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문명의 오랜 뿌리, 유대교의 영적 유산을 마주하다:

작성자phantom|작성시간26.06.07|조회수33 목록 댓글 0

 

#유다이즘

 

문명의 오랜 뿌리, 유대교의 영적 유산을 마주하다:

 

왜 지금 우리는 유대교를 알아야 하는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해받아 왔으면서도, 동시에 서구 문명의 도덕적·정신적 기초를 형성한 하나의 거대한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고자 합니다. 바로 '유대교(Judaism)'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유대인과 유대교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20% 이상을 배출한 민족, 뉴욕의 금융가와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혹은 수천 년간 나라 없이 떠돌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은 기적의 역사 같은 것들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현상 뒤에 숨겨진 진짜 ‘엔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유대인을 유대인답게 만들고, 그토록 혹독한 역사적 시련 속에서도 그들을 생존하게 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벤자민 블레크(Benjamin Blech) 랍비는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Understanding Judaism》을 통해 그 답이 바로 그들의 ‘신앙과 삶의 체계’, 즉 유대교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블레크 랍비는 그의 글에서 유대교를 단순히 박물관에 박제된 고대 종교로 다루지 않습니다. 도리어 인공지능이 도래하고 도덕적 나침반을 잃어버린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삶을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게 살아내는 '실천적 지혜의 지도'로 제시합니다. 유대교의 다섯 가지 핵심 기둥을 살펴보며, 우리의 삶을 뒤흔들 영적 유산을 함께 발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대교의 하나님 — 철저한 유일신교와 인간의 파트너십

 

많은 사람이 유대교의 하나님을 떠올릴 때, 구약성경에 나오는 '두렵고 엄격하며 진노하는 신'의 이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블레크 랍비는 이것이 기독교적 오해이거나 겉핥기식 해석이 낳은 거대한 편견이라고 지적합니다. 유대교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가장 위대한 혁명은 바로 '철저한 유일신 사상(Ethical Monotheism)'입니다.

 

유대교 이전의 고대 세계는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신들은 인간처럼 탐욕스럽고, 질투하며, 변덕스러웠습니다. 인간은 그저 신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유대교는 선포했습니다. 우주의 창조주는 오직 한 분이시며, 그분은 어떤 물질적 형상으로도 가둘 수 없는 초월적 존재이신 동시에, 철저히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신이 도덕적이라는 말은, 신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 역시 번드르르한 제사가 아니라 '도덕적인 삶'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유대교만의 독특한 '동역자 관계(Partnership)' 개념이 등장합니다. 유대교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왕 앞에 엎드린 노예로 보지 않으십니다. 유대교의 주석서인 미드라쉬(Midrash)에 따르면,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되 '의도적으로 불완전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머지 공간은 너희가 채워라."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동시에, 세상을 함께 완성해 나가는 코-크리에이터(Co-creator), 즉 공동 창조주입니다. 따라서 유대교의 신은 인간이 고통받을 때 하늘 위에서 냉정하게 내려다보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고통에 함께 눈물 흘리며, 인간이 지상에서 정의를 실천할 때 비로소 당신의 영광이 이 땅에 드러나도록 스스로를 제한하시는 분입니다.

 

블레크 랍비는 말합니다. 유대교의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내가 이 거대한 우주적 프로젝트의 중요한 책임자로 부름받았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토라(Torah) — 신성한 텍스트이자 삶의 청사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우주적 프로젝트의 가이드북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토라(Torah)'입니다. 좁게는 모쉐오경(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을 뜻하고, 넓게는 유대교의 성문·구전 율법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흔히 율법(Law)이라고 하면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고 감시하는 족쇄를 연상합니다. 그러나 유대교에서 토라는 축복이자 자유의 열쇠입니다.

 

블레크 랍비는 아주 흥미로운 비유를 듭니다. 여러분이 최고급 스마트폰이나 복잡한 자동차를 샀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을 제대로 고장 없이 쓰기 위해 가장 먼저 무엇을 읽어야 합니까? 바로 '사용 설명서(User Manual)'입니다.

 

유대교는 토라를 바로 '인간 삶의 사용 설명서'로 여깁니다. 인간이라는 정교한 존재가 어떻게 해야 영혼이 망가지지 않고, 어떻게 해야 이 땅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 창조주가 직접 작성해 준 인생의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입니다.

 

토라는 추상적인 교리나 "마음을 착하게 쓰라"는 모호한 훈계에 머물지 않습니다. 유대교에는 인간의 모든 일상을 규정하는 613가지의 계명(미쯔보트, Mitzvot)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코셔, Kosher), 비즈니스를 할 때 저울을 어떻게 속이지 말아야 하는지, 부부간의 성생활은 어떻게 존중되어야 하는지, 심지어 화장실에서 나올 때 어떤 감사의 기도를 바쳐야 하는지까지 삶의 모든 세부 사항을 다룹니다.

 

하지만 이것은 억압이 아닙니다. 유대교는 거룩함(Holiness)이란 세상을 등지고 심산유곡에 들어가 도를 닦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세속적이고 평범한 일상을 계명을 통해 신성하게 끌어올리는 데 있다”라고 믿습니다. 밥을 먹는 행위, 돈을 버는 행위, 가족과 대화하는 그 일상적인 순간들이 토라의 필터를 거칠 때 하나의 거대한 예배가 됩니다. 유대교인들에게 토라는 수천 년간의 유랑 생활 속에서도 그들의 영혼이 침몰하지 않도록 지탱해 준 '휴대용 조국'이었습니다.

 

미쯔보트(Mitzvot)와 의식 — 생각에서 실천으로

 

벤자민 블레크 랍비는 유대교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합니다. "유대교는 신조(Creed)의 종교가 아니라 행위(Deed)의 종교다."

 

타 종교들이 "무엇을 믿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올바른 믿음을 통한 구원을 강조한다면, 유대교는 "오늘 네가 어떻게 행동했느냐"를 묻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쉽게 변하지만, 실천은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이웃을 향한 사랑이 가득하다고 한들, 굶주린 이에게 빵 한 조각을 내어주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유대교의 지독할 정도의 현실주의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쩨다카(Tzedakah)'입니다. 흔히 이를 '자선(Charity)'으로 번역하지만, 블레크 랍비는 이 번역이 유대교의 본질을 완전히 왜곡한다고 경고합니다.

 

자선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 시혜적인 마음으로 베푸는 호의입니다. 그러나 쩨다카의 어원은 '쩨데크(Tzedek)', 즉 '정의(Justice)'입니다. 유대교에서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은 내가 착해서 베푸는 선행이 아니라, 세상의 재물을 공평하게 분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당연한 의무'이자 정의의 실현입니다.

 

만약 유대인이 부를 가졌으면서도 쩨다카를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인색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재물을 가로챈 '부정한 자'가 됩니다.

 

또한, 유대교는 인간의 마음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생각이 행동을 낳기도 하지만, “반복된 행동이 결국 생각을 지배한다”라는 심리학적 통찰을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매일 아침 손을 씻으며 바치는 기도, 문설주에 붙어 있는 성구 상자 '메주자(Mezuzah)'를 만지며 하나님의 현존을 기억하는 행위 등은 모두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여 영성을 깨우는 정교한 장치들입니다. 유대교의 의식들은 지루한 관습이 아니라, 매일매일 우리의 영혼을 리셋하는 영적 트레이닝입니다.

 

거룩한 시간의 디자인 — 샤밧(Shabbat)과 절기

 

블레크 랍비의 저서 《Understanding Judaism》에서 가장 아름답게 묘사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유대교의 시간 개념, 특히 '샤밧(Shabbat, 안식일)'에 대한 장입니다.

 

현대인들은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갑니다. 스마트폰의 알림, 끝없는 업무, 무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유대교는 이러한 인간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매주 금요일 해 질 녘부터 토요일 해 질 녘까지 24시간 동안 거대한 '시간의 성소'를 건축합니다.

 

안식일이 되면 유대인들은 모든 생산 활동을 멈춥니다. 전자기기를 끄고, 운전을 하지 않으며, 돈을 쓰거나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얼핏 보면 수많은 금지 조항 때문에 답답해 보이지만, 블레크 랍비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선언”이라고 말합니다.

 

일주일 중 하루 동안 인간은 세상의 물질적 성취나 소유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생산해 내지 않아도, 그저 존재 자체로 존엄하다는 사실을 온 가족이 모여 촛불을 켜고 포도주를 나누며 확인합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켜왔다."

 

20세기 위대한 랍비 아브라함 여호수아 헤셸의 이 말처럼, 안식일은 물리적 공간에 성전을 지을 수 없었던 유대인들이 '시간 속에 지은 성전'이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유대교의 절기들은 민족의 역사적 기억을 현재화하는 강력한 교육의 장입니다. 출애굽의 자유를 기념하며 딱딱한 무교병을 먹는 페사흐(Passover, 유월절), 가을의 수확을 기뻐하며 광야의 나그네 삶을 기억하기 위해 마당에 임시 초막을 짓고 생활하는 수콧(Sukkot, 초막절)등은 유대인 아이들에게 역사책의 텍스트가 아닌, 온몸으로 경험하는 살아있는 유산이 됩니다. 유대교는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는 선형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매년 영적인 마일스톤(이정표)을 지나며 영혼이 성장하는 순환적 과정으로 디자인한 것입니다.

 

역사와 정체성 — 고통을 이겨낸 생존의 비밀

 

유대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 '역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핵심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유대교의 하나님은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역사라는 실제 무대 위에서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역사는 눈물과 피로 얼룩진 역사였습니다. 바빌론 유수,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 중세의 포그롬(유대인 박해), 그리고 20세기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인 홀로코스트(Holocaust)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끊임없는 멸절의 위협 앞에 직면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벌써 지구상에서 사라졌어야 마땅한 이 작은 민족이 어떻게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중심에서 이토록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요?

 

블레크 랍비는 그 비밀이 바로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에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유대교는 시련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며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을 민족의 도덕적 양심을 일깨우는 호소로 받아들였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잿더미 속에서도 그들은 생존을 넘어 '이스라엘 국가 재건'이라는 기적을 일구어냈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인류에게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세계적 인권 의식을 깨우는 전령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정체성이란 단순히 혈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억의 연대'입니다. 수천 년 전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했던 기억을 오늘 내가 한 것처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약자와 나그네를 대접하는 책임감, 그것이 유대교가 정의하는 유대인의 정체성입니다.

 

세계를 향한 사명 — '티쿤 올람'과 메시아적 비전

 

유대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종착지는 어디 일까요? 유대교는 흔히 폐쇄적이고 자기들만 구원받는다고 믿는 선민사상의 종교로 오해받습니다. 그러나 블레크 랍비는 유대교의 '선민(Chosen People)' 개념은 특권이 아니라 '의무로의 부름'이라고 단호하게 교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먼저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들을 통해 인류 전체에게 도덕적 삶의 모델을 보여주는 '열방의 빛(Light unto the Nations)'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교는 타 종교인을 개종시키려고 열을 올리지 않습니다.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굳이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보편적 도덕률인 '노아의 7가지 계명'만 잘 지키면 그 누구든 다가올 세상(올람 하바)에서 영원한 보상을 받습니다.

 

유대교의 최종 목표는 전 세계 인류가 힘을 합쳐 이 깨어진 세상을 원래의 완전한 상태로 복구하는 '티쿤 올람(Tikkun Olam, 세상 수선하기)'에 있습니다. 이 땅에 굶주림이 사라지고, 전쟁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며, 지식이 바다를 덮음 같이 서로를 향한 자비와 사랑이 가득 차는 그 상태, 그것이 유대교가 꿈꾸는 '메시아 시대(Messianic Age)'입니다.

 

유대교인들에게 메시아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져 세상을 마술처럼 구원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세상을 한 걸음씩 도덕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때, 즉 우리가 티쿤 올람의 사명을 다할 때 비로소 맞이하게 되는 인류 역사의 아름다운 정점입니다.

 

수천 년의 지혜가 현대인에게 건네는 위로

 

벤자민 블레크 랍비의 핵심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귀결됩니다. "우리의 삶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지독하리만큼 고귀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영적으로는 극심한 빈곤을 겪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길인지 몰라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유대교의 수천 년 묵은 지혜는 나침반을 건넵니다.

 

* 가장 세속적인 일상을 계명으로 거룩하게 만드십시오.

* 마음의 위안에만 머물지 말고, 오늘 당장 이웃을 향해 공의와 쩨다카를 실천하십시오.

* 일주일에 하루는 세상의 소음을 끄고 샤밧의 평안 속에서 영혼을 돌보십시오.

* 그리고 깨어진 세상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동역자가 되십시오.

 

유대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종교의 교리를 학습하는 것을 넘어, 인류가 오랜 세월 다듬어온 도덕적 아름다움의 원형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유대교의 이해가 여러분 각자의 삶의 자리를 더욱 신성하고 가치 있게 가꾸어 나가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 유대인들의 오랜 인사말인 "샬롬(Shalom)"을 전합니다.

 

이글은 정통 랍비 벤자민 블레크(Benjamin Blech)의 《Understanding Judaism (유대교 이해하기)》를 기반으로 쓰였습니다.

 

By Torah & Judaism

 

▶글 전체 목차는 아래 배너를 클릭하시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