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하알로트카
인생의 두 번째 기회
이번 주의 파라샤는 ‘페사흐 쉐니(Pesach Sheini)’, 즉 두 번째 유월절 제물에 대해 다룹니다. 유대인 중 일부는 시신에 접촉하여 부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정해진 시기인 니산월 14일에 유월절 제물을 바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쉐와 아하론에게 왜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이 미쯔바를 이행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모쉐는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여쭈었고,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한 달 뒤인 아이야르월 14일, 즉 '페사흐 쉐니'에 제물을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민수기 9:6-11).
주석서 『레마안 아하이 브레이아이(L'ma'an Achai V'Rei'ai)』에 따르면, 이 이야기의 교훈은 사람에게는 언제나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한 사람들이 결국 유월절 제물을 드릴 또 다른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들의 초기 요청 자체에서도 해결책이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태도를 배웠을까요? 왜 그들은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일까요?
탈무드(수카 25a)는 이 사람들을 요셉의 관을 메는 자들로 밝히고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우리가 제기한 의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요셉이 임종을 앞두었을 때, 그는 형제들에게 “나는 죽으려니와, 하나님께서 파코드 이프코드(פָּקֹד יִפְקֹד, pakod yifkod)하시리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대략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기억하시리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동사가 두 번 반복되었을까요? 요셉이 단순히 '이프코드(יִפְקֹד, yifkod)'라고만 말했다 해도 같은 의미가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 중복된 표현을 통해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언제나 두 번째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말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께서 지금 너희를 기억하지 않으신다(פָּקֹד, 파코드) 해도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께서는 다른 때에 너희를 기억하실(יִפְקֹד, 이프코드) 것이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팔려 노예가 되었을 때, 가족과 재산, 자유를 모두 잃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의로움을 지켰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두 번째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요셉이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은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가족과 재회했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부를 누리게 되었으며, 이집트 제국의 총리로서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쉐와 아하론에게 유월절 제물을 바칠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질지 묻던 사람들은 요셉에게서 그 낙관적인 태도를 배웠습니다. 요셉의 관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요셉이 구현한 가치관에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남긴 깊은 인상으로 인해, 그들은 모쉐와 아하론에게 다가가 두 번째 기회를 요청할 수 있는 거룩한 대담함을 갖게 된 것입니다.
신부의 비밀
『לְמַעַן אַחַי וְרֵעָי, L'ma'an Achai V'Rei'ai(레만 아하이 베레아이)』에 따르면, 요셉은 어머니 라헬로부터 이러한 태도를 배웠다고 합니다. 그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헬의 첫날밤에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라헬은 야아콥에게 약혼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삼촌 라반의 교활한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야아콥은, 라반이 자신을 라헬의 언니인 레아와 결혼시키려 할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이러한 의심을 바탕으로 야아콥과 라헬은 결혼식 천막 아래에서 베일을 쓴 신부의 정체를 야아콥이 확인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신호를 미리 정해 두었습나다.
결혼식 당일, 라반은 라헬이 집을 나가는 것을 막고 대신 레아를 라헬로 위장시켜 결혼식장에 데려갔다. 라헬은 언니가 잘못된 신부로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견디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에, 미리 정해둔 신호들을 레아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메길라 13b).
토라는 레아의 눈이 “라코트(רַכּוֹת, rakot)”였다고 전하는데, 이 단어는 “부드러운” 또는 “약한”을 의미합니다(창세기 29:17). 탈무드(바바 바트라 123a)는 토라가 어떻게 의로운 사람에 대해 그렇게 폄하하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특히 토라의 문체는 하찮은 피조물에게조차도 공손하게 언급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태울 동물들을 모을 때, 토라는 그가 “깨끗한 것과 깨끗하지 않은 것”을 모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세기 7:8). 토라가 “부정한 것” 대신 “깨끗하지 않은 것”이라는 추가 표현을 사용한 점으로부터, 우리 현인들은 토라가 비코셔(비정결) 동물들의 존엄성조차 존중하려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음을 유추합니다!
탈무드는 레아의 눈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이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의 표현이라고 설명합니다. 레아는 사람들이 자신과 여동생 라헬이 사촌인 야아콥과 에서와 결혼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맏이 둘(에서와 레아)과 막내 둘(야아콥과 라헬)이 짝을 이룰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레아가 에서에 대해 묻자, 그는 악한 사람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야아콥에 대해 묻자, 그는 토라의 “장막에 앉아” 자신의 성품을 완성해 나가는 “완전한 사람”(창세기 25:27)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레아는 이 말을 듣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녀 역시 의로운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너무 많이 울어서 속눈썹이 다 빠졌습니다. 그녀의 눈물을 묘사하며 토라는 그녀의 눈을 “부드럽다”거나 “약하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의로운 남자와 결혼하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그녀의 마음을 칭찬하는 표현입니다.
공적인 스캔들
이러한 모든 배경 정보를 바탕으로 볼 때, 이제 해결해야 할 새로운 난제가 생겼습니다. 라반의 속임수로 인해 레아가 야아콥과 결혼하게 되면, 라헬은 아마도 에서와 결혼해야 할 처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라헬이 비밀 신호를 보내준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물론, 레아가 결혼식장에서 잘못된 신부로 밝혀졌다면 그녀는 극심한 굴욕을 당했을 것이고, 그 스캔들은 널리 퍼졌을 것입니다. 물론 몇 주가 지나면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신 라헬은 레아에게 신호를 가르쳐 주었고, 그로 인해 자신의 남은 인생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 이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을까요? 라헬이 악한 남자와 남은 평생을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차라리 레아를 일시적으로 모욕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레만 아하이 베레아이(L'ma'an Achai V'Rei'ai)"에 따르면, 라헬이 레아에게 신호를 가르쳤을 때, 그녀는 에서와 결혼할 운명을 확정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세상에 '두 번째 기회'라는 개념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비록 형제 자매들이 서로 결혼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인 것처럼 보였지만, 라헬은 이러한 관점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녀는 세 번째 가능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만약 그녀가 바로 그 순간 야아콥과 결혼할 자격이 없다 하더라도, 언젠가 미래에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질 것임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요셉은 이 개념을 창안하여 세상에 전한 어머니 라헬로부터 ‘두 번째 기회’라는 원칙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아무리 더러워졌으며,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소명에 응답하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라헬과 요셉의 방식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두 번째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By Rabbi Abba Wagens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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