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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 일주(뚜르 드 몽블랑..TMB)트레킹(17)...너무나 매력적인 마을 꾸르마에르(Courmayeur)(1)

작성자뿅망치|작성시간26.06.23|조회수27 목록 댓글 0

구름에 가려진 산이 있는 쪽이 몽블랑쪽이다.

짐을 정리하고 내려가지 전에 주변 사진을 찍는다.

호텔 창문의 베고니아 화분

 

빗속에서 2일을 고생하고 안락한 호텔과 아름다운 마을을 보니 빗속에 강행군을 하지 않고 이곳에 일찍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

이다.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도 이 호텔에 오게 되는데 아마도 날이 저물 때쯤 오게 될 것이고 따라서 도시 주변 구경은 할 시

간이 없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구태여 일주 트레킹을 고생스럽게 하면서 몽블랑 주변의 아름다운 도시들을 보지 않고 그냥 지나

치는 것은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다.

몽블랑 일주를 하는 것이 인생의 큰 이정표 중의 하나라면 모르겠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즐기는 트레킹이 옳다는 생각이다.

이런 마을에 사는 사람은 축복 받은 사람인 듯...정면의 삼층이 우리의 숙소이다.

수시로 구름이 내려왔다가 올라갔다가 한다.

식사하러 거리로 가기 위해서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검은 옷을 입은 가이드와 중학생이 벤치에 앉아서 고생담 이야기를 하는

듯...가이드는 무릎이 좋지 않고 중학생은 날벼락으로 끌려 와서 고생을 하는 중이니...

우리가 하루밤 잠을 자게 될 델 비알레 호텔..

기념품 가게와 카페 식당이 있는 거리... 비씨즌에는 한가하지만 스키 시즌에는 거리가 사람들로 넘쳐 난다고...

 

가이드와 함께 거리에 나가서 이탈리아식 점심을 먹고 거리를 돌아 보는데  샤모니 만큼은 아니지만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보이고 특히 일본사람들이 많이 많이 보인다.

차림새를 보아 그들은 산행보다는 여행을 온 사람들 같다.

몽블랑 주변의 도시들은 스키시즌이 대목인데 비시즌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도시 자체가 너무 매력적인 곳이다.

거리 모습

거리에서 보는 눈이 쌓인 산

트레킹 복을 입은 사람들도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는 일행

동네가 정말 아름다운 곳으로 주변이 눈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

동네 

이 길을 계속 가면 스위스 쪽으로 간다고...

점심을 먹고나서 시내구경을 하기보다는 산행코스에 있는 경치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케이블카를 타고 모떼 산장에서 오는

트레킹 코스를 반대로 가보자고 부자를 부추겨서 부자와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뒤를 돌아본 꾸르마에르 마을이 그림 같고 그 너머에 보이는 경치들이 그러하다.

부자는 케이블카 언저리에서 머물고 나 혼자 TMB 코스를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림같은 광경들이 펼쳐진다.

사진에서처럼 앞에 보이는 TMB 코스와  조그만 휴게소의 모습이 그렇다.

휴게소에서 콜라를 한 켄을 사서 먹으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하자 찍어 주더니 한 장 더 부

탁을 하자 거절을 한다.

꾸르마에르의 몬떼 비얀꼬 트레킹 안내도...케이블카 타는 곳에 있다.

케이블 카... 겨울에는 스키장이 개설되기 때문에 케이블카가 놓여 있다.

케이블카 내리는 곳이 TMB 코스가 연결되는 곳이다.

케이블 카 안에서 보는 꾸르마에르...몽블랑쪽이다.

몽블랑

아래 보이는 집들

케이블카를 내리고 보는 쪽은 스위스쪽이다.

케이블카 주변...

TMB 코스쪽으로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본 쿠르마에르와 케이블카 

 

꾸르마에르에 대해서 가능하면 읽어보시도록...

 

꾸르마에르(Courmayeur)는 이탈리아 북서부 아오스타 밸리(Aosta Valley) 주의 몽블랑(이탈리아명: 몬테 비앙코, Monte Bianco) 남쪽

기슭, 해발 1,224m에 위치한 세계적인 산악 휴양 도시이다. 프랑스의 샤모니(Chamonix)와 몽블랑 터널로 연결되어 있으며, ‘알프스의

진수’를 간직한 전통 깊은 마을이다.

 

로마 시대의 기원: 꾸르마에르의 역사는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 라틴어로 ‘쿠리아 마이오르(Curia Maior)’라 불렸는데,

이는 대법원이나 주요 행정 관청, 혹은 주요 거주지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알프스의 길목: 이 지역은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잇는 알프스의 험준한 고개(쁘띠 생-베르나르 고개 등)와 인접해 있어, 고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이자 무역업자, 순례자들이 오가는 주요 교역로 역할을 했었다.

사보이 왕가의 영향: 중세 이후에는 이 지역을 지배하던 사보이(Savoy) 왕가의 문화적, 건축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현재도 남아 있는

11~12세기풍의 성 판탈레온 성당 종탑 등에서 중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17~18세기 이후로 온천 휴양지로의 번영을 하였는데 몽블랑을 정복하기 이전인 17~18세기, 꾸르마에르는 ‘온천(Spa) 마을’로

먼저 명성을 얻었다.

이 지역에서 나는 미네랄이 풍부한 광천수와 정화 능력이 있는 온천수가 유럽 귀족들 사이에 건강 치료와 휴양 목적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알프스의 초기 관광 명소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알피니즘(산악 운동)의 요람’과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19세기 근대 산악 운동(Alpinism)이 탄생하면서부터이다.

몽블랑 정복의 자극: 1786년 프랑스 샤모니의 가이드들이 최초로 몽블랑(4,810m) 정상에 오른 후, 몽블랑 남쪽 사면을 품고 있는 꾸르마에

르는 이탈리아 산악 등반의 핵심 기지가 되었다.

이탈리아 최초의 산악가이드 협회 (1850년): 1850년, 꾸르마에르의 전문 등반가들이 모여 이탈리아 최초(세계에서 두 번째)의 산악가이드

협회(Società Guide Alpine di Courmayeur)를 설립했다. 에밀 레이(Emile Rey), 주세페 페티가(Giuseppe Petigax) 같은 전설적인 가이

드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어 알프스의 수많은 험봉을 초등했다. 이 전통을 기리기 위해 마을 중심가에는 여전히 산악 가이드 박물관과 이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세기 들어오면서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와 현대적 변모를 겪게 되는데

파시스트 정권의 이탈리아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은 프랑스어 색채를 지우기 위한 강제 ‘이

탈리아화’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본래 이름 대신 ‘코르마이오레(Cormaiore)’라는 이탈리아식 이름으로 강제 개명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인 1948년이 돼서야 원래의 명칭을 되찾았다.

몽블랑 터널 개통 (1965년): 1965년 프랑스 샤모니와 꾸르마에르를 지하로 연결하는 길이 11.6km의 몽블랑 터널이 개통되었다. 이 터널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나아가 남유럽과 북유럽을 잇는 거대한 물류·관광 경제의 대동맥이 되었으며, 꾸르마에르가 세계적인 사계절 리조트로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현재 꾸르마에르는 과거의 거친 산악 역사와 고급스러운 이탈리아 휴양 문화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곳이다.

사계절 아웃도어의 성지: 겨울에는 유럽 최고의 스키 리조트 중 하나로 꼽히며, 여름에는 몽블랑 둘레길을 걷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

TMB(Tour du Mont Blanc)의 주요 거점 도시로 수많은 하이커들이 방문하기 때문이다.

현대적 인프라: 2015년에는 360도 회전하며 몽블랑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는 초현대식 케이블카 ‘스카이웨이 몬테 비앙코(Skyway

Monte Bianco)’가 개통되어, 등반가가 아니어도 해발 3,466m의 엘브로네 고개까지 쉽게 올라 알프스의 만년설을 만날 수 있다.

문화적 정체성: 중심가인 ‘비아 로마(Via Roma)’는 보행자 전용 도로로, 전통적인 돌과 나무로 지어진 아오스타 밸리 특유의 건축물 사이에

고급 부티크와 오랜 역사의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어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곳이다.

꾸르마에르 몽블랑 산 너머는 프랑스의 샤모니이다.

터너를 통과하면 샤모니와 스위스의 제네바까지 102km로 두 시간이 체 걸리지 않는다

조셉-마리 앙리 광장에서 본 돌론 마을

‘펠리체 올리에 기념비(Monument to Felice Ollier)...그는 이곳 출신의 유능한 가이드로 1899년, 이탈리아의 유명한 왕족이자 탐험가인

아브루치 공작(Luigi Amedeo, Duke of the Abruzzi)이 인류 최초로 북극점을 정복하기 위해 탐험대에 가담하게 되었으나 썰매견들과

함께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와 개들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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