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http://cafe.daum.net/montblank/TEUE/117)에 이어 계속 되는 이야기 입니다^^
양피지, 종이, 깃털 펜
[PARCHMENT, PAPER, AND THE QUILL PEN]
이집트인의 리드 브러시와 파피루스의 혁명적 도입은 오늘날 만년필과 종이의 관계로 이어지고 있고 이는 필기도구와 잉크, 그리고 쓰기 면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각각의 단계를 거칠 때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 당시 필기구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인들이 사용했던 리드 브러시보다 좀 더 단단한 브러시를 도입했습니다. 그들은 지금은 ‘노근’ 이라는 한약재로 유명한 ‘Phragmites communis’ 라는 굉장히 단단한 식물을 리드 펜을 만드는데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단단할 뿐더러 가공성이 뛰어났습니다.
[지금은 리드 펜보다 한약재로 유명한 Phragmites communis]
파피루스는 기원전 2세기까지 쓰기 면으로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리스와 여타 소국들 뿐만 아니라 로마에서 부터도 엄청난 수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플리니우스(23-79)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B.C.197년에서 부터 158년 사이에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자신의 라이벌인 아시아의 소국, 페르가몬(Pergamon)의 에우메네스 2세를 견제하기 위해 파피루스를 공급하는 것을 끊었습니다. 단어 "양피지(Parchment)"는 페르가몬에서 새로운 매끄러운 쓰기 면을 발견하여 파피루스의 대안으로 가죽을 사용한 것에서 부터 파생된 단어입니다. 실제로 가죽은 적어도 기원전 2500년에서부터 쓰기 위해 사용되어 왔지만, 우리에게 보편적인 쓰기 면으로써 사용되게 하여 매끄럽고, 흰색의, 양면 시트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은 페르가몬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암흑 시대에서 19세기까지, 깃털 펜은 유럽 문명이 성장하는 모든 측면이 기록 된 수단이었었습니다. 종교의 작품에서 부터, 철학, 문학, 역사, 과학, 의학, 행정의 모든 기록들은 깃털 펜으로부터 작성이 되었지요. 그럼 이에 따라서 첫번째 깃털펜의 제작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나게 되겠습니다. 사실 깃털 펜이 언제 만들어 졌는가에 대한 상당한 의문과 추측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 정황을 따져볼 때 깃털 펜은 적어도 파피루스의 거친 표면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깃털 펜으로 원활하게 필기를 하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양피나 가죽재질의 피지가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한편으로는 로마사람들이 속이 빈 갈대와 새의 깃털 사이의 유사성을 인식하여 만들어 내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순수하게 상황에 맞추어진 근거일 뿐입니다.
[산 비탈레 성당의 St. 마태의 모자이크. 좌측 중앙에 퀼펜과 리드펜이 보인다.]
깃털 펜에 관련된 가장 빠른 증거가 되는 기록은 이탈리아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에서 발견됩니다. A.D. 547년 5월 17일에 설립된 이 교회는 그 내부의 모자이크에 St. 마태가 깃털 펜과 리드를 가지고 그의 복음서를 작성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깃털 펜은 이전 펜에 비해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전의 여러 펜보다 유연했고, 오래 지속되었으며, 세세한 점까지 잘라내어 사용할 수 있었고, 또한 더 광범위하게 사용 되었다는 것입니다. 깃털 펜의 발명은 종이의 발명과 더불어 지난 필기구 역사상 가장 대단한 일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종이의 발명은 105년 중국의 ‘채륜’ 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채륜은 죽순과, 나무의 속껍질, 그리고 삼을 이용해서 반죽하고 그것을 끓인 후에 채로 걸러서 시트에 잘 흩어두고 말리는 작업을 통해 종이를 만들었는데, 무역을 함에 따라서 서쪽으로 종이의 사용 및 제조의 방법이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793년, 페르시아의 바그다드에서 종이가 운용되기 시작하였고 다마스쿠스, 이집트, 모로코와 같이 전 아랍세계에 확산되었습니다. 1150년, 유럽에서 처음으로 스페인에 제지 공장이 세워졌고, 1189에 프랑스, 1260년에 이탈리아, 1260년에 이탈리아, 1389년에 독일에 종이 공장이 세워졌다. 마침내 1498년, 영국 런던의 상인인 존 테이트가 국왕 헨리 7세의 통치 기간 동안에 종이를 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나무의 속 껍질과 식물로 만든 종이는 이후 19세기호 오면서 목재 펄프 종이로 대체되었습니다.
여러 가죽 종이나 양피지와는 달리 종이는 책이 대량으로 인쇄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비교적 저렴하며 대량으로 신속하게 생산되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종이를 이용한 초기의 책은 1457년에 독일에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독일의 마인츠에서 만들어낸 구텐베르크 성경이었습니다. 이러한 인쇄본들은 전문 서적의 출판들로 이어졌는데, 이 이유를 알아보자면 인쇄술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한권의 책을 위해서 거위나 칠면조, 또는 백조의 깃털을 사용하여 필사 하였는데, 자그마치 5마리 분량의 깃털을 사용해야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세기 말까지 영국에서의 깃털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수백만의 거위들이 그 깃털을 위해서 사육 되었고, 또한 북미의 야생 거위 깃털을 Hudson’s Bay 컴퍼니로부터 수입함으로써 그 수요를 메웠습니다. 깃털로 글씨를 쓰기 위한 작업은 예술적이고 과학적입니다. 깃털 펜은 매우 쉽게 날카로움을 잃었기 때문에 자주 다시 깃털을 잘라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숙련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주머니 칼이나 다시 날카롭게 깃털을 다듬어 주는 도구를 사용하여 그 깃털의 수명을 연장하였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깃털 펜의 수명을 연장하며 사용했지만, 더 이상 다듬어 사용할 수 없게 무뎌졌을 때 그들은 금방 새로운 펜을 찾을 수 있도록 많은 상품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저명한 영국의 발명가인 Joseph Bramah (1749-1815)는 1809년에 기계적인 깃털 절단기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이것은 상업적으로 굉장히 성공했는데, 닙을 여러 조각으로 절단 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 개의 깃털에서 여러 개의 닙을 잘라내어 만든 최초의 기계적 생산으로 만들어진 닙인 "Bramah's Patent Pens" 가 판매 되었습니다. 이렇게 판매된 “Bramah’s Patent Pens”는 Bramah의 또다른 특허 상품인 “Bramah's patent holders” 의 잠금장치에 꼭 맞게 끼워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홀더 중에서는 귀금속, 상아, 준보석 등으로 제작해 만든 절묘한 디자인을 가진 상품도 있었는데 그것들은 지금도 수집가들 사이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1809년 특허를 받은 Bramah's Patent Pens ⓒ Dr J K Marshall]
Bramah의 특허 보호가 15년 후에 만료되면서 Palmer, Cooper, Mordan 등 많은 경쟁 업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업체들이 경쟁하면서 굉장히 많은 형태와 디자인의 펜들이 등장 하였는데, 특히 Mordan의 경우에는 많은 특허와 흔하지 않은 디자인 등을 내세우며 크게 성장했습니다. 경쟁이 지속적으로 계속되면서 1809년 25개 한케이스에 3실링이던 깃털닙은 1824년 1실링 6펜스로 가격이 내려갔습니다. 1845년경 스틸펜촉이 성공하여 나타날 때 까지 깃털 펜의 인기는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