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독립국이 아니었다, 명나라의 ‘속국’
한국학중앙연구원, 9일 ‘임진왜란 제7갑 국제학술회의’ 개최
“(임진왜란 중에) 일본은 결정적인 사안을 다룰 때는 항상 명과 직접 대화하고자 했다. 이는 당시 국제무대에서 조선이 차지하던 위상이 비록 중국 다음의 2인자였으나, 오히려 그런 문제 때문에 다른 외국에서는 조선을 거의 명나라의 아류로 보았다는 생생한 증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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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국난극복의 동력을 조선 내부에서 찾는 연구가 주류를 형성한 마당에 명에 대해 조선이 보인 지나치게 저자세적인 자세는 학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고 밝혔다.
논문은 작전지휘권도 없이 일방적으로 명군明軍에 휘둘린 점, 강화협상 과정에서 조선이 배제된 일 등을 상세히 수록했다.
명나라가 지휘권과 처벌권, 조선의 문무를 가리지 않았다!
“권율이 행주대첩을 이끌자 명군 총사령관 격인 경략經略 송응창宋應昌(1536~1606)은 권율의 승첩을 치하기보다는 오히려 일본군에 대한 살상을 금지하는 패문을 내렸다. 조선 조정에서는 이 패문을 권율에게 전달하지 않음으로써 불만을 표했으나, 거기에서 그칠 뿐 다른 항의를 전혀 하지 못했다.“
“명의 일개 유격遊擊이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선의 장수 네 명을 잡아다 곤장을 쳐서 처벌한 일은 아주 좋은 예이다. 이 사건에 대해 국왕 선조는 진노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어떤 항의도 하지 못했다”
명나라의 지휘권과 처벌권은 군인만 아니라 문신 관료에게도 적용됐다.
경리經理 애유신艾維新은 군량수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선의 고위급 신료인 검찰사 금응남, 호조참판 민여경, 의주부윤 황진 등을 잡아 곤장을 치며 처벌했던 것이다.
계 교수는 “위와 같은 사례들은 지금까지 전통적 조공책봉체제에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 국내 학계에서 조공책봉체제의 본질을 자주적 실리외교, 의례적인 관계, 유교적으로 포장된 관계 등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이 명과 맺은 조공책봉관계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중차대한 정치적 문제였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 조선과 일본 그리고 명나라가 참전한 임진왜란 기록화(=독립기념관 제공)
누르하치 참전의사는 조선에 보내지 않았다, 왜?
일본은 결정적인 사안이 있을 때는 항상 명과 직접 대화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 계 교수는 “당시 국제무대에서 조선이 차지하던 위상이 비록 중국 다음의 2인자였으나, 오히려 그런 문제 때문에 다른 외국에서는 조선을 거의 명나라의 아류로 보았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밝혔다.
누르하치도 두 번에 걸쳐 참전 의사를 밝혔는데 조선으로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 중에 누르하치는 두 번에 걸쳐 참전 의사를 밝혔는데, 모두 한양이 아닌 요동도사에 의사를 전달했고, 조선 조정은 요동도사를 통해 그 사실을 듣곤 했다. 이는 누르하치가 국제무대에서 조선은 명의 속국이고, 그 의미를 적어도 조선과 관련된 사안일지라도 그것이 국제적 사안일 경우에는 결정권이 명에게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볼 때, 조선의 지위는 국가가 아니라고 해도 별다른 항변을 못할 정도로 낮았다는 것이 계 교수의 말이다.
그는 “유교가치로 이념화되고 그것이 실제로 의례라는 형식으로 구체화 되어 있다고 파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실제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앞으로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근대의 시각으로 볼 때 조선은 독립국이 아니었으며, 당시의 시각으로 보아도 국내의 자치만 스스로 했지, 국제 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히 명의 속국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동아시아역사연구소가 한국사학사학회, 임진왜란연구회와 함께 오는 9일 동 연구원 강당에서 '국제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주제로 열린다.
기조 강연은 정구복 한중연 명예교수가 '임진왜란을 국제전쟁사로 서술하기 위한 시각'을, 기타지마 만지 일본 국립여대 교수는 '국제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과 그의 역사의식'을, 진상승 중국 산둥대 교수는 '명 만력(萬曆)시기 조선원조전쟁 관련 중요인물과 명사(明史)에 입전(立傳)된 인물'을 주제로 각각 강연한다.
학술회의는 3부로 나눠 진행되며 그동안 민족사적 관점으로 연구된 것과 달리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 학자들이 임진왜란을 동아시아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는 '1592년 전쟁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문명사적 관점에서의 성찰', 계승범 서강대 교수는 '임진왜란의 현재성-전쟁 중 조명관계의 실상과 조공책봉관계의 본질'에 관한 연구 논문을 각각 소개한다.
류보전 중국 산둥대 교수는 '임진왜란 전후 명나라의 일본인식', 일본 요코하마도시역사박물관의 유지 소네 교수는 '임진왜란 시기의 일본 열도의 동향-군사 대국 일본의 길'을 주제로 각각 발표한다.
'임진왜란사 인식의 문제점과 연구과제'(조원래),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동과 임진왜란의 성격'(김현영), '조선중기 문헌을 통해 본 동아시아사의 이해-징비록의 사학사적 고찰'(김경수),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비교사적 검토'(정영순) 등의 연구논문도 발표된다.
문의) 031-709-8111
출 처 : http://www.ikoreanspirit.com/news/articleView.html?idxno=35852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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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자 작성시간 12.11.09 불편한 진실은 이것뿐만 아닙니다... 삼전도의 수모로 조선의 상국은 명에서 청으로 바뀝니다... 그걸 타파하기 위해 고종이 선택한 고육지책이 대한제국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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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둥근이 작성시간 12.11.10 에구 이조의 실상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합니다~
일인의 부귀영화에 대한 욕망땜에 한민족은 민족정기가 흐려지고야 말았습니다!!! -
작성자우처쿠 작성시간 12.11.10 有明朝鮮, 이것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이조선은 명나라의 소유물, 즉 물건이라는 말입니다. 이성개놈이 회군반란이 무엇을 말해주는 지 아직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학교국사책이 이성개, 이조를 너무나 왜곡해 놨기 때문이죠. 그 국사책을 쓴 놈들이 바로 이조잔당들이기 때문이죠. 이조선은 명나라의 지방정부, 명나라의 한 성에 불과 했습니다. 다만 내부적으로 자치권이 인정되는 지방정부요. 그래서 '명나라=이조강점기'라고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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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태양해 작성시간 13.10.16 조선총독부 조선사 편수회의 위작을 보고 계십니다 허구이며 개구라 입니다 허구 반도설을 아신다면 전혀 믿을 필요가 없조 그 시대에 중국이라는 용어는 나라명이 아니고 황제가 계신는 지역으로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경기도를 중국이라고 합니다 명제후국이 어찌 상전이 됩니까 누르하치도 황제가 곤경에 빠져 있으니 도울여고 한 것이지 멀리 떨어진 동쪽에 반도나라에 뭐가 답답하여 도울여고 합니까 명제후국도 대조선의 황제가 싸우라고 하니 대조선의 제후로서 싸우는 것이지 아무 이득도 없이 대군을 이끌고 나가 싸웁니까 명 조정에 난리치면 그방 출전을 불가능이조 그러나 대조선의 황제의 명이니 명제후국이 바로 출전 하는 거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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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섹시조의선인 작성시간 14.05.01 사실 우리의 진정한 조선은 한일합방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한중합방으로 망한거라 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