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밈 노라임#자유의지
선(Good))을 선택할 자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두 가지 정반대의 선택을 두십니다. 곧, 생명과 선, 혹은 사망과 악입니다(“ אֶת־הַחַיִּים וְאֶת־הַטּוֹב וְאֶת־הַמָּוֶת וְאֶת־הָרָע, 에트 하하임 베에트 하토브, 베에트 함라베트 베에트 하라”). (신명기 30장 15절)
마치 좋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가장 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권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생명을 택하라고 간청하십니다.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죽음, 곧 복과 저주를 네 앞에 줄 것이다.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신명기 30:19)
이 구절은 토라의 목적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우리에게 주셔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선을 받아들이고 악을 거절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자기 마음의 욕망과 현재의 문화적 세계관에 따라 살 것인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자유의지(Free will)의 개념입니다.
고대 유대인 성경 주석가 라쉬(Rashi)는 구전 율법(탈무드)에 나오는 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잉태를 맡은 천사가 하나님께, 그 아이가 장차 강하거나 약할지, 지혜롭거나 어리석을지, 부유하거나 가난할지를 물어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천사는 그 아이가 의인이 될지 악인이 될지를 묻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사람의 삶의 환경을 정하실 수는 있어도, 선한 길을 갈 것인지 악한 길을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자유의지에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생명을 선택할 자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될 때 기쁘고 친절한 마음을 갖기가 더 쉬울 수 있지만, 좋은 환경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거나 친절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고 불행과 원망 속에 빠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한 노부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아들은 아름다운 젊은 아내와 세 어린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가족은 신실한 정통파 유대인이었기에, 그들이 이런 끔찍한 비극에 어떻게 반응할지 주변 사람들은 궁금해했습니다. 그 노부인의 가까운 사람이 이렇게 전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 여인이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는데, 그녀의 말은 오직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말들뿐이었고, 자주 ‘바룩 하셈(ברוך השם,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라)’이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것은 욥이 자신의 건강과 자녀와 생계를 모두 잃은 후에도 ‘여호와께서 주셨고 여호와께서 취하셨으니, 바룩 하셈’(욥기 1:21)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저명한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나치 강제 수용소와 죽음의 수용소라는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그런 끔찍한 상황에서는 사람이 선하고 도덕적이며 인간다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프랭클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많은 영웅적인 개인들의 사례를 목격했다고 기록합니다.
프랭클은 이렇게 썼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지만 단 한 가지는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마지막 인간의 자유, 즉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 태도를 선택하고, 자기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극도의 육체적, 감정적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과 용서를 택할 것인지, 아니면 증오와 원망 속에 머무를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런 극단적인 조건을 겪지 않을 것이지만, 누구나 삶의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용기 있고 이타적이며 신실할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에 굴복하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특히 큰 역경 속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의 도덕성과 윤리는 인생의 여러 시점에서 시험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전범 재판에서 일부 나치들이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변명했던 것처럼 변명할 수 없습니다.
사실은, 언제나 우리는 토라의 가치를 따라 걷거나, 아니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을 따라 걸을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가올 경외의 날들(야밈 노라임: ימים נוראים, Days of Awe)을 맞으며, 우리는 우리의 길을 신중히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갈 자유
월요일 밤부터 시작되는 경외의 날들(야밈 노라임: ימים נוראים)은 유대력 새해(5786년)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로 시작하여 욤 키푸르(Yom Kippur))로 끝나는 열흘간의 기간입니다.
이 열흘은 엄숙한 자기 성찰의 기간으로, 우리는 이 기간 동안 자신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잘못을 행한 사람들에게도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다가오는 가을 절기에서 요구되는 회개는 각 사람을 하나님께로 되돌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슈아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가을 절기를 준비하며 요르단 강에서 요하난(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미크바(mikvah)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그들에게 반드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요하난이 자기에게 침례받으려고 나오는 군중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알려주었느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누가복음 3:7–8)
히브리어로 회개를 뜻하는 단어 ‘테슈바’(תשובה)는 ‘되돌아오다’라는 뜻의 단어 ‘슈브’(שוב)에서 나왔습니다.
즉, 죄와 악과 죽음의 길을 선택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회개할 때,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임재로 돌아갑니다.
토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하지 않은 죄로 인해 단지 개인적 분리만이 아니라, 민족적 유배(national exile)에까지 이를 것임을 배웁니다.
그러나 바룩 하셈(ברוך השם), 유배가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흩어질지라도,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약속의 땅으로 모아 주시고, 그 땅에서 그들을 축복하시고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너와 네 자녀들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순종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포로를 되돌리시며 네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그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흩으신 모든 민족에게서 다시 너를 모으실 것이다.” (신명기 30:2–3)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거나, 토라를 따르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토라에서 하나님께서는 순종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명기 30:11–14)
또한 순종에는 많은 보상이 있습니다.
그 보상은 단지 올람 하바(olam haba, 오는 세상)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주어집니다.
그것은 단지 하늘에서 받는 영적인 보상만이 아니라, 장수와 번영, 성공과 같은 육체적·물질적·감정적 보상으로도 나타납니다.
물론 이 세상은 여전히 타락했기에, 순종하는 자들조차 원수의 억압과 공격을 겪을 수 있습니다. 예슈아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은 두려움에 굴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프랭클이 고난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듯이, 성경은 우리에게 원수가 빼앗을 수 없는 많은 좋은 것들이 있음을 가르칩니다. 곧, 선을 택할 자유,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우리를 영적 속박에서 해방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메시아 예슈아에 대한 믿음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암담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이 땅 위에서 여전히 당신의 선하심과 긍휼의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다윗 왕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일 지금 사는 세상에서 여호와의 선하심 보는 것을 제가 믿지 않았다면....” (시편 27:13)
생명을 택한다는 것은 곧 마음과 뜻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루아흐 하코데쉬(רוּחַ הַקֹּדֶשׁ,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너는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소리를 듣고 그에게 붙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해야 한다. 참으로 그것이 네 생명이고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쯔학과 야아콥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그 땅에서 사는 네 날들을 길게 하는 것이다.” (신명기 30:20)
By MessianicBible.com in Nitzavim, this week's Torah por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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