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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유대식 평등 사회

작성자phantom|작성시간26.06.08|조회수24 목록 댓글 0

 

#바미드바르

 

유대식 평등 사회

 

바미드바르(בְּמִדְבַּר Bamidbar)는 보통 유대교의 명절이자 '우리 토라를 받은 시간(Zman Matan Torateinu, זְמַן מַתַּן תּוֹרָתֵנוּ)'인 샤부오트(Shavuot)직전 안식일에 낭독됩니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고 믿는 현자들은 이 두 사건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 파라샤에는 토라를 받는 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 조사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배경 또한 그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도입부에서 사건의 배경은 '시나이 광야(the wilderness of Sinai)'라고 언급되는 반면, 토라의 위대한 계시를 말할 때는 '시나이 산(Mount Sinai)'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는 넓은 지역이고, 다른 하나는 그 지역 안의 특정한 산입니다. 게다가 이 단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나이산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시나이에서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여정의 두 번째 단계를 막 시작하려는 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자들은 연결고리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나이 광야에서 모쉐에게 말씀하셨다"(민수기 1:1).

 

왜 하필 시나이 광야인가? 여기서 현자들은 토라가 “불, 물, 그리고 광야”라는 세 가지를 통해 주어졌다고 가르쳤습니다. 불을 통해 주어졌음을 어떻게 아는가? 출애굽기 19:18에서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에 그곳에 강림하심으로 시나이산에 연기가 자욱했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물을 통해 주어졌음을 어떻게 아는가? 사사기 5:4에서 "(시나이에서) 하늘이 물을 흘렸고 구름도 물을 내렸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통해 주어졌음을 어떻게 아는가? [위의 구절처럼] "하나님께서 시나이 광야에서 모쉐에게 말씀하셨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토라는 이 세 가지를 통해 주어졌는가? [불, 물, 광야]가 세상의 모든 거주민에게 거저 주어진(free)것과 마찬가지로, 토라의 말씀 또한 그들에게 거저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5장 1절에서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미드라쉬는 시나이와 관련된 세 단어—계시 직전 산 위에서 타올랐던 불, 드보라의 노래에 근거한 물, 그리고 바미드바르(민수기)와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광야—를 가져와, 이들이 "세상의 모든 거주민에게 거저 주어진 것"이라는 점으로 연결합니다.

 

이는 우리 대부분이 쉽게 떠올릴 법한 연상이 아닙니다. 보통 불은 열기, 온기, 에너지를 연상시킵니다. 물은 갈증 해소와 성장을 연상시킵니다. 광야는 출발지도 목적지도 아닌 '그 사이의 공간'으로, 이정표와 방향 감각이 절실한 곳입니다.

 

이 세 가지 모두 토라를 설명하기에 훌륭한 은유가 될 수 있습니다. 토라는 따뜻하게 해줍니다. 에너지를 줍니다. 영적인 갈증을 채워줍니다.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하지만 현자들이 취한 접근 방식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이 세 가지가 모두 '무료'라는 점이었습니다.

 

토라와 광야의 비교를 잠시 더 살펴보면, 분명 다른 의미 있는 비유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침묵의 장소입니다. 광야는 마을과 도시, 들판과 농장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현존에 집중할 수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자신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깨닫는 곳이며, 목자가 필요한 양처럼 느껴지는 곳입니다. 광야는 길을 잃기 쉬운 곳이기에 '영혼의 구글 맵' 같은 것이 필요한 장소입니다. 광야는 고립을 느끼며 자신 너머의 힘에 손을 뻗게 되는 곳입니다. 심지어 광야를 뜻하는 히브리어 미드바르(מִדְבָּר, midbar)는 '말(word)'을 뜻하는 다바르(דָּבָר, davar), '말하다'를 뜻하는 어근 d-b-r(ד-ב-ר)과 같습니다.

 

그런데 왜 미드라시의 현자들은 이런 연결고리들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현자들은 왜 토라의 '기능'(에너지, 방향 제시 등)보다 '접근성'(누구에게나 무료임)을 더 강조했을까요? 이는 토라가 특정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원한다면 광야의 공기처럼, 흐르는 물처럼 소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선물임을 선언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현자들은 시나이 산에서 심오한 무언가가 탄생했음을 깨달았으며, 이는 그 이후로 유대인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식의 민주화였습니다. 문해력과 율법에 대한 지식은 더 이상 제사장 엘리트층에게만 국한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사람이 지식과 교육, 문해력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쉐가 우리에게 준 율법은 야아콥의 회중의 소유이니라”(신명기 33:4) – 회중 전체의 소유이지, 그 안의 특권층만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시나이 산에서의 계시였습니다. 이는 역사상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한 예언자에게만 아니라 온 백성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사건이었으며, 백성들은 계명과 언약에 대해 세 번에 걸쳐 동의의 뜻을 표했습니다. 모쉐가 백성에게 준 두 번째 마지막 계명인 ‘하켈(’הַקְהֵ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지시했습니다.

 

“7년이 끝나는 해, 곧 안식년에, 초막절 때, 온 이스라엘이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택하실 곳으로 와서 그분 앞에 나타날 때, 너희는 이 율법을 그들 앞에서 낭독하여 그들이 듣게 할지니라. 남녀와 어린아이, 그리고 너희 성읍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을 모두 모아 그들이 듣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삼가 지키도록 하라. 이 율법을 알지 못하는 너희 자녀들도, 너희가 요단을 건너 차지할 땅에서 사는 동안 이 말을 듣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도록 배워야 한다.” (신명기 31:10-13)

 

이사야서 54장 13절의 유명한 구절,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를 배우며 네 자녀의 평안은 크리라”에도 이와 같은 메아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민족으로서 유대인의 서면 헌법인 토라의 독특한 특징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은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헌법학자들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발전의 역사에는 두 가지 중요한 순간이 더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바빌론 유배 이후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에 예루살렘의 물문(the Water Gate)으로 백성을 모아 토라를 낭독하고, 군중 곳곳에 레위인들을 배치하여 낭독된 내용과 그 의미를 설명하게 한 때였습니다. 이는 전투의 형태가 아닌 대규모 성인 교육 프로그램의 형태를 띤 유대 역사상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느헤미야 8장).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유대인의 미래를 보장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싸움은 군사적 싸움이 아니라 문화적 싸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통찰 중 하나였습니다.

 

두 번째는 1세기에 세계 최초의 보편적 의무 교육 제도가 놀랍게도 창설된 사건입니다. 탈무드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며, 제 2성전 시대 말기의 대제사장 요수아 벤 감라(Joshua ben Gamla)의 업적으로 그 정점을 이뤘습니다:

 

“진실로 그 사람, 곧 여호수아 벤 감라의 이름은 축복받아야 마땅하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토라는 이스라엘에서 잊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있으면 아버지가 가르쳤고, 아버지가 없으면 아예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각 관할 구역에 교사를 임명하고, 소년들이 열여섯이나 열일곱 살이 되면 학교에 입학하도록 규정했다. [그렇게 했으나] 선생님이 아이들을 벌하면 아이들은 반항하며 학교를 그만두곤 했다. 결국 요슈아 벤 감라가 와서 각 지역과 마을마다 어린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을 임명하고, 아이들이 6세나 7세가 되면 학교에 입학하도록 규정했다.” (Baba Batra, 21a).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는 1870년이 되어서야 보편적 의무 교육이 도입되었으니, 무려 18세기의 차이가 난 셈입니다. 요슈아 벤 감라와 거의 같은 시기인 서기 1세경,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우리 민족 중 누구라도 우리 율법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자신의 이름처럼 쉽게 그것을 읊을 것이다. 지성이 싹트기 시작하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법에 대해 철저히 교육받은 결과, 그 법들은 마치 우리 영혼에 새겨진 것과 같다.” (Contra Apionem, ii, 177-78)

 

이제 우리는 현자들이 광야와 토라 수여 사이에 맺은 연관성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고, 무료였습니다. 학문이 최고의 성취로 여겨지던 그 공동체에서, 돈의 부족이나 귀족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토라를 배우고 명예를 얻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세 개의 면류관을 썼으니, 곧 토라의 면류관, 제사장직의 면류관, 왕권의 면류관입니다. 제사장직의 면류관은 아하론에게 수여되었고… 왕권의 면류관은 다윗에게 수여되었으며… 그러나 토라의 면류관은 온 이스라엘을 위한 것입니다… “이를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와서 가져가라.” (Maimonides, Hilkhot Talmud Torah, 3:1)

 

저는 이것이 유대교의 가장 심오한 사상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세상에 무엇을 이루고자 하든, 교육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정의롭고 자비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교육에서 시작하십시오. 모두가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교육이 모든 사람에게 무료이고 평등하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선지자들이 바미드바르(בְּמִדְבַּר: 민수기)를 샤부오트전에 읽는 사실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샤부오트는 하나님께서 유대 조상들에게 토라를 주셨을 때, 그 모든 이에게 동등하게 주셨음을 상기시키는 축제입니다.

 

By Rabbi Lord Jonathan Sa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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