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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여행후기

대한민국의 반석을 키워낸 땅, 익산 황등석산 '어스언더파크'

작성자이종원|작성시간26.06.17|조회수74 목록 댓글 1

우주에서 운석이 떨어졌다면 이렇게 깊고 거대한 상흔을 남겼을 것이다. 익산의 황등석산 채석장은 그 깊이가 100여 미터, 넓이는 축구장 9개를 합친 크기에 달한다.

 

단박에 만들어진 인공의 블랙홀이 아니다. 개미가 집을 파듯 인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이며 만들어낸 거대한 흔적이다. 조선 철종 9년(1858년경) 청나라 사람이 처음 이곳에서 돌을 캐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석산의 주인이 되기도 했다.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무려 168년이라는 세월이 이 깊은 구덩이 속에 고여 있다.

본래는 아담한 산이었으나 돌을 캐내며 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내 대지는 가장 깊숙한 속내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지금도 100미터 아래까지 속살을 파내려 갔는데 돌은 과연 얼마나 더 깊은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할까.

 

비가 오면 어떻하나? 가장 깊은 바닥에 고인 빗물은 저 높은 지상으로 한 번에 날아오를 날개가 없다. 그리하여 석산은 품을 나누어 중간거점마다 조용히 물을 모아두는 웅덩이를 만든다. 아래에서 모인 물이 다음 계단으로 다시 그 다음 계단으로 한 걸음씩 차근차근 올라가는 단계별 양수 시스템은 마치 거친 산을 오르는 이들이 서로의 손을 잡아주듯 다정하고도 치밀한 몸짓이다. 장마철의 거센 폭우가 석산의 심장을 세차게 두드릴 때면,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고성능 대형 배수 펌프들이 일제히 육중한 숨을 몰아쉬며 깨어난다.

 

이곳의 돌은 시간을 거슬러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이 되었고 고려의 왕궁리 오층석탑이 되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돌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으니 인근 연동리 석조여래불상으로 거듭나 자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황등석의 품질은 워낙 뛰어나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증언하는 수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의 뼈대가 되었다. 청와대 영빈관의 당당한 기둥, 국회의사당의 외벽과 석주, 대법원 청사, 옛 서울역사, 그리고 새로 복원한 미륵사지 동탑이 모두 황등석이다. 독립기념관의 하얀 석물과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의 기단 역시 이 땅의 속살로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의 단단한 반석을 길러낸 이 역사적 현장은 이제 복합문화예술 공간인 '어스언더파크(Earth Under Park)'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말로 풀면 '공원 아래 묻힌 땅'이라는 정겨운 이름을 가진 곳이다.

 

이 거대한 석산에는 두 곳의 전망대가 있다. 제1전망대는 원형 석산의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복합 플랫폼 구조로 아늑한 카페를 겸한다. 2025년 10월에 준공된 이곳은 석산이 자아내는 압도적인 장관을 조망하려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

 

반대편에서 거대한 수직 벽을 바라보는 제2전망대는 2026년 하반기 개장을 목표로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인부들이 돌을 절삭하고 포크레인이 커다란 돌을 들어 올리는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다. 어찌나 묵직한지 그 거대한 트럭도 각설탕 모양을 닮은 거대한 석재를 딱 두 개만 실은 채 대각선으로 놓인 아슬아슬한 길을 치고 올라간다. 위쪽에 마련된 야적장에는 깍두기 모양으로 잘린 돌들이 끝없이 널려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대지미술을 연상시킨다.

해 질 무렵이 되면 수직의 절개지가 노을빛을 받아 다채로운 색채의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밤이 되면 그 거대한 벽면이 미디어 아트의 캔버스로 변신한다고 하니 그 풍경 또한 무척 기다려진다.

 

제1전망대에서 제2전망대까지는 고젓한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압도적인 풍경에 연신 감탄사를 뱉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웅장한 대지의 협곡 바로 곁에 평범한 민가와 아파트, 면사무소와 푸른 논밭이 이웃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화롭고 평범한 농촌 풍경 한복판에 거대한 지구의 속살이 드러나 있는 모습은 어딘가 낯설고도 신비롭다. 오랜 세월 소음과 분진을 묵묵히 견뎌내 준 황등 사람들의 숭고한 인내에 마음 깊이 고마움이 고인다.

 

지상은 적막할 정도로 고요한 동네이지만, 땅 아래에서는 화강암을 절개하고 트럭으로 나르느라 분주한 삶의 박동이 친다. 이토록 극적인 역설의 풍경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삼각형 모양의 제1전망대 카페는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것처럼 설계되어 있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찔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그곳에서 진한 대추차 한 잔을 머금고 통창 너머로 펼쳐지는 경이로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짜릿한 전율이 차오른다. 대한민국의 치열했던 산업 현장 중에 이토록 박진감 넘치고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곳이 또 있을까.

 

돌이 풍부한 고장답게 익산에서 황등읍내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석재산업문화고장'이라는 묵직한 석비가 나그네를 맞이한다. 마을의 교회도 황등석으로 단단하게 올려졌고, 어느 식당 앞에는 황등석으로 정성스레 깎아 만든 아기돼지 조형물이 서 있어 미소를 자아낸다. 황등역 앞에 서 있는 나훈아의 명곡 '고향역' 기차 조형물 역시 황등석의 몸을 입고 있다.

 

황등석산에서 차로 불과 3~5분 거리에 아가페 정원이 있다. 웅장하고 거친 채석장의 풍경을 눈에 담은 뒤, 이곳으로 오면 초록의 평화가 온몸을 감싼다. 정원의 하이라이트는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다. 마치 비밀의 숲속을 거니는 듯한 고즈넉함을 선사하며, 계절마다 피어나는 다채로운 꽃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가는 길

네비로 어스언더파크를 검색하면 된다.

KTX가 서는 익산역에서 버스로 35분 쯤 걸린다. 35번,34번,36번 등 수시로 버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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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늘푸름* | 작성시간 09:44 new 나이가 들수록 입이 무거워져야 할텐데 이런 신비로운 곳을 알게 해주시니 자랑질?을 안할수 없어요.
    귀한곳 만날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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