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차분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앞 글에서는 청 시기의 대청도, 명 시기의 요양총도에 백지 상태로 둔 대릉하 상류 지역을 지리지 기록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지역을 묘사한 <황조일통여지전도>(이하 황조도라 함)의 극히 일부분도를 제시하며 출처는 향고도 다음 블로그입니다.
http://blog.daum.net/sabul358/18281872
황조일통여지전도(皇朝一統輿地全圖)
황조일통여지전도의 원도는 1832 年(淸.道光十二年),董方立、李兆洛에 의해 8권의 지도첩으로 제작된 이 후, 수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다. 원도는 북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아래 지도는 1865년(淸,同治4) 徑香閣 간행본으로 일본 쓰쿠바 대학 소장본이다. 원래는 8본의 방안지도를 20.6×14.1cm 크기의 한 권에 수록하여 총, 8권 (64본)의 지도첩으로 되어 있으나, 전체지도로 향고도가 편집하였다. 本제작으로 지도가 거칠기는 하지만, 청대에 제작된 전국적 지도들 중에서 가장 많은 지명과 산수(山水)명을 표기하고 있는 지도로 평가된다.
원도정보: 皇朝一統輿地全圖 :西元 1832 年(淸.道光十二年),董方立、李兆洛 編纂, 20.3×27.7cm,比例尺:1:2700000,雕版雙色套印。本圖以紅、黑兩色套印。該圖系在《皇輿全圖》,《十三排皇輿全圖》底圖上進行綜合取捨,補充現勢資料後編繪而成。主要表示地形、水系、居民地僅選取縣以上者及其名稱。圖上還採用畵方格和經緯網於同一圖上,這種從實際出發的雙重網格幷存的地圖曾在國內廣爲流行,在中國地圖史上有進步意義。現藏於北京圖書館。
(18방안, 방안별 확대 : 클릭).
위 고지도가 왜종학교에 소장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변조된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변조부분을 정확하게 지목하기 위해서는 앞 글에서와 같이 <한서><후한서><수경주><요사><명사><청사고> 등의 지지 기록을 동원하여 논리적.상식적으로 검토해야만 합니다. 그 결과 `변조부분`이라
표시한 노합하.황하의 하류는 요하로 합쳐지기는 하였으나 조양으로 흘러든 후 요하로 합쳐졌으며 그 요하도 지금의 요하가 아니라 지금의 란하를 말하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위 황조도의 오른쪽 부분은 지금의 요하 지역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해가 되는지요?
고지도- 황조도 변조부분
두 쪽의 지도를 일별하며 비교해 보면 글씨 크기가 차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축척이 다르다는 소리이며 저렇게 명확하게 축척이 다른 지도를 동.서로 이어진 지도라고 나란히 편집해 놓은 것이 왜종 쓰꾸반지 뭔지에 소장한다는 <황조도>라 불리는 지도입니다.
하지만 위 두 쪽의 지도는 단순.무지막지하게도 한 시기 우북평군 무종현 곧 당 시기 이후 옥전으로 개칭된 지점부터 지금의 란하까지의 지형지세를 묘사한 지역 지도와 지금의 대릉하 지역을 증발시키고 지금의 요하 하류에서 지금의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토문강이 백두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온성에서 토문강으로 흘러드는 어이후강까지의 주변 지형지세를 묘사한 광역지도를 억지로 연결시킨 막되먹은 지도입니다.
왜종들이 변조한 논리를 간략하게 도형화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도- 왜종 쓰꾸바대 소장 <황조도>의 실체
즉 위와 같이 면적이 엄청나게 차이나는 2 개의 흑색 표시 사각형 지형을 묘사한 지도가 동서,좌우로 연결된 지도라고 강변하며 1934 년 만주국지도를 제도하고 이를 한국인에게 들이민 것입니다.
저런 막되먹은 변조.조작이 광복 후 70 년 동안이나 역사학계에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현상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또한 지금의 중국은 위와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침묵하며 왜종 쓰꾸바 소장 지도의 묘사가 맞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참 뻔뻔들 합니다.
우리 한국의 일반인들은 광복 후 70 여년 간 반도 북쪽인 지금의 요하.심양.백두산 지역의 지형과 지명에는 조금 익숙해 있지만 조금 눈을 돌려 지금의 대릉하 지역 지형이나 지명 연혁에 관하여 언급하면 의외로 모릅니다. 한국사학계에서 지금의 조양을 북위.수.당 시기의 영주라고 하고 한 시기에는 요서군 유성현이라고 주장하며 주입하니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요서군 서쪽에 설치된 우북평군은 <후한서>군국지 우북평군에 그 위치가 설명되어 있는데 곧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2300 리 떨어져 있다고 하며 한국사학계는 그 우북평군 지역을 지금의 중국 요녕성 대릉하 서쪽 상류가 시작하는 건창 부근 지역이라고 주장합니다.
<고조선사.삼한사연구>를 저술한 천관우를 비롯하여 한국 대학 강단에 서는 역사전공자들은 누구나 보았을 <후한서> 군국지 기록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즉 우북평군보다는 낙양에 몇 십리라도 더 가까왔을 상곡군이 낙양에서 3200 리 떨어져 있고 우북평군은 2300 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멀고 가까운 것도 거꾸로 기록하고 그 차이도 90 리도 아니고 900 리라 한 것이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비정과 관련하여 그 어떤 논증도 없이 막무가내로 우북평군을 지금의 건창에서 지금의 조양까지로 당당하게 비정합니다.
이런 무식한 지리 비정이 대체 세계에 어디에 또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그 막되먹은 당당함은 어디서 분출되는 것일까요?
다음 글에서는 증발시킨 지역을 어떻게 메꾸었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