낸 거친 물줄기

공사의 여정은 서러울 정도로 순탄치 않았다. 현대식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이었기에, 거대한 자연을 상대하기 위해 동원된 것은 결국 인간의 맨몸이었다. 연인원 600만 명에 달하는 인력이 밤낮을 잊은 채 거친 돌과 흙을 퍼 날랐다. 수많은 육군 공병 부대 장병들과 민간 근로자들이 그 척박한 협곡에 땀방울을 뿌렸다. 공사 초기에는 국토건설단이라는 이름 아래 병역 미필자나 부랑인, 기소유예자나 사회 정화 대상자라는 낙인이 찍힌 이들까지 강제 노역에 가까운 형태로 투입되어 온몸으로 바위를 깨뜨려야 했다.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댐의 기둥마다 깃들어 있는 셈이다.

 

1972년 8월, 공사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하늘이 무너질 듯 유례없는 대홍수가 찾아왔다. 미완성 상태였던 댐의 둑이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터질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댐이 터지면 서울이 잠긴다는 공포 속에서 현장 직원들과 군인들은 목숨을 걸고 폭우 속으로 뛰어들었다. 흙탕물이 키를 넘기는 어둠 속에서 밤새 모래마대를 쌓아 올린 끝에, 그들은 간신히 댐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냈다. 인간의 집념이 성난 자연의 힘을 꺾은 순간이었다.

1967년 4월 17일에 첫 삽을 뜬 공사는 6년 6개월이라는 길고도 치열한 고투 끝에 1973년 10월 15일, 마침내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다. 투입된 예산은 당시 국가 총예산의 6분의 1에 달하는 321억 원. 그야말로 국운을 건 초대형 국책사업이었다.

 

완공된 소양강댐은 저수 용량 29억 톤을 자랑하는 ‘동양 최대의 사력댐’이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규모의 거대한 내륙의 바다가 되었다. 이 댐 덕분에 수도권은 마침내 매년 겪던 물난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서울과 경기 일대는 끊이지 않는 줄기찬 용수와 전력을 공급받으며 눈부신 경제 도약의 나래를 펼치게 되었다.

 

피라미드를 닮은 댐의 내부를 들여다보다

소양강댐은 차가운 콘크리트를 부어 박제하듯 만든 댐이 아니다. 우리의 산천에서 거둔 흙과 돌을 정성스레 쌓아서 만든 따뜻하고도 단단한 사력댐이다. 그 속을 잘라 단면을 들여다보면 거대한 대칭형 피라미드 형태를 띠고 있어 묘한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댐의 가장 깊은 중심부에는 물을 막아주는 핵심 벽이 숨겨져 있는데, 그 정체는 놀랍게도 부드러운 ‘진흙’이다. 진흙은 입자가 매우 조밀하여 물이 결코 통과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완벽한 방수벽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고운 진흙을 중심부에 두껍고 단단하게 다져 넣은 뒤, 그 좌우를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필터층’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 가장 외곽에는 거대한 바위와 돌을 배치한 ‘사력층’을 두어 엄청난 무게로 진흙벽을 꾹 눌러 버티게 만들었다.

 

외곽으로 갈수록 무거운 돌들이 댐을 지탱해 주는 이 대칭형의 안정적인 경사면 구조 덕분에, 소양강댐은 거대한 수압과 어떠한 지진에도 끄떡없는 강력한 저항력을 지니게 되었다. 높이 123m, 길이 530m에 이르는 이 거대한 흙과 돌의 성벽은 그렇게 탄생했다.

 

푸른 물 밑에 잠긴 고향, 수몰민의 맺힌 애환

그러나 소양강댐이 가져다준 눈부신 경제 성장이라는 찬란한 ‘빛’의 이면에는, 정든 고향 땅을 영원히 잃어버린 수몰민들의 잔인한 ‘그림자’가 유령처럼 짙게 깔려 있다.

댐의 문이 닫히고 소양강 물줄기가 차오르면서, 정든 처마와 살가웠던 고갯길이 하나둘 물속으로 잠겨갔다. 춘성군(현 춘천시), 양구군, 인제군의 6개 면, 38개 리에 달하는 광활한 고향 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로 인해 3,153세대, 총 1만 8,546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채, 보따리 하나만을 들고 전국 각지로 서러운 유랑의 길을 떠나야 했다.

 

당시의 이주 대책이나 보상은 가난했던 국가의 사정만큼이나 턱없이 부족하고 눈물겨웠다. 제대로 된 정착 자금도 받지 못한 채, 대대손손 농사짓던 비옥한 농토와 손때 묻은 집을 뒤로하고 떠나야 했던 주민들은 타향의 거친 바닥에서 모진 고생을 하며 눈물로 삶을 일구어야 했다. 소양강 호숫가에 외롭게 서 있는 ‘소양강 처녀 동상’의 뒷모습이 유독 쓸쓸하고 애틋하게 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고향을 잃고 떠나간 이들의 슬픈 실루엣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양강댐 준공 50주년을 맞이했던 지난 2023년. 이들의 가슴속에 맺힌 오랜 아픔과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소양강댐 정상에 실향민들을 위한 ‘망향비’가 마침내 제막되었다.

 

국가의 눈부신 발전을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아늑했던 고향과 삶의 소중한 조각들을 내어주었던 수몰민들의 희생. 그 슬프고도 위대한 그리움은 지금도 소양강댐의 시린 푸른 물결 속에 소리 없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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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반딧불이 | 작성시간 26.06.08 물속 저 깊은 곳에 잠겨 있는 가슴 시린 사연을
    댐 물을 보며 즐기기만 했지
    잊고 있었네요...
  • 작성자팔색조 | 작성시간 26.06.08 댐의 위용만 훓었던 스스로가 조금은
    부끄러운 역사적사실ㆍ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사는건
    그시절 수많은분들의 결실ㆍ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ㆍ
  • 작성자*늘푸름* | 작성시간 26.06.08 소양강 댐의 깊은 뜻을 알게 되어ㅈ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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