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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순천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있다.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이야기

작성자아이크|작성시간26.06.07|조회수68 목록 댓글 0

순천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있다.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이야기

주먹'이라고 하면 조폭이나 단순한 싸움꾼, 깡패를 떠올리기 쉽다.

벌교의 주먹은 일제의 불의에 맞서 분노를 터트렸던 민족의 주먹’이자 정의의 주먹이었다.

머슴살이하던 ​안규홍이 벌교 소화다리 근처를 지나갈 때의 일이다.

​일본 순사가 말 위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조선 아낙네를 희롱하고 무도한 짓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 군경의 만행에 다들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있을 때, 안규홍 선생이 참지 못하고 걸어 나갔다.

​그는 단숨에 일본 순사를 말 아래로 끌어내린 뒤 강력한 주먹 한 방으로 때려눕혀 버렸다.이때 일본 순사가 다리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이때부터 일제에 기죽지 않는 벌교 사람들의 기개와 안규홍의 매운 주먹을 기리며 벌교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퍼지게 되었다.

안규홍은 머슴 출신으로서 구한말 호남 의병을 이끈 대단히 독보적이고 특이한 인물이다.

​안규홍 선생은 보성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어린 시절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였다.전라도 사투리로 머슴살이를 담살이라고 불렀다.

​그는 보성군의 부유한 선비였던 박제현의 집에서 담살이를 했다.​신분은 머슴이었지만 체격이 당당하고 힘이 장사였으며, 의리 있고 영리하여 동네 청년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당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보성에서도 의병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일제의 보복이 두려워 대장 자리를 서로 양보하며 주저하고 있었다.

​이때 머슴이었던 안규홍이 벌떡 일어났다.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양반과 상놈이 어디 있느냐! 내가 대장을 맡을 테니 나를 따르라!"

​그가 의병장을 맡겠다고 선언하자, 놀랍게도 그가 머슴살이를 하던 집의 주인인 박제현을 비롯해 지역의 양반과 유생들이 그의 아래로 들어가 부하가 되기를 자처했다.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 조선에서 머슴이 대장이 되고 양반들이 지휘를 받는 의병 부대가 탄생한 것은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안규홍 의병장은 보성을 중심으로 장흥, 강진, 순천 등 전남 일대에서 맹활약했다. 

그의 부대는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지형을 잘 알고 신출귀몰한 전술을 펼쳐 일제 군경을 공포에 떨게 했다.

자신이 머슴살이를 하던 파청 부근에서 일본군 수송대를 기습해 대승을 거두었다.

머슴 출신이었기에 민중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민가에 절대 피해를 주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군율을 세워, 백성들로부터 '우리 군대'라는 칭송을 받았다.

​일제의 악명 높은 '남한대토벌작전(1909년)'으로 호남 의병 전체가 고립되었다.안규홍 의병장은 부하들을 대피시키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결국 일제에 체포되었다. 

대구형무소로 이송된 그는 끝까지 일제의 회유를 거부하고 1911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형으로 순국하셨다.

​그의 고향인 보성에는 현재 안규홍 의병장의 기념탑과 동상이 세워져 애국심과 용기를 기리고 있다. 

https://youtu.be/KB6JTofA9co?si=Vs9HkQD8y5iLTWQT

사진은 보성군 벌교읍 선근공원에 있는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의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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