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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모두의 부모님을 위해 다 함께 고민해보시길...

작성자사필귀정(용인)|작성시간10.06.21|조회수99 목록 댓글 3
 

 

 leesangho.com은 고발기자를 자임하고 그동안 현장을 지켜온 이상호기자가
네티즌과의 연대를 통한 사회변혁을 꿈꾸는 곳 입니다.


"MBC 시사매거진 2580", "사실은" 프로그램의 탐사, 고발전문기자.
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대 경영학과 졸업 후 같은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함. 현재는 '한미동맹과 언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를 받았다.
95년 MBC보도국에 입사한 이후, 이상호 기자는 그동안 경찰, 법조, 카메라출동, 외교부 등을 출입했으며, 한때 MBC 연예뉴스 앵커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남국제환경박람회를 고발해 그 해 한국신문방송인클럽 언론대상을 수여한 바 있으며,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 등 사내외 특종상을 다수 수상했다.
기자의 본분을 비리고발이라 믿는 그는, 사십차례에 달하는 각종 소송과 살해위협에도 불구하고 탐사보도 연구와 취재에 매달리고 있다.

 

 

 

침뜸으로 암도 다스리는 구당 김남수 선생

 암, 잡을 수 있다

1915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구당 김남수 선생은 부친에게 한학과 침구학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80여 년 동안 고집스레 지켜온 침뜸으로 현대의학이 고치지 못한 환자들을 살려왔다. MBC 이상호 기자가 이런 구당 선생을 6년간 취재해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라는 책을 발표했다. 집념어린 이상호 기자와의 인터뷰.

 
이상호 기자의 6년 취재 일기 “한국에서 쫓아낸 침뜸이 미국에서 재조명된다면 너무 가슴 아픈 일 아닙니까?”작년 여름, 구당 김남수 선생은 미국 애틀랜타로 떠났다. 조국에서는 더 이상 그의 의술로 사람을 살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구당 선생의 침뜸에 큰 관심을 보인 미국 의료진의 초청으로 그는 미국행을 결심했다. 오직 침뜸만으로 인류애를 실천해온 구당 선생은 현재 애틀랜타 남부에 위치한 리버데일 암센터에서 파란 눈의 암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구당의 곁에서 침뜸의 놀라운 신비를 목격한 이상호 기자. 그는 구당 선생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구당 침뜸 의학 알리기’ 프로젝트를 수년간 진행해왔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자본주의의 폐해를 치유할 수 있는 동양의 정신으로 구당 선생의 침뜸만 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구당의 비법은 ‘신체 균형 회복’

 
“구당 선생께서 ‘네가 언제 내 머릿속에 들어가서 이런 걸 다 보고 나왔냐’며 흡족해하셨습니다. 이번 책은 구당 선생을 만난 지난 6년 동안의 메모와 인터뷰, 고민들과 관련 독서들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침뜸의 신비를 알게 된 사람으로서, 또한 기자로서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이상호 기자는 2004년 겨울 구당 선생을 처음 만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구당 선생을 용한 침구사 정도로만 알고 있었단다. 그런데 실제로 접한 구당 선생의 침뜸은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병원에서 포기한 암환자들의 암세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오랜 기간 투병해온 환자의 고통도 사라지게 만들곤 했다.

 
“처음에는 대부분 혹시나 하고 치료를 받습니다. 하지만, 치료 결과를 보고 모두 충격으로 받아들입니다. 병원에서 몇 년을 끌어온 병이 단 며칠 만에 사라지고, 불치병이라 불리던 병까지 나아버리니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죠. 구당 선생 스스로도 신기하다고 하세요. 그 맛에 계속 환자를 만나게 된다고요.”그의 취재수첩에는 구당 선생의 침뜸으로 효과를 본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전직 대통령들을 비롯해, 종교·문화계 인사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들도 상당하다. 그들은 모두 침뜸의 효능에 충격을 받고, 구당 선생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또 그들 가운데는 구당 선생으로부터 침뜸을 배워 봉사를 하거나, 후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구당 선생에게 침뜸을 배워 봉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한 해 15만 명이 무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에 30여 개의 무료 봉사소가 생겼고, 기업체를 중심으로 뜸방도 생기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사회현상입니다. 구당 선생은 의료인이기 이전에 철학자이자 보건의료운동가입니다. 2만 명에 이르는 한의사들의 견제와 탄압을 받아가며 일궈낸 업적치고는 정말 대단한 일 아닙니까?”구당 선생의 치료 원리는 ‘신체 균형의 회복’이다.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 몸에 병이 생긴다는 것. 그는 몸이 다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도록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치료법을 쓴다.

 
그 역시 전형적인 한의학의 방법론을 따르지만, 수단은 다르다.“침과 뜸은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데,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특히 뜸은 그야말로 아직 개봉되지 않은 보물상자와도 같습니다. 미국의 의사들이 그걸 알아버렸고요. 처음 침뜸의 효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그들이 이제는 그 원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서양의학의 본가인 미국에서 침뜸이 인정받고 추앙받는 때가 올 것입니다. 한국에서 쫓아낸 침뜸이 미국에서 재조명된다면 너무 가슴 아픈 일 아닙니까?”

 
왜 침과 뜸인가?

 
구당 선생 이야기를 꺼낼 때, 누구나 처음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침뜸의 치유 효과다. 선생의 말대로 침뜸은 만병통치의 치료법이 아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침은 다양한 병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뜸은 구토와 어지럼증 등 부작용을 줄여줌으로써 항암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임상 자료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이상호 기자는 생체전자기학적 연구 등 다양한 서구 과학이론을 동원하여 이러한 원리를 설명하려고 한다. “침은 정확한 경혈의 위치를 알아야 놓을 수 있지만 뜸은 비슷한 혈자리에만 놓아도 누구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누구나 집에서 원하는 대로 뜸을 놓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아주 작은 크기로 뜰 경우 상처도 남지 않습니다. 선생은 ‘도둑질이 병 낫게 하는 것만큼 좋을까? 천하의 도둑도 침뜸을 알면 도둑질을 그만둘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시술을 좋아하십니다.

 
”이상호 기자는 2009년 3월부터 10월 사이 한미 양국을 오가며 수차례에 걸쳐 구당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를 바탕으로 책을 구성했다. 구당과 침뜸에 대한 방대한 자료와 관련 연구들을 망라하여 음양오행에 근거한 동양의학의 세계를 깊숙이 다뤘다. 침뜸이 어떻게 생겨서 전해 내려왔으며, 특히 구당이 집대성하고 새롭게 발전시킨 구당 침뜸의학은 이전의 동양의학과 어떻게 다르며, 왜 치유 효과가 좋은지, 도대체 어떤 작용을 통해 어떻게 병을 낫게 하는지, 구당이 보편적으로 주장하는 새로운 치료법과 앞으로 구당 침뜸의학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구당 선생은 이상호 기자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침은 기를 움직이고, 뜸은 혈을 움직인다. 그렇다면 기와 혈을 함께 움직이게 하면 더 좋을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됐어. 임상 과정에서 분명히 알았지. 침은 전기 전도 역할을 하고, 뜸은 전깃줄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침과 뜸을 함께 써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어.”

 
 암, 잡을 수 있다

 
친딸 같았던 故장진영과 보낸 82일영화배우 故장진영이 구당 선생의 침뜸 치료를 받고 위암 4기에서 2기로 호전되었다는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발병 후 장진영의 기획사 측으로부터 구당 선생의 치료를 부탁받았던 이상호는 구당 선생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구당 선생은 장진영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또 그녀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기에 구당 선생으로서도 큰 부담이 되었고요. 대학병원 두 곳에서 어떤 방법을 써도 3개월을 넘길 수 없다는 사형선고까지 내린 상태였으니까요. 그녀의 위는 물론 복부, 임파선까지 암이 전이되었고, 게다가 복수까지 팽팽하게 찬 상태였습니다. 삶의 마지막 희망을 잡으려는 듯 장진영은 무려 82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구당 선생을 찾아왔습니다.”

 
구당 선생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장진영을 마치 자신의 딸처럼 정성스레 치료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장진영의 병세를 보며, 이상호는 80년 임상의 깊이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호 기자는 떨리는 손으로 모든 과정을 기록했다. “매일 새벽마다 침뜸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곧 기적이 일어났지요. 일주일 만에 암이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복수가 모두 빠져버렸고, 종양이 한군데로 몰리면서 절반 이하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장진영은 침뜸 치료 이전에 느꼈던 구토와 어지럼증을 치료 이후에는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침뜸 치료 후 3개월 만에 실시된 정밀검사에서 그녀는 말기 암에서 2기 환자로 호전되었습니다. 모든 전이가 사라지고, 위벽도 깨끗해졌습니다. 다만 위 한쪽에 조그만 종양만 남은 상태였습니다.”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되자, 그 누구보다 장진영 스스로 구당 선생의 침뜸 치료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녀는 침뜸을 알리는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침뜸 봉사회에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 효능을 전해주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바람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장진영은 암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임상내용을 공개해도 좋다고까지 이야기한 상태였습니다. 구당 선생이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하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입에 담지 못할 온갖 비난을 듣기도 했으니까요. 중병에 걸린 여배우를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였죠. 그러나 구당 선생은 장진영에게서 치료비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병원 측에서 장진영에게 침뜸 치료에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사실 그녀는 구당 선생에게 치료를 받는 중에도 병원에서 침뜸으로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눈치챌까 봐 노심초사했었다고 한다. 82일 동안 지속적으로 침뜸을 해온 장진영은 2008년 12월 말부터 구당 선생과 만나지 않았다. 구당으로부터 치료를 받은 난치병 환자들이 거의 다 그랬다. 병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구당을 찾았다가 몸이 좋아지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구당 선생은 그런 지옥 같은 세상을 80년을 버텨왔습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장진영의 임상기록을 완성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그녀의 바람대로 암으로 고통받는 모든 환자들을 위해 언제가는 그녀의 임상기록이 공개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95세 청년, 구당의 건강 중심 생활습관“세상이 거꾸로 가다보니 구당 선생이 기인이 된 거지요. 지난 6년 동안 저는 그분의 집 안 구석구석을 봤고, 장판 밑도 들여다봤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겁니다. 구당 선생은 돈보다는 환자의 고통을 봅니다. 환자의 입장을 우선 생각합니다. 환자를 돈으로 보거나 환자 위에 군림하려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정말 겸손한 분입니다. 심지어 한참 아랫사람에게도 말을 놓는 것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특히 구당 선생은 ‘5분 식사’로 유명하다. 전국 각지에서 청량리의 작은 침술원으로 그를 찾아온 환자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며 자신의 점심시간을 평생 5분으로 잡아두었던 것.

 
그는 최소한의 음식을 섭취하는 소식주의자다.“장수하는 동물들을 봐라, 거북이든, 학이든 어느 동물이 살이 쪘든?”공식적인 구당 선생의 건강비결은 하루 한 번 뜨는 뜸이다. 약은 일체 먹지 않고, 별도의 운동도 하지 않는다. 약주는 안 하지만, 커피는 많이 마시는 편이라고. 어떤 날은 자판기 커피를 열 잔이나 마실 때도 있었다.“구당 선생의 건강 비결은 아무거나 잘 드시고 많이 웃고,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유지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이상호가 계획 중인 ‘구당 침뜸의학 알리기’의 다음 프로젝트인 ‘백년의 여행’은 미국에서 계속된다. 우선 현재 참여하고 있는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침뜸 임상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구당 선생의 백 세 생일이 되기 전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하도록 돕고 싶단다. 그 다음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구당 선생의 침뜸을 새로 개편될 의료보험 제도에서 채택하도록 권고할거란다. 

 
마지막으로 그가 갖고 있는 계획은 반기문 총장을 찾아가는 것이다. 구당 선생의 침뜸으로 세계 의료봉사를 나설 예정인데, 유엔이 함께 해달라고 떼를 쓸 작정이란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를 치료해주고, 각종 난치병 치료를 위한 유엔 차원의 교육사업을 행하고 싶다.“‘백 년의 여행’은 이제 막 길을 떠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순례입니다. 올해 95세의 구당 선생이 백 세가 되기 전에 끝나기를 바랍니다. 부디 시간이 기다려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랬지. 의사들에게 많이 쫓겨났어.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가서 침뜸으로 한숨을 돌려놓으면 어디서 알고 왔는지 당장 나가라고 삿대질을 해. 얼마 전 노태우 대통령,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누님을 치료하러 갈 때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들어갔잖아. 내 인생은 몰래 다니며 침을 놓는, ‘몰래침’ 인생인 것 같아.”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 중에서/

 
여성조선  취재 정은주 | 사진 이상호·도서출판 ‘동아시아’

출처: http://danmee.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04/2010010401296_2.html

 

 

 

워낙 글 재주가 없기에 이렇게 다른 사람이 쓴 내용을 대신 올려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침.뜸을 사랑하는 초보침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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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 작성자반데라수(울산) | 작성시간 10.06.21 잘 봣습니다^^
  • 작성자써니(광주) | 작성시간 10.06.21 잘읽었습니다~^^
  • 작성자대물조아(온양) | 작성시간 10.06.21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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