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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북아역사재단 직무 유기 고발(10부작) // 제2부. 베이징 한복판에 드러난 왕검성의 비밀

작성자사람이 하늘이다|작성시간26.06.19|조회수15 목록 댓글 1

https://youtu.be/klhId3Kg30g

 

역사지리의 핵심은 산과 강이다.

<사기> ‘조선열전에 따르면 고조선에는 습수라는 강물이 흘렀다.

<수경> <수도제강> <우적도>를 비롯한 수많은 사료들은 습수가 현 중국 하북성 북경을 흐르는 영정하로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14년 고조선 습수로 비정되는 영정하 하류에서 놀라운 유물이 발굴되었다.

북경시 대흥구 일대에서 낙랑군 조선현 사람 한현도라는 묘지명이 출토되었다.

 

낙랑군 조선현 사람 한현도 무덤이 왜 북경에서 나왔을까?

1차 사료 <삼국지><잠부론>에서 그 답을 알 수 있다.

 

기원전 195년경 고조선 준왕은 위만의 배신으로 왕검성을 빼앗기고 바다로 도망쳤다.

<삼국지>는 그때의 사건을 기록하면서 위략을 인용하여 그 때 왕검성을 탈출하지 못하고 남아 있던 준왕의 아들과 친척들이 모두 한씨 성을 사용했다고 하였다. 고조선 왕검성 지역, 즉 낙랑군 조선현에는 고조선 황실의 후예 한씨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고조선 준왕의 망명과 관련하여 왕검성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유일무이한 1차 사료가 있다. 후한시대 학자 왕부가 쓴 <잠부론>에는 고조선 수도 왕검성이 한성韓城 서쪽에 있다고 하였다. <수경주>를 비롯한 여러 사서들의 기록에 따르면, 한성韓城은 북경 남쪽의 랑방시 고안현 일대이다.

 

왕검성이 위치하였다는 랑방시 고안현 서쪽은 북경시와 보정시 일대에 해당한다.

<삼국지><잠부론>에 따르면 북경시와 보정시 일대에 고조선 황실의 후예 한씨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북경에서 낙랑군 조선현 사람 한현도 묘지명이 발견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고역사 TV> 운영자는 10년 전부터 동북아역사재단, 교육부 등에 수많은 1차 사료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왜곡·축소된 우리 고대사를 바로잡아 달라고 민원을 제기하였다.

 

고조선에 습수라는 강물이 흘렀고, 습수가 북경지역을 흐르는 영정하라는 수많은 기록이 존재하면, 동북아역사재단은 당연히 이를 연구하고 검증해야할 의무가 있다. 더구나 고조선 습수로 비정되는 영정하 하류에서 낙랑군 조선현 사람 묘지명이 나오지 않았는가?

 

<수경> <수도제강> <우적도> 등 습수가 영정하라는 여러 자료들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역사재단은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단 1차례의 검증도 없었다. 심각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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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마고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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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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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태양해 | 작성시간 26.06.20 동북아 역사재단인들은 한국인이 아니다
    1945년 일본 항복 후 일본 본토로 못 넘어간 일본인들이 조선인으로 위장하여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다
    그 자손들이 장악한 동북아 역사재단 인사들이다 그래서 항상 진실을 외면 한다
    한국인에 자긍심도 없다 그 이유는 가짜 조선인 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사형 시켜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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