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의 말씀입니다.
뭔 허깨비같은 말을 합니까?
나는 오늘날 한국사 통설이 비판을 받고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 두 가지를 꼽자면 첫째는 단군조선 2300 여년의 역사가 지워진 것 그리고 단군조선 강역을 흐르는 820 리 길이의 열수를 잘못 비정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1910 년 왜종아이들이 이 땅을 공식적으로 손아귀에 넣은 후 단군조선 2300 여년의 역사를 전설.신화로 몰아간 것은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 한국의 역사학 교수들이 찬물로 세수 한 번하고 심중을 제대로 밝히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백제.신라 흥망지가 한반도 남쪽 땅이라 인식하는 것을 바꾸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 봅니다.
한국고대사를 한반도 내로 쑤셔넣은 것은 전부 왜종아이들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일정부분은 우리 선학들이였기 때문입니다. 후조선 시기인 1614 년 <동국지리지>를 저술한 한백겸은 남자남북자북설 곧 조선과 한은 남과 북에서 각각 발전하였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정확히 인식했다고 보지만 그 경계를 반도 한강으로 본 것은 대단한 착각이고 실수였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한백겸의 남북자설의 경계를 한강으로 비정한 주장을 고금에 없는 탁견이라며 따른 이들이 바로 유형원,안정복,정약용,한치윤 등이며 자신들의 저술에서도 인용하고 그 지리 인식을 바탕으로 삼한의 역사를 구성했던 것입니다. 즉 낙랑군을 흐르는 820 리 길이의 열수를 반도 한강으로 비정하고 삼한을 한수 이남 지역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현재 재야로부터 식민사관의 아류라고 비판받아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백겸을 비롯하여 후조선의 모든 선학들은 당시의 평양성과 압록강.백두산 및 요동 등 당시의 국경선이 지금의 란하 동쪽 유역에 있었다는 것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낙랑군 영역의 북쪽은 지금의 란하까지, 남쪽은 한반도 한강 북쪽까지로 인식하여 낙랑군 영역을 엄청나게 넓게 인식했었던 것입니다.
선학들의 이러한 잘못된 지리인식은 1894 년 조선 땅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청국의 봉천.길림 지역을 넘보는 왜종아이들에 의해 치밀하고 교활하게 활용되었습니다. 결국 산해관 동북지역의 지도를 교묘하게 조작하여 지금의 란하 위치였던 요하를 지금 위치에 갖다 놓아 후조선의 북방 강역인 지금의 대릉하 지역에 있던 지명들이 몽땅 지금의 압록강 남쪽으로 쑤셔넣어져 한국고대사 지리 파악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변조.조작의 결정판이 왜종일본아이들이 1934 년 제도한 만주국지도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사학계는 한백겸.정약용 등의 글이 낙랑군을 한반도 평양지역에 비정한 것이라 해석하며 식민사관을 밑받침하는 도구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무식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저러 짓들을 하는지 답답합니다.
어쨋든 낙랑군 서쪽에서 건국.흥망하였던 백제와 동남쪽에서 건국.흥망하였던 신라의 중심지는 반도가 아니였습니다. 그 증좌는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우리의 옛 서책 곳곳에 박혀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증좌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경도上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고조선의 마한 지역은 용과 호랑이가 서리고 웅크린 듯한 북진 화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한강이 허리끈 모양으로 둘러 있고 왼쪽은 관령이 막아서있고 오른쪽은 발해渤海로 둘러쌓여 있다. ...
신채호 사관을 들먹이면 사이비사학이라 비난하는 유식한 한국역사학계 고수들에게 묻습니다.
마한 지역 한성 오른쪽 곧 서쪽에 있다는 발해는 대체 어떤 바다입니까?
지금의 서해를 말합니까?
참고도- 삼국 시기 초기 지리
중국 삼국시대를 통일한 사마씨의 진이 개국하자마자 혼란으로 치달은 306~312 년 시기에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하고 백제 또한 요서로 진출하였다는 곳은 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입니까?
또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동성왕이 선비족 탁발씨의 북위 병사 수십 만을 깨트렸다는 곳은 대체 어디입니까?
한반도 중부 이남에 있었던 백제가 지금의 황해를 서북쪽으로 건너 선비족과 싸웠다는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중국 북경 부근을 중심으로 하였던 북위 병사가 우리 서해를 건너와 백제를 공격했다는 말입니까?
후조선 숙종 재임기간 중에 태아나 사망하고 천재라 불리웠던 임상덕이 <동사회강>에서 대방이 만주에도 또 있었다는 말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한국사학계는 위와 같은 내용은 아예 언급하지도 않고 답변도 않습니다.
오로지 서울 풍납동 지역이 백제 도읍이라고 강변합니다.
어처구니 없습니다.
마한과 백제는 낙랑군 서쪽과 남쪽에 있었으며 그 낙랑군은 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란하 동쪽 강안에서부터 지금의 대릉하 서쪽 상.중류 지역에 설치되었었습니다. 반도의 한강.금강 유역에서는 개국.흥망하지 않았습니다.
백제 흥망지는 왕검성.평양성 서쪽이며 <산해경>을 주석한 곽박이 말한 바와 같이 요동에 있다는 열수 곧 압록수 북쪽에 있었고 그곳이 열양이라 불린 곳이며 그 북쪽으로 대수.패수를 차례로 건너면 요동군의 동쪽인 안시.요수현에 이르렀습니다. 그 열양 지역은 1894 년 청.일 전쟁 후 왜종애들이 얻었다는 소위 요동반도라 불리는 곳이였습니다.
또한 그 요동은 지금의 요동이 아니라 한 시기부터 청이 멸망하는 1911 년까지 약 2100 여년 동안 지금의 란하 유역에 있었습니다.
신채호가 고대의 요수는 란하라 했던 이유입니다.
한 시기 우북평군 백랑현 부근에 있었던 백랑산 등에서 발원한 백랑수가 북류.동북류하며 요서군 유성현 북쪽을 지나 동,동남방향으로 휘어져 요동군 방현에 이르른 후 대요수로 흘러들어갔다고 <수경주> 대요수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북경에서 동쪽으로 270 여리 떨어진 옥전이 한 시기 무종현이고 이 일대가 우북평군이며 백랑수는 거란족에 세운 거란.요국 시기부터 대릉하로 불렸는데 대체 지금의 대릉하가 어찌 한 시기의 백랑수란 말이며 대요수가 어떻게 지금의 요하일 수가 있겠습니까?
왜종일본아이들이 란하 서쪽에서 기껏 300 여리 흘렀던 대릉하를 동쪽으로 옮겨 약 1500 여리 씩이나 흐른다는 사기질을 어찌 그리 쉽게 믿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문헌비고> 여지고를 전수히 담당한 신경준도 인정한 요서백제를 유야무야 뭉개고 있는 한국사학계는 제발 역사 공부란 것을 제대로 해주기 바랍니다.
<한서>부터 <청사고>까지 중국의 25 개 정사 지리지도 좀 읽어보세요.
청국을 세운 여진족이 편찬한 <만주원류고>에 왜 백제가 언급된다고 봅니까?
강역2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백제 지경을 고증해 보았더니 서북으로는 오늘날의 광녕.금주.의주로부터 남으로 해주.개주에 걸쳐있으며 동쪽으로 조선의 황해.충청의 도에서 끝나는데...
여진아이들이 말하는 광녕.금주.의주가 어느 곳인지 알고는 있습니까?
신채호가 조선과 한의 국경선인 패수를 해성의 헌우락이라 하였는데 그 해성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습니까?
또 고대의 요수는 란하라는 말이 이해는 됩니까?
변조 고지도 - 대청광여도 우상귀
출처 http://blog.daum.net/sabul358/11111213
주) 1. 淸의康熙年間때 사람인 채방병(蔡方炳)이 刻한原圖에 일본 天明5年(1785) 일본 지도 작성의 선구자인 長久保赤水
(나가쿠보 세키스이)(1717-1801)가 교정을 한 중국전도
단재 신채호가 말하는 란하는 성경 심양 서쪽을 흐르는 란하를 말하며 그 란하가 1911 년 멸망한 청국의 정사인 <청사고>지리지에 요하라고 설명된 물길입니다. 위의 광여도에서 보이는 란주 옆 란하가 <한서> 지리지의 요서군 비여현을 흐르는 난수 濡水이며 <수경주>의 난수이며 <청사고>에 기록된 란하인데 동북공정을 강행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현재의 란하와 현재의 요하 즉 왜종일본아이들이 변조.조작한 1934 년의 만주국지도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현대중국지도에서 지웠던 것입니다.
남한과 북조선만 병신이 된 것입니다.
아무튼 청국 채방병이 제도한 지도를 왜종 장구보가 얼마나 어떻게 변조하였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으나 산해관 서쪽의 란주를 흐르는 란하와 산해관 동쪽의 성경 심양 서쪽을 흐르는 요하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면 한국사는 현재와 같이 한반도에 쑤셔넣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앞 글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란주를 흐르는 원래의 란하를 동쪽으로 약 200 리 떨어진 지금의 란하로 옮겨놓고 1911 년까지도 요하라 불리웠던 지금의 란하를 동쪽으로 약 1500 여리 지금의 요하 위치로 옮겨놓아도 모르는 한국사학계를 대체 어찌해야 합니까?
후조선 시기 선학들이 이룩해 놓은 정확한 고증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어찌 잘못된 고증만 빌어다 쓰려고 합니까?
게다가 도둑놈 심보로 일관한 왜종아이들이 변조.조작해 놓은 대조선사관이 옳다며 맹종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당신들의 조상은 누굽니까?
어찌 4300 여년의 역사를 끝판 70 년 동안에 몽땅 뒤집어 엎습니까?
참 대단한 재주를 가졌습니다.
법원에 제대로 된 판사가 있다면 중.고등학교 역사과목 등록금 반환청구 소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