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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유다이즘과 기적

작성자phantom|작성시간26.06.15|조회수29 목록 댓글 0

 

#유다이즘

 

유다이즘과 기적

 

유대교의 경전과 전설은 기적과 신비로운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린 쇼파르의 울림(여호수아 6:20)부터 불에 타면서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출애굽기 3:14), 그리고 아마도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기적인 홍해의 갈라짐(출애굽기 14:21)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로, 많은 유대교 절기는 온 민족을 위해 행해진 기적들을 기념합니다. 유월절은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유대인들이 기적적으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합니다. 하누카는 예루살렘 성전의 재봉헌과 8일 동안 계속 타오른 작은 기름 한 병을 기념합니다. 푸림은 유대인들이 대량 학살에서 기적적으로 벗어난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후자의 두 명절에는 ‘알 하니심(Al Hanisim, עַל הַנִּסִּים)’—“기적들을 위하여(For the Miracles)”라는 대표 기도문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영어 용어와 직관적으로 볼 때, 우리는 기적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자연 밖에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았던 고대 유대인들에게 이 개념은 타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적을 뜻하는 단어 ‘네스(נֵס, nes)’는 ‘깃발’이나 ‘표징’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즉 기적이란 하나님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거나 인간사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히브리 성경: 세상 속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

 

히브리 성경에서 하나님은 세상과 거리를 둔 창조주가 아니라, 대대로 그 존재가 느껴지는 강력한 힘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일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며, 때로는 극적인 방식으로 개입하십니다. 발람의 나귀가 입을 열어 말하는 일(민수기 22:28), 아하론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일(출애굽기 7:8)이나, 광야를 가로지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불기둥(출애굽기 13:21)과 같은 이 놀라운 현상들은 모두 인간의 이해와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때로는 기적이 생명을 지탱해 주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출애굽기 16:13)나 바위에서 솟아난 물(민수기 20:8), 또는 원래 용량의 몇 배나 되는 기름이 담긴 항아리(열왕기하 4:4

)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기적이 무서운 형벌이 되기도 합니다. 악한 세대를 멸망시킨 대홍수(창세기 7:17)나, 이집트의 장자들을 죽인 재앙(출애굽기 12:29), 아하론의 아들들을 삼켜 버린 불(레위기 9:24), 혹은 반역자 고라와 그의 추종자들을 삼키기 위해 열린 구덩이(민수기 16:31) 처럼 끔찍한 형벌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구해내신 것(다니엘 6:16)이나, 요나를 삼켰다가 다시 뱉어내게 한 물고기를 보내신 것(요나 2:1)처럼 직접 기적을 행하시기도 하지만, 종종 인간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기적을 행하기도 합니다: 모쉐가 홍해를 가르는 것(출애굽기 14:21), 여호수아가 하늘에서 해와 달을 멈추게 하는 것(여호수아 10:12),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비를 내리게 하는 것(열왕기상 18:30) 그리고 죽은 아이를 다시 살려내기도 하셨습니다(열왕기상 17:22) — 그의 제자 엘리사도 마찬가지였다(열왕기하 4:32).

 

성경에서 기적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일하시는 중요한 방식이며, 인류를 인도하고 하나님의 끊임없는 능력과 돌보심을 증명해 주는 수단입니다.

 

탈무드: 하나님을 부르는 랍비들

 

탈무드 역시 기적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에서는 종종 예언자들이 신의 힘을 빌려 기적을 행한다. 랍비들은 예언의 시대가 끝났다고 믿었지만, 많은 랍비 현자들은 여전히 이러한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그들의 학식과 경건함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공덕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호니는 원을 그리며 서서 가뭄을 끝내기 위해 하나님께 비를 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타아닛 23a), 랍비 메이어(‘기적의 대가’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진)는 한 남자에게 하나님을 올바르게 부르는 법을 가르쳐 거의 확실시되던 처형에서 그를 구해내기도 했다(아보다 자라 18a).

 

랍비들은 또한 가장 의로운 사람에게조차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슈나 베라코트 9:3에서는 “헛된 기도”란 이미 이루어진 일을 되돌려 달라고 하나님께 청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여성이 임신 중일 때, 아이의 성별은 이미 정해졌으므로 아이가 남자아이가 되기를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멀리서 불타는 집을 보았을 때도 같은 이유로 그것이 남의 집이기를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샤밧 53b에는 아기를 낳은 후 아내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울부짖고 배고픈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유모를 고용할 형편이 되지 않던 그 남자는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젖이 가득 찬 가슴을 주셨습니다. 한 랍비는 그 남자가 그런 기적을 받을 만큼 특히 가치 있는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고 논평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랍비는 이의를 제기합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창조의 질서가 그를 위해 바뀌었다니, 이 남자는 얼마나 자격이 없는 자였겠는가.” 이는 개인적인 기적을 구한 남자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되어 왔는데, 기적은 공동체의 문제를 위해 남겨져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수유의 고단함과 예기치 않게 가슴을 지게 된 남자가 느낄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고전 랍비 시대에는 유대 민속의 중요한 주춧돌이 되는 이야기, 즉 예언자 엘리야의 기적적인 행적에 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엘리야가 결코 죽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상에서의 시간이 끝나자 불타는 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다고 암시합니다(열왕기하 2:11). 그곳에서 그는 메시아의 임박한 도래를 알리기 위해 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유대 전설에는 엘리야에 관한 많은 전승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그가 변장한 채 지상을 배회하며 기적적인 수단을 통해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 더욱 이성적인 도전들

 

중세 시대에 이르러 유대교는 철학과 기독교 양측으로부터 점점 더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으며, 성경과 탈무드에 묘사된 기적들을 타당한 자연 현상—혹은 적어도 초자연적인 것이 아닌—으로 설명하려는 랍비들의 시도가 더욱 늘어났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 깊이 정통했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대 사상가 중 한 명인 마이모니데스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펼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창조 당시 모든 것을 정하셨으며, 모든 사물이 언제나 자연의 법칙에 의해 규율되고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는다고 믿는다. 이는 솔로몬이 말한 바와 같다. ‘과거에 그러했으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며, 지어진 대로 계속될 것이니,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전도서 1:9)

 

이로 인해 현인들은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난 모든 기적, 즉 이미 일어난 것이든 약속에 따라 미래에 일어날 것이든, 창조의 6일 동안 하나님의 뜻에 의해 미리 정해졌다고 말하게 되었으며, 당시 자연은 그렇게 구성되었기에 나중에 실제로 일어날 기적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건이 정해진 때에 일어날 때,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서 8:9–10)

 

이 문단은 의도적으로 읽기 어렵게 작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마이모니데스는 항상 자신의 가장 위험하고 도발적인 사상들을 가장 학식 있는 자들만이 해독할 수 있도록 위장하곤 했습니다. 여기서 마이모니데스는 기적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실제로는 우주의 계획된 자연 질서의 일부라고 주장합니다. 즉, 자연 법칙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것들입니다. 그가 이를 입증하는 근거는, 피르케 아보트 5장 6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특정 기적적인 것들이 창조의 여섯째 날 해질녘, 마치 하나님이 세상을 완성하시려는 바로 그 순간에, 속담에 나오는 ‘마지막 순간’에 끼워 넣어 창조되었다는 랍비적 관념입니다.

 

“안식일 전날 해질 무렵에 열 가지가 창조되었으니,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땅의 입, [2] 우물의 입, [3] 나귀의 입, [4] 무지개, [5] 만나, [6] [모쉐의] 지팡이, [7] 샤미르, [8] 글자, [9] 쓰기, [10] 그리고 돌판. 또한 어떤 이들은 또 악마들, 모쉐의 무덤, 그리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숫양을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집게로 만든 집게(미쉬나)도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이 중 대부분은 성경에 등장하는 기적적인 사건이나 사물들을 언급한 것입니다. 입을 열어 발람을 꾸짖은 나귀, 다시는 홍수로 온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표징이었던 무지개(기적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표징’을 의미한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솔로몬이 전쟁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제 1성전을 건축할 수 있게 해준 돌을 갉아먹은 벌레 등이 그 예입니다. 마이모니데스는 이 본문을 통해 기적은 무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제한된 수의 기적을 계획하셨으며, 창조의 여섯째 날 해질 무렵에 그 기적들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창조하셨다고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근대 초기: 기적을 행하는 개인들과 하시두트(חֲסִידוּת의 부상

 

성경의 예언자들은 신의 부름에 따라 기적을 행했고, 역사상 뛰어난 랍비들도 때때로 기적을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근대 초기에는 기적을 행하는 일이 본격적인 직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럽에서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질병 치료, 사업 위기 해결, 적합한 결혼 상대 찾기, 불임 치료 등 기적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랍비들(그리고 안수를 받지 않은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기적을 행하는자를 중심에 둔 하시두트에서 그 어느 곳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이 18세기 영적 부흥 운동은 바알 쉠 토브(Baal Shem Tov)라 불리는 한 남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알 쉠(baal shem)’은 “이름의 주인”을 뜻하며, 즉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지만, 바알 쉠 토브는 그의 칭호가 암시하듯 특히 뛰어난 이(‘토브’는 ‘좋은’을 뜻함)였습니다. 바알 쉠 토브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개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위해 기적을 행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다른 바알 쉠들과 달랐습니다. 그의 소문난 능력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부터 자신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 물 위를 걷는 것에 이르기까지 비범했습니다. 그는 유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 중 하나를 일으켰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친 하시드파의 레베들은 기적적인 업적을 행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인 브레슬로프의 나흐만 레베는 기적이 하시드 세계관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했습니다:

 

“모든 기적을 자연의 법칙으로 설명함으로써 그 의미를 흐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적을 믿지 않는 이러한 이단자들이 사라지고 세상에 믿음이 커질 때, 비로소 메시아가 오실 것이다. 구원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바로 이것, 즉 믿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리쿠테이 모하란)

 

그러나 또 다른 하시디즘 격언에 따르면, 듣는 기적 이야기를 모두 믿는 하시드는 어리석은 자이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믿는 자는 불신자라고 합니다.

 

근대 시기: 정답은 없다

 

여기서 제시된 내용은 결코 포괄적이지 않습니다. 유대 역사상의 모든 시대에는 기적에 관한 수많은 믿음이 존재해 왔으며, 이러한 복잡성과 다층성은 본문과 같은 짧은 요약 기사에서는 생략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성경 저자가 기적을 묘사한 것은 아니며, 예를 들어, 푸림은 대량 학살에서 기적적으로 구출된 사건을 기념하지만,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도움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후대의 모든 합리주의 사상가들이 기적을 거부한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이 기적에 대해 반드시 따라야 할 단 하나의 사고방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성경에 묘사된 그대로 이러한 기적들을 행하셨으며, 더 많은 기적도 가능하다는 확고한 믿음 위에 신앙을 세웁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이른바 신적 섭리(השגחה פרטית: 하슈가하 프라티트)를 통해 세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계시다고 믿으며, 하늘의 도움(siyata dishmaya - 시야타 디쉬마야: 아람어), 히브리어-בעזרת השם)을 구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기적 이야기를 영성을 다른 방식으로 고양시켜 주는 환상적인 이야기나 우화로 이해합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에 대해 이성적인 설명을 찾으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접근 방식의 공존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유대교의 다른 많은 측면과 마찬가지로, 이 전통은 하나의 견해 이상을 수용할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By My Jewish Lea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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