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센 산 등산을 갔다가 본 옷을 입은 지장보살과 다른 불상들
옷을 입은 지장보살상들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사찰이나 길가, 심지어 신사 입구에서 빨간색 모자, 턱받이(앞치마), 혹은 옷을 입고 있는 돌 불상들을 쉽게 볼 수 있
는데 궁금했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불상들은 대부분 불교에서 약자(弱者)와 아이들을 구원하는 '지장보살(地蔵菩薩, 일본어로 지조)'인데, 일본인들이 이 지장보살에게 옷
을 입히는 데에는 애틋한 민간신앙과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는데 그 유래는 불교의 사후세계관에 기초를 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이승에서의 인연을 정리하고 저승(명부)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첫 번째 강인 삼도천(三途川)을 건너
야 한다. 그리스 신화의 '스틱스 강'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 강을 건너는 길(도, 途)이 망자가 이승에서 지은 죄의 무게에 따라 세 가지(三)로 나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도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는
데 죄가 없고 착하게 산 사람들은 안전한 다리를 건너거나 잔잔한 여울을 배를 타고 편안하게 건넌다.
죄가 비교적 가벼운 사람들은 물 깊이가 무릎 정도 오는 얕은 곳을 걸어서 건너간다. 그러나 죄를 많이 지은 악인들은 파도가 집채만 하고 독
룡(毒龍)이 들끓는 거칠고 깊은 하류를 온몸으로 거슬러 가며 고통스럽게 건너야 한다.
그래서 삼도천이라고 한다
그런데 삼도천을 건너면 만나는 무시무시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제일 먼저 탈의파 (奪衣婆)와 현의옹 (懸衣翁)이라는 부부이다.
망자가 삼도천을 건너오면 노할머니인 탈의파(옷을 빼앗는 할머니)가 망자를 붙잡아 이승에서 입고 온 옷을 사정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강
제로 벗겨낸다.
그러면 그의 남편인 현의옹이 그 옷을 받아 강가에 있는 의령수(衣領樹)라는 나무에 걸게 되는데 망자가 이승에서 지은 죄가 무거울수록 옷
이 물을 머금은 듯 무거워져 나뭇가지가 아래로 푹 내려앉고, 착하게 살았으면 옷이 가벼워 나뭇가지가 거의 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측정된 '나뭇가지의 휘어짐 정도'가 그대로 기록되어, 망자가 저승에서 만날 첫 번째 재판관인 진광대왕(秦廣大王)에게 보고된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중간계에 있으면서 심판의 과정을 거친다고 하는 것이 불교의 죽음에 대한 세계관이다.
참고로 심판하는 저승의 대왕이 10명이 있는데 염라대왕(閻羅大王)은 다섯 번째로 35일 만에 만나게 된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입에 동전을 물리거나 수의에 돈을 넣어주는 것은 삼도천을 건너 처음 만나는 탈의파와 현의옹에게 와이로를 쓰기 위해서인
셈이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죽음은 인간의 생로병사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프고 애달픈 영역으로 이승의 부모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큰 고통이지만,
불교의 눈(세계관)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죽음과 그 영혼의 여정(旅程)은 어른들의 사후세계와는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
어린아이들은 삼도천을 건너지 못하고 삼도천 강가에 머물게 된다고 한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어린아이들만 모이는 특별한 삼도천 강가를
'사이노카와라(賽の河原)'라고 부르는데 아이들은 이승의 부모보다 먼저 죽어 불효를 저질렀다는 죄, 그리고 이승에서 선업(좋은 일)을 쌓을
시간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저승의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강가에 머물게 된다.
그래서 강가에 남겨진 아이들은 이승에 남겨진 부모의 건강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강가의 작은 자갈들을 하나하나 모아 "아버지 동생을 위
해 한 개", "어머니를 위해 한 개" 하며 눈물로 돌탑을 쌓는다. 이 탑이 완성되면 강을 건널 수 있는 공덕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탑이 거의 완성될 때쯤이면 무시무시한 저승의 귀신들이 나타나 큰 몽둥이로 아이들이 애써 쌓은 돌탑을 사정없이 무너뜨리며 심술
을 부린다. 아이들은 다시 처음부터 울면서 돌탑을 쌓아야 하는 끝없는 슬픔을 반복하게 된다.
이때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지장보살이 황금빛 지팡이를 짚고 강가로 내려온다. 지장보살은 울고 있는 아이들을
자신의 넓은 가사(승복) 자락 속에 품어 숨겨주고, 귀신들을 쫓아내며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의 아버지고 어머니이다" 라며 아이들을 안고
삼도천을 무사히 건너 극락으로 인도하게 된다.
이 일본의 전설이 사이노카와라(賽の河原)라는 전설로 부모들은 내 아이를 저승에서 잘 보살펴달라는 헌신의 의미로, 아기들이 쓰는 턱받
이나 모자를 지장보살에게 직접 만들어 입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장보살이 입은 옷은 대부분 강렬한 빨간색인데 동아시아 전통 문화권에서 붉은색은 두 가지 강한 상징성을 가진다.
벽사(辟邪)의 의미: 빨간색은 마물과 귀신, 역병(질병)을 쫓아내는 강력한 힘을 가진 색으로 여겨졌으며, 면역력이 약해 병에 걸리기 쉬운
아이들을 악귀로부터 보호하려는 주술적 의미가 크다.
생명과 태양의 상징: 빨간색은 피와 생명, 그리고 따뜻한 태양을 뜻한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에게 다시 따뜻한 생명력이 깃들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반대로 살아있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 옷을 입히기도 한다. 자녀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지장보살에게 턱받이를
선물한다.
때로는 아이가 실제로 입던 배냇저고리나 옷을 입혀두기도 하는데, "이 옷의 주인을 지장보살님께서 늘 지켜봐 달라"는 일종의 표식이다.
꼭 아이와 관련된 사연이 아니더라도, 마을 길가(地蔵堂)에 홀로 서 있는 돌부처가 안쓰러워 "겨울에 춥지 말라"는 순수한 자비심과 공경의
마음으로 동네 주민들이 직접 털모자와 옷을 짜서 입히는 풍습도 아주 흔하다. 계절이 바뀌면 주민들이 모여 옷을 새것으로 갈아입히며 마을
의 안녕을 빌기도 한다.
외지인이나 관광객 눈에는 이 빨간 모자를 쓴 불상들이 아기자기하고 귀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뼈아
픈 슬픔과 눈물의 기도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불상을 만지거나 장난스럽게 사진을 찍는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고.....
최근에 최진실의 딸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서 어린아이를 추모하는 지상보살 앞에서 웨딩사진을 찍은 것이 논란이 되어 사과를 하는 헤프닝
이 있었는데 지장보살이 옷을 입은 이유를 알았다면 그곳에서 사진을 찍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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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알아 두면 좋은 상식으로 불교와 기독교가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에 대해서 상반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불교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전생에 지은 업장(業障), 곧 죄를 속죄하여 탕감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서 끊임없이 업장을 소멸하는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 셈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 곧 윤회의 굴레에서 해방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므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불행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어린아이의 죽음은 전생의 업을 그대로 가지고 가기 때문에 또 다시 윤회를 해야 하는데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달성하
지 못했기 때문에 삼도천을 건너는데 고생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신의 축복이기 때문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다가 죽으면 가장 잘 산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어린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불교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오래 살아서 죄를 짓지 않고 죽었기 때문에 천국에 갈
것이라는 믿는 것이다.
비신앙인의 입장으로 보면 두 종교의 사후세계관 다 비합리적으로 믿을 것이 못되지만 그들의 생각을 알고 있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