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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6.25 특집> 1. 한국전쟁 유대인 참전용사 intro.

작성자phantom|작성시간26.06.22|조회수40 목록 댓글 0

#유대인병사 한국전 참전

6.25 한국전쟁

한국전쟁(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38선 이북을 장악하고 있던 북한군이 암호명 '폭풍 224'라는 사전 계획에 따라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대한민국을 선전포고 없이 기습 남침하여 발발한 전쟁입니다.

한국 전쟁(6.25 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단 하나의 국가를 위해 지원한 전쟁이며, 유엔이 그 한 국가를 위해 정규 군을 모아서 싸운 유일한 사례입니다.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 1개월(1129일)간 이어졌습니다. 한국전은 남,북한 간의 국지전적 성격의 내전으로 주장되기도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간의 대리전 양상을 띠기 때문에 한국전(6·25 전쟁)은 전후 냉전의 시작을 대표하는 사건들 중 하나로도 평가됩니다.

대한민국을 위한 참전국가는 총 63개 국가가 있으며, 이중 병력 지원국 16개국, 의료 지원국 6개국, 물자 지원국 39개국이 있습니다. 소련(소비에트 연방)을 중심으로 한 북한 지원국은 당시 기준 소련, 중공,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몽골, 루마니아, 불가리아 –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민주진영으로 바뀐 나라 포함) 8개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전쟁과 이스라엘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유엔의 결의에 따라 건국되었고 같은 해인 1948년 8월 15일 한반도에서는 남한이 유엔의 승인하에 합법적인 국가로 탄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건국과 동시에 이튿날 인접한 아랍 국가들의 군대가 이 지역을 침공하면서 제1차 중동 전쟁이 시작되었다. 1949년 휴전 협정으로 이스라엘은 이전 위임통치 지역의 77%를 통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했고, 당시 이스라엘 수상이었던 다비드 벤구리온은 대한민국을 돕는 유엔군에 이스라엘군을 참전시키는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책을 결정하는 크네세트(국회)의 과분수를 구성하는 좌파 및 공산주의 정당의 반대로 인해 병력 파병 계획은 무산되었고, 대신 10만 달러 상당의 물적, 의료 지원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전에 참전한 많은 유대인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미군으로 때로는 영국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하여 먼 이국의 땅과 국민을 지켜주기 위하여 목숨을 걸었습니다.

정전 후 많은 유대인 참전용사들은 본래의 고국을 찾아 이스리엘로 돌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참전하지 않았기에 그분들은 역사 속에 잊혀졌습니다.

긴 세월이 흐른 후 마영삼 전 이스라엘 대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2009년 처음으로 이스라엘 현지에서 한국전 참전용사에 대한 보은의 행사가 열렸습니다.

마침내 2025년 7월 22일 국내 최초로 6.25전쟁 참전 유대인 병사에 관한 학술 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 최초로 유대인 병사의 한국전쟁 참전에 관한 공식적인 역사 기록이 시작되었습니다.

※ <토라와 유다이즘> 블로그는 <한국전 유대인병사 참전 기념사업회>와 함께 <6.25전쟁 유대인 참전 다큐멘터리> 를 제작 중에 있습니다. 6.25를 맞이하여 다큐 일부 내용을 몇회에 나누어 공개합니다.

<다큐멘터리 6.25와 유대인 참전용사 1>

<다큐멘터리 6.25와 유대인 참전용사 2>

We are What we remember.

אנחנו מה שאנחנו זוכרים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 8월 중 <6.25 전쟁 유대인 참전용사에 대한 학술 세미나 2>가 개최됩니다. 다큐멘터리 전체 내용은 세미나 현장에서 공개 됩니다. 관련 일정은 별도 공지토록 하겠습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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