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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칠 일의 샹(上)이 남대문의 뎐좌(殿座)?怠챨? 통교(哀痛敎) 리오시니, 득?? 졔신이 아니 울 니 업더라. 십팔 일의 북문 대쟝(北門大將) 원두표ㅣ(元斗杓ㅣ) 젹군을 비로소 모 바다 나가 화 도젹 여셧슬 쥭이니라. 셩듕 창고의 과 피 잡곡 합?態? 겨요 일만뉵쳔여 셕이 이시니, 군병 만인의 일삭(一朔) 냥식은 되더라. 소곰, 장, 조 , 면화, 병장기 집물(什物)이 다 니셰(李曙ㅣ) 쟝만?殆? 둔 거 니, 니셔의 조 일큿더라. 십구 일의 남문 대쟝(南門大將) 구굉(具宏)이 발군?態? 화 도젹 이십 명을 쥭이다. 대풍(大風)?耽?, 비 오려 ?榻醮? 김쳥음(金淸陰)을 명?台? 셩황신(城隍神)의 졔(祭)?榻?, 람이 즉시 긋치고 비 아니 오니라. 이십 일의 마쟝(馬將)이 통 (通使) 뎡명슈(鄭命壽) 보 야 화친?貪戍? 언약 , 셩문을 여지 아니?耽? 셩 우 셔 말을 뎐?耽? ?榻?. 이십일 일의 어영 별쟝(御營別將) 니긔튝(李起築)이 군을 거 려 도젹 여라믄을 쥭이고, 동문 대쟝(東門大將) 신경진(申景 )이 발군?態? 도젹을 쥭이다. 이십이 일의 마부대(馬夫大)ㅣ 통 (通事) 보 여 닐오 , 이졔 동궁(東宮)을 쳥티 아니니, 만일 왕 대신을 보 면 뎡?態? 화친?汰? ?鐸?, 샹이 오히려 허티 아니시다. 북문 어영군이 도젹 여라문을 쥭이고, 신경진이 셜흔아믄을 쥭이다. 샹이 졍(內廷)의셔 호군( 軍)?怠척?. 이십삼 일의 동·셔·남문의 영문(營門)의셔 군 고, 샹이 북문의셔 홈을 독쵹?怠척?. 이십 일의 대위(大雨ㅣ) 리니, 셩쳡(城堞) 직흰 군 다 젹시고 어러쥭으니 만흐니, 샹이 셰 (世子)로 더브러 가온 셔셔 하 긔 비러 오샤 , "금일 이에 니 기 우리 부 득죄?蕩甄?, 일셩 군민(一城軍民)이 무 죄리잇 고. 텬되(天道ㅣ) 우리 부 의게 화 리오시고, 원컨대 만민을 살오쇼셔." 군신들이 드 시기 쳥?鐸? 허치 아니?怠척醮?, 미구(未久)의 비 긋치고, 일긔 지 아니?榻?, 셩듕인(城中人)이 감읍(感泣)디 아니리 업더라. 이십오 일의 극한(極寒)?榻?. 묘당(廟堂)이 젹진의 신 보 기 쳥?殆윱?, 샹이 오샤 , "아국이 양 화친으로 져의게 쇽으니, 이졔 신을 보 야 욕될 줄 알 , 모든 의논이 이러?榻? 이 셰시(歲時)라, 슐, 고기 보 고 은합(銀盒)의 실과 담아 후졍(厚情)을 뵌 후, 인?態? 졉담(接談)?態? 긔 을 살피리라." ?怠척?. 이십뉵 일의 니경직(李景稷), 김신국(金藎國)이 술, 고기 은합을 가지고 젹진의 가니, 젹쟝이 오 , "군듕(軍中)의 날마다 쇼 잡고 보믈이 뫼 치 혀시니, 이거 므어 리오. 네 나라 군신(君臣)이 돌 굼긔셔 굴먼 지 오라니, 가히 스 로 ?宕뎬?." ?耽?, 드 여 밧지 아니?耽? 도로 보 니라. 이십칠 일의 날마다 셩듕의 구완?帑? 오 군 라 일 인도 오 니 업고, 강원 감 됴뎡회(趙廷虎ㅣ) 본도군(本道軍)이 다 못지 못?殆낢綏? 양근(楊根)의 퇴진?殆? 후의 오 군 기 리고, 몬져 영쟝(營將) 권졍길(權井吉)노 ?殆ʼn? 녕병(領兵)?態? 검단 산셩(黔丹山城)의 니 러 봉화(烽火) 드러 셔로 응?榻?. 이십팔 일의 쳬찰 (體察使) 김 (金 ㅣ) 친히 쟝 거 려 븍셩의 가 독젼(督戰) , 도젹이 방포(放砲) 소 듯고 거즛 믈너 며 져근 군 와 우마(牛馬) 머므 니, 이 유인?鐸? 라. 김 그 헤아리지 못?耽? 군 독촉?態? 려가 치라 ?榻?, 산성(山城)의 잇 근 그 알고 리지 아니?榻?, 김 병방 비쟝(兵房裨將) 뉴호 환도(環刀) 쥬어 아니 리 니 어즈러이 즛 니, 군 려도 쥭고 아니 려도 쥭게시 , 비로소 려가 젹진의 우마 가지 , 젹이 본 톄 아니타가, 군 다 리기 기 려 젹의 복병(伏兵)이 면의셔 닷고, 믈너갓던 젹병이 나아드러 잠시의 우리 군을 다 쥭이고 졉젼 젹, 김 화약을 앗겨 긔 만히 쥬기 아니?耽? 달나기 기 려 주더니, 이 급?態? 화약을 미쳐 쳥치 못?耽?, 조춍(鳥銃)으로 서로 디 가 못 이긔니, 뫼길이 급?態? 오 기 어려오니, 이에 다 쥭기에 니 니라. <중략>
이십구 일의 무 ?耽?, 삼십 일의 대풍?耽? 일긔 참연(慘然)?榻囑?. 이 젹이 광 로 삼밧개 헌능 삼노(三路)로 병(行兵)?態? 져무도록 , 갈 대풍?耽? 젹병이 슈 모르 대셜(大雪)이 갓 왓 듕군이 들을 덥허 ?? 뎜 흰 빗치 업 니 그 슈의 만흐믈 가히 알지라. 적은 그러?耽? 아국(我國)은 흘 이 업 니 구완 오지 아니?耽? 달니 일이 업셔 궁 남녁 작쇼(鵲巢) 지어시니 인인(人人)이 다 이 라고 길됴(吉兆)라 ?殆? 그만 밋더라. 뎡튝(丁丑) 졍월 초일일의 일식(日蝕)?榻?. 광쥬 목 (廣州牧使) 허휘(許徽) 권모 일긔 진어?耽? 관들의게 두어 가래식 보 엿더라. 아 의 션뎐관(宣傳官)으로 적진의 말을 뎐?耽? 김신국(金藎國), 니경직(李景稷)을 보 려 ?榻?, 적쟝이 답?鐸? 한이 어졔 나와 시방 산셩 형셰 둘너보니 이후 일은 우리 등의 알 아니니 환진(還陣)?? 후 일 다시 오라. 이 날 오후의 동문 밧긔 두 냥산과 큰 긔 셰워시니, 이거시 반 시 한(汗)이러라. <후략> <필사본(筆寫本) 산성일기(山城日記)>
▶ 어휘 풀이 모 바다 : 자문 받아. '자못 밟아(맞아)'로 해석하는 이도 있음 겨오 : 겨우 일삭(一朔) : 한 달 집물(什物) : 살림살이에 쓰는 온갖 기구, 집기(什器) 니 : 사용하니 일큿더라 : 칭송하더라 통 : 통역관 닐오 : 말하되 동궁(東宮) : 소현세자 호군( 軍) : 음식을 베풀어 군사를 위로함 셩쳡(城堞)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미구(未久) : 오래지 않아서 감읍디 : 감격하여 울지 금긔서 : 구멍에서 녕병(領兵) : 군대를 거느림
▶ 구절 풀이 셩듕 창고의 - 되더라. : 성이 고립되어 있으며, 겨우 한 달 정도 지탱할 식량만 남아 있다. 성 안의 어려운 식량 사정을 보여 준다. 샹이 - 호군( 軍)?怠척?. : 임금께서 궁궐 안에서 음식을 베풀어 군사를 위로하시다. "군듕(軍中)의 - ?宕뎬?. : 악화된 성 안의 상황을 아는 청나라 군사가 '우리는 식량이 풍부하니 너희 나라 군신이나 쓰라.'고 한 오만 불손한 말이다. 성 안의 임금의 생각이 적들과 화해하려는 방향으로 바뀌었음을 암시한다. 이십칠 일의 - 오 니 업고, : 날마다 남한산성을 지켜 줄 군사를 기다리지만 한 사람도 오지 않는, 백성과 임금이 처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를 의미한다. 강원 감 - 기 리고, : 강원 감사 조정호는, 관군이 다 모이지 않았기에 경기도 양평으로 퇴진하여 뒤에 오는 군사를 기다리고 있다.
▶ 핵심 정리 지은이 : 미상 갈래 : 일기. 고대 수필 연대 : 인조 14년(1636년)경 성격 : 일기 형식의 수필. 기록 문학 배경 : 병자호란 주제 : 병자호란의 치욕과 남한산성에서의 항쟁 출전 : <필사본(筆寫本) 산성일기(山城日記)>
▶ 작품 해설 '산성일기'는 병자호란 당시의 남한 산성에서의 정황을 서술한 어느 궁녀의 실기(實記)이자 수필이라고 알려져 있다. 남한 산성에서의 처절한 항전(抗戰) 및 굴욕적인 외교의 일면과 암울했던 역사의 이면(裏面)을 일기 형식으로 생생히 기록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 글을 통하여 당시의 처절했던 정황과 우리 민족사의 어두운 면을 되새겨 보게 된다. 이 작품은 병자호란 당시의 전쟁 체험을 기록한, 한글로 기록된 내간체의 일기인데 작자는 당시의 어느 궁녀라는 설이 일반화되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산성을 지키며 항전하던 비참한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으며, 남한산성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이 사실적으로 서술되어, 역사적 상황과 그 이면 또한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특히 인조 14년 음력 12월 17일부터 15년 1월 2일까지의 항전과 치욕스런 항복 및 외교의 일면을 구체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병자호란 당시의 산성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보다 다양하게 파악할 수 있다. '산성일기'의 내용은 당시의 역사적 기록인 '병자록'이나 '남한일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어, 당시 직접 인조와 함께 실전에 참전하고 투항하기까지 국가의 시책에도 참여한 인물의 체험기가 아닌가 하는 인상도 짙다. 전란의 현장을 기록한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의 이면을 생생히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를 하고 있어 기록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성일기'는 ① 객관적 자세를 견지한 대표적 한글 수필, ② 병자호란에 대한 역사적 자료, ③ '계축일기'와 함께 국문학 사상 쌍벽을 이루는 일기체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참고> 전편의 짜임과 요지 이 작품의 전체 짜임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①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란 가는 과정 ② 산성에서의 처절한 항쟁 ③ 삼전도(三田渡)에서의 항복 그리고 작품 전체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병자(丙子) 12월 17일 - 22일 : 소규모의 전투 중에 청군(淸軍)이 화친(和親)을 제의함 병자(丙子) 12월 23일 - 26일 : 왕[仁祖(인조)]의 독전(督戰)과 적진에 보낸 세찬(歲饌)이 거절당함 병자(丙子) 12월 27일 - 28일 : 근왕병(勤王兵)의 구원은 오지 않고 김류(金 )는 패함 병자(丙子) 12월 29일 - 정축(丁丑) 1월 1일 : 청(淸) 태종(太宗)이 도착함 정축(丁丑) 1월 2일 : 청(淸)으로부터 굴욕적인 서신을 받아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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