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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신뢰(Confidence)

작성자phantom|작성시간26.06.11|조회수13 목록 댓글 0

#쉘라흐

신뢰(Confidence)

 

이는 아마도 토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집단적 지도력 실패였을 것입니다. 모쉐가 그 땅을 정탐하러 보낸 정탐꾼 열 명이 돌아와 백성의 사기를 꺾으려는 의도로 보고를 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보내신 그 땅에 갔습니다.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이것이 그곳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 땅에 사는 백성은 강하고, 성읍들은 요새화되어 있으며 매우 큽니다… “우리는 그 백성을 치러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탐하러 다녀온 그 땅은 그 주민들을 삼키는 땅이며, 우리가 그곳에서 본 모든 백성은 키가 큽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메뚜기처럼 여겼고, 그들에게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민수기 13:27-33)

 

이것은 터무니없는 말이었으며, 그들은 그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고대 세계 최대의 제국이었던 이집트를, 그 위대한 나라를 무릎 꿇게 한 일련의 재앙들 끝에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뚫을 수 없을 것 같던 홍해의 장벽을 건넜습니다. 그들은 사나운 전사 민족인 아말렉 사람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동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바다에서 다음과 같은 가사가 담긴 노래를 불렀습니다.

 

“백성들이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들에게 고통이 닥쳤도다. 이제 에돔의 지도자들은 당황하였고, 모압의 통치자들은 떨림에 사로잡혔으며, 가나안의 모든 주민은 녹아내렸다.” (출 15:14-15)

 

그들은 그 땅의 백성들이 자신들을 두려워해야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40년 후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들에게 라합이 말한 대로 실제로 그랬습니다:

 

“주님께서 그 땅을 여러분에게 주셨다는 것과, 여러분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임했다는 것과,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여러분 앞에서 녹아내린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우리가 여러분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주님께서 여러분 앞에서 홍해의 물을 말리신 것과, 요단 강 건너편에 있던 아모리 족속의 두 왕, 곧 시혼과 옥을 여러분이 멸망시키신 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녹아내렸고, 당신들 때문에 누구에게도 용기가 남아 있지 않았으니, 이는 당신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늘 위와 땅 아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2:9-11)

 

열두 명 중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므로 그 땅을 정복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백성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두 지도자는 그 대가를 받았습니다. 그들 세대에서 오직 그들만이 살아남아 그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당당한 믿음의 고백과 두려움을 떨쳐낸 용기는 33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믿음의 영웅들입니다.

 

대통령에서 부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도자의 근본적인 임무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그리고 사명 자체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을 믿어야 하며, 그들에게도 그러한 믿음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로자베스 모스 칸터(Rosabeth Moss Kanter)가 저서 『Confidence』에서 언급했듯이, “리더십은 리더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가 다른 모든 사람의 자신감을 어떻게 키워내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참고로, ‘Confidence’는 라틴어로 “함께 믿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인간 사회에서는 ‘자기 충족적 예언’의 법칙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진실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옳을 수도 있고,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감이 부족하면 패배하게 됩니다. 만약 준비와 과거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확고하고 타당한 자신감이 있다면 틀림없이 승리할 것입니다. 베샬라흐(Beshallach) 파라샤 연구에서 언급했듯이, 이것이 바로 아말렉족과의 전투 중 모쉐의 손에 관한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개를 들면 승리하고, 고개를 숙이면 패배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현대에 지배적이었던 유대인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인 정의(유대인은 미움받는 민족이고, 이스라엘은 고립된 국가라는 것)은 그토록 잘못된 것이며, 이러한 교리로 자라난 유대인 중 절반이 비유대인과 결혼하여 유대인의 여정을 중단하기로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경제사학자 데이비드 랜디스는 그의 저서 『국가의 부와 빈곤』에서 왜 어떤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는지에 대한 질문을 탐구합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면밀한 분석 끝에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이 세상에서 낙관주의자들이 앞서가는 이유는 그들이 항상 옳기 때문이 아니라, 긍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틀렸을 때조차 그들은 긍정적이며, 그것이야말로 성취와 수정, 발전, 그리고 성공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분별력 있고 현실을 직시하는 낙관주의는 결실을 맺지만, 비관주의는 단지 자신이 옳다는 공허한 위안만을 줄 뿐입니다.

 

저는 “낙관주의”보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합니다. 낙관주의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고, 희망은 우리가 함께 힘을 합치면 상황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유대인의 역사를 아는 유대인이라면 누구도 낙관주의자가 될 수 없지만, 그 이름에 걸맞은 유대인이라면 누구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모스부터 예레미야에 이르기까지 가장 비관적이었던 예언자들조차 여전히 희망의 목소리였습니다. 정탐꾼들은 패배주의로 인해 지도자로서도, 유대인으로서도 실패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것은 희망의 사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탐꾼 사건에 대해 논평한 모든 주석가들 중에서 단연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루바비치 레베, 메나헴 멘델 슈네르슨 랍비였습니다. 그는 명백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토라는 정탐꾼들이 모두 지도자, 방백, 지파의 우두머리들이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분의 도움만 있다면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복할 수 없는 땅을 약속하지 않으셨을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가지고 돌아왔을까요?

 

그의 대답은 정탐꾼들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그는 그들이 패배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승리를 두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백성들에게 한 말은 한 가지였지만, 그들이 그렇게 말하게 된 이유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의 상황은 어땠는가? 그들은 하나님과 가깝고 끊임없이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바위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들은 영광의 구름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기적들이 그들의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그들의 상황은 어떨 것일까요? 그들은 전쟁을 치러야 하고,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며, 군대와 경제, 복지 체계를 만들고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모든 나라가 하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즉, 경험적 공간이라는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작물을 자라게 하는 비 속에, 들판과 마을의 축복 속에, 그리고 일 년에 세 번 방문하게 될 예루살렘 성전 속에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눈에 띄게, 친밀하게, 기적적으로 계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정탐꾼들이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레베는 이것이 고귀한 죄이긴 하지만 여전히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국가와 경제, 군대가 존재하는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세속 세계에 거처를 마련”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신의 임재인 ‘쉐키나’를 일상생활 속으로 이끌어 오기를 원하십니다.

 

완전히 은둔한 상태에서 책임을 회피하며 하나님을 찾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사무실이나 사업 현장, 농장이나 들판, 공장이나 금융계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운 도전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일곱 번이나 ‘좋다’고 선언하신 이 물질적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정탐꾼 열 명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으며, 그 영적 실패로 인해 온 세대가 40년 동안 헛된 방황을 하게 되었습니다.

 

레베의 말씀은 그가 처음 말했을 때보다 오늘날 더욱 강렬하게 울려 퍼집니다. 이는 유대인의 사명에 대한 심오한 선언입니다. 또한 비교적 최근에야 심리학에 등장한 개념인 ‘성공에 대한 두려움’을 훌륭하게 설명해 줍니다. 우리 모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개념에 익숙합니다. 이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게 하고, 대신 안락한 영역에 머무르기를 선호하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두려움 또한 결코 적지 않은 현실입니다. 우리는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종종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성공이 가져올 수 있는 것들—새로운 책임,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타인의 기대 등—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다면 우리가 될 수 있었을 그 모습이 되지 못하고 맙니다.

 

실패와 성공에 대한 두려움 모두에 대한 해독제는 파라샤가 끝나는 구절, 즉 찌찌트(술 15:38-41)에 대한 명령에 있습니다. 우리는 옷자락 끝에 술(찌찌트)을 달아야 하며, 그중에는 파란색 실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명령받았습니다. 파란색은 하늘과 천국의 색입니다. 파란색은 우리가 고개를 들었을 때 보는 색입니다.(적어도 이스라엘에서는 그렇습니다)

 

고개를 들 줄 알게 될 때,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들도록 가르침으로써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메뚜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메뚜기가 아닙니다.

 

<참고>

Rosabeth Moss Kanter, Confidence, Random House, 2005, 325.

National Jewish Population Survey 1990: A Portrait of Jewish Americans, Pew Research Center, October 1, 2013.

David Landes, The Wealth and Poverty of Nations, London, Little, Brown, 1998, 524.

Abraham Maslow, The Farther Reaches of Human Nature, Harmondsworth, Penguin Books, 1977, 35-40.

 

By Rabbi Lord Jonathan Sa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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