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화려함보다 고요함을, 거대함보다 깊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불국사나 법주사처럼 이름만으로도 웅장한 대형 사찰을 찾기보다 완주 화암사의 호젓한 뒤안길이나 이름 없는 작은 암자에 마음이 먼저 머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오른 대형 교회의 외형보다는 낮고 소박하지만 그 안에 깃든 의미가 깊은 작은 교회가 문득 마음을 더 따스하게 건드린다.
경기도 가평에 자리한 '생명의 빛 예배당'이 바로 그런 공간이다. 이곳은 자연과 건축, 그리고 인간의 신앙이 조용히 맞물려 하나의 완벽한 풍경을 이룬다. 더욱이 이곳이 평생을 이국땅에서 바치고 돌아온 은퇴 선교사들의 마지막 안식처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공간이 품은 공기마저 한결 더 숭고하게 다가온다.
차가운 아파트나 콘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투명한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카보네이트가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어, 빛의 움직임에 따라 매 순간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피라미드 모양의 유리 온실을 얹은 옥상은 마치 하늘을 향해 열린 창 같다. 1층의 다정한 카페. 2층 선교사들의 숙소. 이 건물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3층 생명의 빛 예배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3층 로비를 지나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머리 위로 쏟아지는 엄청난 빛의 잔상에 그만 숨을 죽이게 된다. 천국을 상징한다는 반구형 돔은 자연광을 그대로 받아들여 공간 전체를 은혜와 사랑의 온기로 감싸 안는다.
그 빛 아래 중력을 거스른 채 하늘에 매달린 641개의 홍송 기둥들이 펼쳐진다. 빛을 무게로 달아 눈앞에 세워둔 듯한 나무 기둥들은 마치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수직의 계단처럼 묵직하게 서 있다.
‘생명의 빛’이라는 그 아름다운 이름처럼, 이 공간의 주인공은 생명과 빛 그 자체다. 비록 베어져 생명을 다한 나무들이지만, 이곳에서 수직으로 다시 세워지며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유리 큐브로 된 천장을 통과한 햇살이 원목의 거친 질감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예배당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이 예배당이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 존재해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형경기장을 닮은 둥근 예배 공간은 어머니의 따스한 품을 닮았다. 목회자가 높은 강대상 위에서 회중을 압도하는 위압적인 구조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나눔과 평등의 가치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공간의 정중앙, 잔잔한 수조 속에 외롭게 서 있는 투박한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요단강 혹은 세례를 받던 연못을 상징하는 물결 위로2주 동안 거칠게 용접해 만든 알루미늄 십자가가 묵묵히 서 있다. 고난을 겪으신 예수의 고통을 시각적으로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정면에 크게 새겨진 못 박힌 예수의 손을 바라보고 있으면 깊은 침묵 속에서 주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묵상의 시간이 찾아온다.
로비로 나오면 국내외 유명 예술가들의 혼이 담긴 도자기와 조형물들이 마주해 준다. 특히 중국의 도예가 주락경의 작품 <합창>은 하늘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입을 힘차게 벌려 노래하는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잠시 1층 카페로 내려가 자판기 커피 한 잔의 소박한 여유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다시 야외로 나와 언덕길을 오르면 교회 전체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유리 집 안에 포근히 안긴 또 다른 예배당의 모습과 그 안으로 빛이 스며드는 신비로운 광경을 바라보는 동안 저 멀리 용문산의 능선이 아련하게 눈에 들어온다.
생명의 빛 예수마을에서 결코 발걸음을 재촉해 지나쳐서는 안 될 곳이 있다. 바로 겟세마네 기도동산이다. 입구에는 한국어와 히브리어를 비롯해 세계 24개국의 언어로 정성스럽게 기록된 기도문 벽화가 흐르고 있다. 낯선 땅에서 평생을 헌신했던 선교사들의 땀방울과 눈물을 기리는 거룩한 기록이다.
동산에 흩어져 있는 14개의 독립된 큐브 모양의 작은 기도실은 꼭 한 번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아야 한다. 예수와 12사도 그리고 바울을 상징하는 이 방들은 겉보기엔 차가운 콘크리트 상자 같지만 내부는 단 3~4명이 겨우 앉을 만한 아늑한 원목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사방이 가로막힌 정육면체의 닫힌 공간임에도 막상 그 안에 앉으면 나무가 뿜어내는 온기와 독창적인 개방감 덕분에 신이 인간을 사랑과 은혜로 꼭 안아주시는 듯한 따스함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천장까지 길게 뻗어 올라간 십자가를 바라보며 깊은 기도의 강에 잠기게 된다.
길의 초입에서 만났던 베드로 카페는 마치 뒤집어놓은 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사람을 낚는 어부였던 베드로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초대 교회의 든든한 기둥으로 거듭났던 베드로의 삶처럼, 평생의 사역을 마친 은퇴 선교사들이 이곳에 마침내 배를 정박하고 참된 안식을 취한다는 영적 은유가 공간 구석구석에 스며 있다.
이 카페는 과거 푸른 바다를 누비던 오래된 목선을 해체하여 얻은 박달나무 고목으로 지어졌다. 거친 파도와 모진 바람을 온몸으로 견뎌온 세월의 뒤틀림과 거친 질감이 카페 내부의 기둥과 서까래, 그리고 가구마다 고스란히 살아 숨 쉰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압도적이면서도 아늑하게 다가오는 세월의 깊이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곳에서 은은한 커피 향을 맡으며, 거칠었던 삶의 항해를 멈추고 잠시 자신의 신앙과 지나온 삶의 궤적을 가만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