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1년, 충정왕이 물러나자, 몽고(원)에 나갔던 공민왕은 귀국하여 왕위에 올랐다. 몽고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몽고풍을 폐지하고, 친원 세력의 중심 인물인 기철 일파를 숙청하였다. 또한, 몽고풍을 폐지하기 위해 공민왕은 스스로 고려의 옷을 입었다. 공민왕과 혼인한 원의 노국공주(노국대장공주)도 공민왕을 따라 고려의 옷을 입었다. 1356년, 원의 간섭 기구였던 정동행성을 없애고,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되찾았다. 또한, 쌍성총관부 탈환에 힘입어 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았고, 고구려의 옛땅을 되찾기 위해 요동 지방을 공략하였다.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속에서도 그는 중 신돈(편조의 원래 이름)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관리하게 하여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민간에게 돌려주려 하였다. 그러나, 권문세족의 반발로 신돈이 사약을 받고, 공민왕도 피살되었다. 공민왕의 개혁은 개혁을 추진할 세력이 아직 권문세족을 능가할 정도로 강하지 못했으며,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나라 안팎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개혁 세력이 미처 다 청산하지 못한 원 간섭기의 잔재들이 조선 시대까지 명목을 이어 갔다.
이들이 미처 다 청산하지 못한 원 간섭기의 잔재를 보기로 하자.
1. 노국공주
노국공주는 공민왕이 원나라에 나가서 살면서 왕비로 맞아들였다고 한다. 원 간섭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공주와 혼인을 하였고, 태어난 왕자는 원나라에서 성장하면서 교육을 받고 귀국하여 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민왕은 노국공주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지극하여 후궁을 들이라는 태후의 요구와 왕비를 갈아들이라는 대신들의 집단 상소를 모두 거절했다.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죽은 후, 공민왕은 왕비의 초상화를 그려 놓고, 며칠동안 왕비의 초상화만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한다. 공민왕이 진정으로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면, 왕비도 고려의 여자를 들였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2. 왕실 용어
원의 간섭으로 왕을 높여 부르는 용어인 '폐하'는 '전하'로, 왕의 후계자를 부르는 용어인 '태자'는 '세자'로, 왕이 자신을 부르는 용어인 '짐'은 '고'로, 왕의 칭호는 나타낼 때는 중국이 쓰는 '조.종'이 아닌 '왕'을 붙이도록 바뀌었다. 이리하여 고려 왕의 칭호는 원종 이후부터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왕'을 붙이게 되었다.(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공민왕, 우왕, 창왕, 공양왕) 조선이 명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서 왕의 칭호는 다시 중국식으로 바뀌었지만(조.종), '전하', '세자'와 같은 용어는 고종 황제가 대한 제국을 선포할 때까지 계속 쓰였다.
3. 기타 생활 풍습
머리에 족두리를 얹는 풍습, 연지와 곤지를 찍는 풍습은 몽고에서 들어온 풍습이다. 연지와 곤지를 찍는 풍습은 조선 시대에 이르러 사라졌지만, 족두리는 광해군 때부터 다시 쓰이기 시작하여, 조선 왕실의 예복으로 쓰였다. 그런데, 족두리가 왕실의 예복으로 쓰이게 된데는 이유가 있다. 역사극을 보면 '가체'라는 머리 장식이 있다. 가체란, 지배 계급의 부인들이 머리에 썼던 장식으로, 역시 몽고풍의 영향을 받았는데, 왕비와 왕대비와 대왕대비는 진짜 사람의 머리털로 만든 가체를 썼고, 후궁과 사대부 아녀자는 나무로 만든 가체를 썼다. 그런데, 예를 갖추기 위해 쓰인 가체가 사치품으로 전락하였고, 한 번은 어린 신부가 가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목뼈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결국 1788년, 정조는 가체를 금지하고, 그 대안으로 족두리를 얹도록 하였다.
우리가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지, 61년이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미처 다 청산하지 못한 일제 감정기의 잔재들이 많이 숨어 있다. 우리는 당시 개혁 세력이 조선을 세우면서 미처 다 청산하지 못한 원 간섭기의 잔재를 바탕으로 일제 감정기의 상처를 없애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제가 네이버 지식iN에 오픈백과로 올린 글입니다. 70년에걸친 원 간섭기의 잔재도 청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36년간의 일제 감정 시대의 잔재를 청산할 수 있으리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써 주세요. 그리고, 기타 원 간섭기의 잔재가 더 있다면, 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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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삼신 할머니 작성시간 06.08.30 전형적인 현행 학교국사 기술방식이군요.^^ 학교국사내용은 이곳으로 옮겨 오지 않으셔도 다들 잘 알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이미 우리의 전통과 문화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들을 문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네요. 님 처럼 따지자면 순순우리것이 얼마 될까요? 여기는 참역사를 발굴하기 위해 생산적인 토론을 하는 곳입니다. 이런글은 자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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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소서노 작성시간 06.08.30 현재도 몽골과 우리는 영고제천행사등 문화교류를 하고 있으며, 유전자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한핏줄임을 이 까페는 증명하고 있구, 향후 동북공정에 대항하기위한 유력한 동반자가 몽골입니다. 그런데 그 몽골을 우리와 다른 그리고 적처럼 다루고 있는 '대한..' 님은 우리까페의 정신을 아직 체화하지 못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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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쿠빌라이 작성시간 06.08.30 원간섭기의 잔재라? 그렇게 되면 당신은 일본 앞잡이인 친일파밖에 안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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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대한국민에게고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6.08.30 이런 사실은 처음 알았군요. 죄송합니다. 사실 제가 알고 있는 한국사는 전체 한국사의 60%도 채 안 됩니다. 또한, 저는 증거 없는 사실은 믿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의 무지를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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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홀필렬 작성시간 06.09.02 우리 모두 흥분을 가라앉칩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흘러간 역사를 증거로 증명 한다는것도 한번은 생각 해봐야 할일 이지만 또한, 그 역사를 나 개인의 의지나 이상으로 몰아 가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과 생각을 꺼내 놓고 우리 같이 찾아 가봅시다. 웃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