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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최초의 포퓰리스트(The First Populist)

작성자phantom|작성시간26.06.18|조회수24 목록 댓글 0

 

#코라흐

 

최초의 포퓰리스트(The First Populist)

 

코라흐(קרח)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가장 우려스러운 현상 중 하나인 현대 정치에서의 포퓰리즘 부상에 대해 많은 교훈을 준다. 코라흐는 기록된 역사상 최초의 포퓰리스트 중 한 명이었으며, 포퓰리즘은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서구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 자유의 미래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포퓰리즘은 분노의 정치다. 이는 정치 지도자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이 존재할 때, 사람들이 기관의 수장들이 대중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리고 신뢰가 광범위하게 상실되고 공익에 대한 감각이 무너졌을 때 나타난다.

 

사람들은 보상의 분배가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된다. 소수는 불균형적으로 이익을 얻는 반면, 대다수는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손해를 본다. 또한 전통적 가치의 훼손이든 대규모 이민이든 간에, 예전에 알던 나라가 자신들에게서 빼앗겨 버렸다는 느낌도 든다.

 

불만은 현 정치·문화 엘리트에 대한 거부감으로 표출된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국민의 진정한 목소리라고 주장한다. 기존의 지도자들은 대중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채, 보상만을 서로 나누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포퓰리스트들은 기성 체제에 대한 원한을 부추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분열을 조장하고 대립을 유발한다. 그들은 국민에게서 빼앗긴 것을 되찾아 줄 강력한 리더십을 약속한다.

 

2017년, 유럽 전역에서 포퓰리스트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약 35%를 기록했는데, 이는 1930년대 후반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극우 정당들은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권력을 잡았으며, 오스트리아, 프랑스, 네덜란드에서도 강력한 선전을 펼쳤다. 스페인이나 그리스 같은 남유럽 국가들에서는 포퓰리즘이 좌파 성향을 띠는 경향이 있다.

 

어떤 형태를 띠든, 포퓰리즘이 부상할 때면 폭정은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인권은 무시된다. 대중은 강력한 지도자에게 예외적인 권한을 부여한다. 1930년대 프랑코, 히틀러, 무솔리니의 경우도 그랬다. 사람들은 약속된 유토피아를 위해 자유를 기꺼이 희생하고, 지도자가 국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 희생양에 대한 끔찍한 악행도 용인한다.

 

코라흐의 반란은 포퓰리즘 운동이었으며, 코라흐 자신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지도자였다. 그가 모쉐와 아하론에 대해 한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라. “너희는 너무 지나쳤다! 온 회중, 곧 그들 모두가 거룩하며,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신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주님의 회중보다 스스로를 높여 세우느냐?”(민수기 16:3).

 

이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스트적 주장이다.

첫째, 코라흐는 기성 체제(모쉐와 아하론)가 부패했다고 암시한다. 모쉐는 자신의 형제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함으로써 친족 우대(nepotism:네포티즘)의 죄를 저질렀다. 그는 지도자 역할을 더 널리 분배하지 않고 자신의 직계 가족 내에서만 유지해 왔다.

둘째, 코라흐는 자신을 백성의 옹호자로 내세운다. 그는 온 회중이 거룩하다고 말한다. 모쉐와 아하론, 너희에게 특별한 점은 없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성소를 짓는 데 힘을 보탰다. 코라흐는 독재자가 되기 위해 민주주의자인 척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와 그의 반역 동료들은 우리 시대의 사건들을 예견이라도 하듯, 인상적인 가짜 뉴스 캠페인을 펼찬다. 우리는 이를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모쉐가 하나님께 “나는 그들로부터 나귀 한 마리조차 가져가지 않았고, 그들 중 누구에게도 불의를 행한 적이 없습니다”(민수기 16:15)라고 말할 때, 그가 바로 그 혐의, 즉 직권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웠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주님께서 이 모든 일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요, 내 생각대로 한 것이 아님을 여러분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민수기 16:28)라고 말할 때, 그가 자신의 결정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인 양 포장했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가장 노골적인 것은 다담과 아비람의 ‘포스트트루스(post-truth)’적 주장이다. “우유가 흐르고 꿀이 흐르는 땅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를 지배하려 드는가!" (민수기 16:13).

 

이것은 토라에서 가장 무자비한 발언이다. 이 말은 이집트에 대한 허황된 향수("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니!), 정탐꾼들의 보고에 대한 모쉐의 책임 전가, 그리고 자신의 명성을 위해 지도자 자리를 놓지 않으려 한다는 비난을 결합하고 있는데, 이 세 가지 모두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람반이 “모쉐의 지도력에 대한 이러한 도전은 그 이전에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틀림없이 옳았다. 정탐꾼 사건의 여파로, 백성들이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코라흐와 그의 동조자들이 불만을 선동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잃을 것이 없다고 느꼈다. 포퓰리즘은 실망과 원한, 두려움의 정치이다.

 

모쉐는 생애 단 한 번, 독재자처럼 행동하며 마치 하나님을 시험하듯 말했다:

"주님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도록 나를 보내신 것임을 너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이러하니, 이는 내 뜻대로 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이 사람들이 자연사하거나 자연스러운 재앙이 그들에게 닥친다면,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여호와께서 새로운 일을 행하사 땅이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를 삼키고 그들이 산 채로 음부로 내려가면, 너희는 이 사람들이 여호와를 멸시하였음을 알리라.” (민수기 16:28-30).

 

무력(이 경우 기적)을 동원한 이 극적인 갈등 해결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 땅이 실제로 갈라져 고라와 그의 반역자들을 삼켜 버렸지만, 백성들은 공포에 질렸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튿날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쉐와 아하론을 거역하여 말하기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고 하였다.” (민수기 17:6). 유대인들은 언제나 독재적인 지도자들에게 저항해 왔다.

 

더욱 놀라운 점은 현인들이 이 갈등을 어떻게 규정했는지이다. 그들은 이를 반역과 순종의 흑백 대립으로 보지 않고, 공론장에서의 논쟁이 가질 수 있는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코라흐와 그의 추종자들의 잘못이 모쉐와 아하론과 논쟁을 벌인 것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하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했다는 점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힐렐과 샴마이 학파는 하늘을 위해 논쟁했기에, 그들의 논쟁은 영원한 가치를 지녔다고말한다. 유대교는 정경에 수록된 거의 모든 텍스트가 논쟁의 모음집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유대교에서 중요한 것은 논쟁이 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이다. 하늘을 위한 것이 아닌 논쟁은 승리를 위해 벌이는 것이다. 하늘을 위한 논쟁은 진리를 위해 벌이는 것이다.

 

코라흐의 경우처럼 승리가 목표일 때, 양측 모두 손해를 본다. 코라흐는 죽었고, 모쉐의 권위는 훼손되었다. 그러나 진리가 목표일 때, 양측 모두 이득을 본다. 진실에 의해 패배하는 것만이 패배이자 동시에 승리인 유일한 경우다. 랍비 시몬 하암소니가 말했듯이: "내가 주장을 펼친 것에 대해 상을 받았듯이, 철회한 것에 대해서도 상을 받을 것이다.“

 

얀-베르너 뮐러는 그의 훌륭한 단편 저서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에서 포퓰리즘 정치의 가장 확실한 지표는 다른 목소리들을 비합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포퓰리스트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국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그들과 의견이 다른 사람은 누구든 “본질적으로 정당성이 없다.” 일단 권력을 잡으면, 그들은 반대 의견을 침묵시킨다.

 

바로 그 때문에 오늘날 대학 캠퍼스에서 “안전 공간”, “트리거 경고”, “미세 공격”이라는 형태로 불인기적인 견해를 침묵시키는 행위가 그토록 위험한 것이다. 학문의 자유가 사라지면, 다른 자유들의 죽음도 뒤따르게 된다.

 

따라서 유대교가 “하늘을 위한 논쟁”의 정당성을 고수함으로써 포퓰리즘에 맞서 강력한 방어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유대교는 반대 의견을 억누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유대교는 반대 의견에 존엄성을 부여한다.

 

이는 권력에 진실을 말했던 예언자들의 모습을 통해 성경 시대에 제도화되었다. 랍비 시대에는 미쉬나, 게마라 및 그 주석서의 모든 페이지에서 드러나는 논쟁 문화 속에 그 정신이 살아있었다.

 

따라서 삶을 변화시키는 아이디어는 이렇다. 배우고, 성장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자유를 찾고자 한다면, 논쟁을 환영하고 반대 의견을 존중하는 곳을 찾아라. 그렇지 않은 사람, 장소, 정당과는 거리를 두어라. 비록 그들이 민중의 친구라고 주장할지라도, 사실 그들은 자유의 적이다.

 

극단의 포퓰리즘의 시대에 현자가 전하는 토라의 분별력입니다.

 

참고>

얀-베르너 뮐러의 단행본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What is populism?, Penguin, 2017)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

「포퓰리즘: 현상(Populism: the phenomenon). 2017년 3월 22일에 발표 논문.

제임스 스나이더, 『폭정에 대하여: 20세기에서 얻은 20가지 교훈』,

보들리 헤드, 2017.

람반, 민수기 주석과 미슈네 아보트

 

By Rabbi Lord Jonathan Sa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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