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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北 "고구려는 황제국"..中 동북공정 반박 분석

작성자은하수비|작성시간13.08.01|조회수186 목록 댓글 1

<북, 中 고구려사 왜곡시도 반박>

연합뉴스 | 입력2003.12.14 08:21

기사 내용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북한은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왜곡하려는중국의 움직임에 고대 문헌 등의 자료를 제시하면서 당당히 맞서고 있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귀속시키려는 목적으로 추진 중인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가 알려진 이후 관영매체와 학자들을 동원해 고구려가 "조선의 역대국가"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후한서"와 "삼국지", "삼국사기", "삼국유사", "신증동국여지승람", "국조보감", "기자조선" 등 고대 문헌을 연구분석해 "고구려를 "어느 대국의 속국", 발해를 "당나라의 속국"이라고 묘사한 사료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하고있다.

중국과 전통적인 "혈맹관계"에 있다는 북한이 고구려사 왜곡 움직임에 정면대응하고 있는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며, 이번 기회로 남북한이 공동연대를 모색하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12.2)은 고구려가 중국과 동등한 황제국가로서의 제반 제도와 의례를 제정하고 실시했다면서 고구려를 주변국과의 주종관계 또는 예속관계에있었다는 일각의 주장은 "역사기록의 개별적 문구를 가지고 해석하려는 헛된 시도"라고 일축했다.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강세권 연구원은 노동신문(11.27)을 통해 "고구려가어느 대국(중국)의 "소수민족정권", "지방정권", "속국"이 아니라 조선민족의 당당한 자주독립 국가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역사서에 고구려가 어떤 군에 속했다거나 "책봉", "조공" 등의 기록이 나오는 것을 두고 이를 주종관계로 해석하는 것은 역사주의적 입장을 벗어난 아전인수식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강 연구원은 "진나라가 쌓은 만리장성은 고조선, 고구려를 비롯 중국을 위협하던 여러 나라들과 종족들의 진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한반도 고대국가들의 정통성과일체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회과학원 역사학연구소 근대사 실장인 공명성(34) 박사는 "조선 역대국호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 등 실존했던 역대 국가들의 나라이름에는 "동방의 해 뜨는 나라", "태양이 솟고 밝고 선명한 나라"라는 공통된 뜻을담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또 노동신문(12.2)과 학술지 "역사과학"(2003.3) 등은 발해를 독립국가가 아닌당나라 내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려는 중국측의 역사왜곡 움직임을 신랄하게 비판하고있다.

노동신문은 "발해가 주변 나라들의 연호와 완전히 구별되는 독자적인 연호를제정해 사용한 사실은 발해를 당나라의 일개 주 즉 `속국"으로 묘사한 일부 사료들의 부당성을 잘 보여준다"며 지적했다.

지난 48년 이후 현재까지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고구려 벽화고분은 모두 91기에이르며 북한은 이를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적극 보호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threek@yna.co.kr(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北 "고구려는 황제국"..中 동북공정 반박 분석

 

| 기사입력 2007-06-07 17:14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7일 고구려는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황제국이었다고 보도함으로써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겨냥한 것이라는 풀이를 낳았다.

북한은 중국과의 외교관계 등을 고려해 한반도의 역사왜곡을 담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고, 이날 중앙통신 기사도 "고구려는 고대 중국의 한 지방정권"이라는 동북공정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중앙통신은 그러나 '고구려의 왕호에 반영된 황제적 지위' 제목의 기사에서 "조선 역사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였던 고구려는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황제국이었다"며 "고구려의 건국자인 동명왕은 자기를 천자(하늘의 아들)라고 자칭했고 실제로 이 시기의 금석문에도 동명왕을 '천제의 아들', '황천의 아들', '해와 달의 아들'로 표현했다"고 소개했다.

이 통신은 "동명왕을 계승한 고구려의 역대 통치자들도 다 그와 같은 지위에 있었다"며 "고구려에서는 평시에 고구려 통치자를 뭇 왕들을 거느린 최고통치자라는 뜻에서 대(태)왕이라고 했고 '성상', '제(황제)'라고도 불렀다"고 지적했다.

이어 통신은 "'성상번(성상이라고 쓴 깃발)'을 날리는 고국원왕의 수레를 호위해 나가는 고구려의 대행진 장면이 그려진 고국원 왕릉의 무덤벽화와 고국원왕을 '소열제'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 삼국시기의 다른 나라 역사책 등이 그것을 뚜렷이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 통신은 "고구려에서는 천자로서의 고구려 최고통치자를 신성시하고 그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왕 칭호 앞에 여러가지 좋은 수식어도 붙여 '성왕', '명왕', '신왕', '호왕', '호태왕' 등으로 불렀다"며 "이와 같이 고구려는 그 당대의 왕호만 보더라도 천자를 최고통치자로 하는 명실공히 황제의 나라였다"고 덧붙였다.

중국 역사학계는 최근 고구려사 왜곡에 이어 고려를 '중국 출신 통치자가 한반도에 세운 세번째 정권'이라는 식의 동북공정 주장을 내놓아 파문을 일으켰다.

jyh@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king21c/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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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中 고구려사 왜곡 반박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시도에 대해 북한 관영매체 및 학계의 반박이 잇따르고 있다. 북한 최고위층은 중국의 역사왜곡 움직임에 남측이 강하게 대응해주기를 요청한 바 있다고 열린우리당 김성호 의원이 14일 밝혔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고구려는 수세기에 걸친 중국과의 전쟁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고수해온 주권국가”라고 평가했다. 특히 “고구려를 주변국과의 주종 또는 예속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기록의 개별적 문구를 갖고 해석하려는 헛된 시도”라고 비판했다.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강세권 연구원은 노동신문에서 “고구려가 어느 대국(중국)의 ‘소수민족정권’ ‘지방정권’ ‘속국’이 아니라 조선민족의 당당한 자주독립국가였다”고 주장했다. 김성호 의원은 “지난 8월 남북 학술토론회 참석차 방북했을 때 북측의 최고위인사로부터 고구려사 왜곡문제에 대한 남측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청받았다”고 밝혔다.

김의원은 “장관급 이상인 이 인사는 ‘북쪽 입장에서는 중국에 대해 이런 부분을 제기하는 데 솔직히 어려움이 있다’면서 ‘남쪽에서 이 문제를 강력하게 얘기해야 할 것 아니냐’고 촉구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북측 인사는 중국의 역사왜곡 의도에 대해 ‘남북통일 과정에서 내전 등 혼란이 발생할 경우 현 북한 영토에 대해 개입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3년 12월 14일 19: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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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 "고구려..최대 령역은 조선반도의 중부 이북과 료하 상류 류역의 동쪽, 송화강 류역, 흑룡강 하류 류역의 남쪽을 포괄하여 동서로 6,000리, 남북으로 4,000리였다."(2007년 증보판 '조선말대사전')

북한이 15년 만에 증보한 '조선말대사전'(전 3권)을 통해 중국의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왜곡에 맞섰다.

사전은 먼저 '고구려'에 대한 설명에서 1992년판에 최대 영역을 "동서로 6,000리, 남북으로 수 천 리였다"고 설명했던 것을, 증보판에서는 "동서로 6,000리, 남북으로 4,000리였다"고 못박고 고구려사 관련 어휘를 대거 새로 실었다.

특히 '고구려-한 전쟁', '고구려-위 전쟁', '고구려-연 전쟁', '고구려-수 전쟁', '고구려-당 전쟁' 등 고구려가 중국 대륙의 외세에 대항해 싸우면서 강력한 국력을 과시한 역사를 집중 소개했다.

북한은 지난 3월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발행한 대중역사서 '고구려이야기(사회과학출판사)'를 통해 "최근 어떤 학자들의 논조에...고구려는 중국의 '속국',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이었다는 괴이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강력 반박했었다.

증보판 '조선말대사전'은 '고구려-수 전쟁'을 "6세기 말~7세기 초 고구려의 군대와 인민들이 수나라의 침공을 쳐물리친 반침략 조국방위 전쟁"으로 정의하고 "고구려 군대와 인민들은 4차에 걸치는 대규모의 침공을 물리치고 커다란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국토를 지켜내고 나라의 위력을 대외적으로 널리 시위하였다"고 강조했다.

또 '고구려-당 전쟁'에 대해선 "당나라의 침략에 반대하여 싸운 반침략 방위전쟁. 4차례에 걸치는 전쟁에서 고구려의 애국적인 군대와 인민들은 나라를 지켜내기 위하여 용감히 싸웠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국왕을 비롯한 통치배들의 무능력과 반역자의 투항행위로 668년 9월에 평양성은 함락됐다"고 덧붙였다.

사전은 특히 '고구려국'에 대해 1번 뜻으론 원래의 고구려를 설명하고, 2번 뜻으로 670년대 전반 지금의 황해남도 신원군 장수산성 일대인 한성에 들어선 '고구려국'이라고 설명한 뒤 "고구려 멸망 이후 인민들은 반침략 투쟁을 계속하여 당나라의 통치기구인 안동도호부를 료동지방으로 쫓아버리고 사야도(인천 부근 소야도)에 가 있던 고구려왕의 서자 안승을 데려다가 그를 왕으로 하는 고구려국의 재건을 선포하였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이 밖에 사전에 새로 실린 고구려 관련 용어는 '고구려다리', '고구려말', '고구려무덤벽화', '고구려벽화무덤', '고구려석각천문도' 등이며 발해에 대해서도 '발해-당 전쟁'을 비롯해 '발해자기', '발해장', '발해5경' 등을 새로 소개했다.

사전은 또 고조선에 대해서도 '고조선-연 전쟁'과 '고조선-한 전쟁' 등을 실어 외세의 침공에 대항한 역사를 부각시켰다.

2007년판 '조선말대사전'은 임진왜란 때 함경도 의병의 전승을 기념한 전공비이지만 일제시대에 약탈됐다가 남북 공동의 반환운동 끝에 일본으로부터 돌려받은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에 대해 "일제가 1906년에 일본으로 빼여갔는데 2006년에 되찾았다"고 소개했다.

 

 

 

                        북한 '규원사화' 번역출판

 

 

http://www.vop.co.kr/A00000290911.html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에서 민족고전의 하나인 '규원사화'(揆園史話)를 번역출판했다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16일 보도했다.

<조선신보>는 "1675년(숙종1년) 3월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규원사화'는 편찬자의 진보적인 력사관과 거기에 담겨진 귀중한 자료들로 하여 조선의 력사학발전정형과 특히는 고조선력사에 대한 연구에서 없어서는 안될 고전문헌으로 인정되고있다"고 보도했다.

'규원사화'라는 이름은 편찬자인 북애자가 붙인 것으로, '규원'은 그의 별호의 하나이며 '사화'란 역사적인 이야기라는 의미다.

'규원사화' 번역자인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 오희복 교원(69)에 따르면 '규원사화'에는 단군조선 47대, 1,205년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당시 사람들 속에서 전해지던 역사관, 자연관, 우주관 등 가치있는 자료들이 반영돼 있다고 <조선신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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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호두까기 | 작성시간 13.08.02 북한은 규원사화도 출간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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