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엔진
http://cafe.daum.net/pk987654/VhiZ/33
구한말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계기로 을사늑약이 이루어지고 한일합방을 통해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명칭이 바뀌고 일본제국 2중대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 구질 구질했던 과거 구한말 역사는 사실 일본 낭인 토오가쯔아끼의 칼날 아래 무너진 것이라 할수있다. 장기를 두다 보면 외통수에 걸릴때가 있는데 최고 굴욕적인 외통으로 느껴지는 대표 조약이 바로 을사늑약이라 할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한도 따지고 보면 일제의 강제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러시아와 미국을 방패삼는 명성황후의 기치에서 시작되고 명성황후 시해사건 계략인 '여우사냥'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고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사건으로 대한제국이라 개명한 국명으로 이또한 구한말 풍전등화 같은 비운의 역사 아래 빛좋은 개살구의 느낌을 지울수 없는 입장이며 당시 조선의 힘으로는 열강들의 야욕에 당당히 맞설 조선의 국력이 아님을 내심 강하게 구상하고 외부적으로 시간을 두고 국력을 모으려 했던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정면으로 맞서는 국정이었으나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아들 명복을 왕으로 앉히고 고종이 성년이 됨에 안동김씨의 외척을 견제할 요량과 자신의 안위를 위한 마음으로 흥선대원군 자신이 간택한 일가붙이 하나없는 혈혈단신 여흥 민씨 며느리 였음과 고종 22세에 고종의 정사를 이끌고 흥선대원군 섭정의 막을 내리게 한 장본인이 되었으니 사람 마음 먹은대로 않되는 것이 인생이란 격언이 실로 감회가 새로워질 뿐인 역사이다.
흥선대원군은 귀신조차도 모를 정도로 그가 왕가의 혈통임에 대한 당시 권문세가인 외척세력 안동김씨의 경계심을 품지 못하도록 상갓집의 개를 자처할 정도로 자기관리가 치밀한 인물이었고 뒤로는 자식들의 왕가 교육에 소홀치 않은 뛰어난 처세가로써 병골이었고 후사가 없던 철종의 승하를 당시 강력한 외척세력인 안동김씨 보다 한발 앞서 알아내고 안동김씨의 세력에 불만이었던 풍양조씨의 조대비 쪽의 환심에 연을 맺고 철종의 승하와 함께조대비로 하여금 옥쇄를 봉인케 하고 흥선대원군의 아들 명복을 왕위에 앉히는 역사를 번갯불에 콩 튀겨 먹듯 일사천리로 정계복귀는 물런 일약 최고의 권력을 수렴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역대 최고의 한명회와 버금가는 처세의 달인으로 등극한다.
흥선대원군에 정치 역량에 의해 국정의 혼란을 잠재우고 권문세족의 권력을 철폐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문예부흥에 힘을 쏟았으나 이미 분열 난립되었던 당파세력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세계열강의 남하정책과 일본제국의 조선에 대한 강제합병 야욕에 맞물려 고전하였고 고종 22세에 아들 고종이 성년으로 성장함에 섭정에 명분이 무색함으로 하야하여 명성황후 시해사건 3년 후에 파란만장했던 생을 다하니 구한말은 그의 운명과 함께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사실은 구한말 정서가 망국의 근원이었는데 세상물정에 귀닫고 눈감은 무사안일 함에 물들어 현실감에 대한 부정으로 체면상 냉수 마시고 트름하고 이쑤시던 선비기질의 허세와 허풍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선비기질은 본래의 선비의 성향과는 판이하게 변질된 성향으로 선비기질은 부정에 매우 강하게 저항하고 비록 상대가 당대 최고의 권력가라 해도 왕에 대한 불충은 대쪽같이 절개를 지켰던 고려 충신 정몽주 옹의 선죽교 이방언에 의한 암살에 의해 변절된 뿌리깊은 은원에서 부터 유래한다.
이 부분은 아직 여유가 있음에 여유가 허락하는데로 추후 차차 짚어 보기로 하고 당면과제로 지금 한국은 구한말 망국의 병폐와 다름없는 상황앞에 놓여 있임에 이 부분을 역설하고 방침을 설정하고 대안을 수립해야 하는 시급함이 카운터 다운 초읽기에 들어섰음을 우리 모두는 인식해야 하고 그 상황에 대한 감시와 방비에 한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않될 상황이다.
지금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위협과 난관은 다음 적통이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다음 적통이 보이지 않음은 난세의 기운이며 국운이 다하고 타국으로 전향함인데 타국이 꼭 망국이 아님에 이 또한 순종함이 하늘의 뜻이라 하면 이를 막고자 함은 역천이라 그 천벌 또한 만만치 않음인데 이를 어찌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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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계기로 을사늑약이 이루어지고 한일합방을 통해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명칭이 바뀌고 일본제국 2중대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 구질 구질했던 과거 구한말 역사는 사실 일본 낭인 토오가쯔아끼의 칼날 아래 무너진 것이라 할수있다. 장기를 두다 보면 외통수에 걸릴때가 있는데 최고 굴욕적인 외통으로 느껴지는 대표 조약이 바로 을사늑약이라 할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한도 따지고 보면 일제의 강제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러시아와 미국을 방패삼는 명성황후의 기치에서 시작되고 명성황후 시해사건 계략인 '여우사냥'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고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사건으로 대한제국이라 개명한 국명으로 이또한 구한말 풍전등화 같은 비운의 역사 아래 빛좋은 개살구의 느낌을 지울수 없는 입장이며 당시 조선의 힘으로는 열강들의 야욕에 당당히 맞설 조선의 국력이 아님을 내심 강하게 구상하고 외부적으로 시간을 두고 국력을 모으려 했던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정면으로 맞서는 국정이었으나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아들 명복을 왕으로 앉히고 고종이 성년이 됨에 안동김씨의 외척을 견제할 요량과 자신의 안위를 위한 마음으로 흥선대원군 자신이 간택한 일가붙이 하나없는 혈혈단신 여흥 민씨 며느리 였음과 고종 22세에 고종의 정사를 이끌고 흥선대원군 섭정의 막을 내리게 한 장본인이 되었으니 사람 마음 먹은대로 않되는 것이 인생이란 격언이 실로 감회가 새로워질 뿐인 역사이다.
흥선대원군은 귀신조차도 모를 정도로 그가 왕가의 혈통임에 대한 당시 권문세가인 외척세력 안동김씨의 경계심을 품지 못하도록 상갓집의 개를 자처할 정도로 자기관리가 치밀한 인물이었고 뒤로는 자식들의 왕가 교육에 소홀치 않은 뛰어난 처세가로써 병골이었고 후사가 없던 철종의 승하를 당시 강력한 외척세력인 안동김씨 보다 한발 앞서 알아내고 안동김씨의 세력에 불만이었던 풍양조씨의 조대비 쪽의 환심에 연을 맺고 철종의 승하와 함께조대비로 하여금 옥쇄를 봉인케 하고 흥선대원군의 아들 명복을 왕위에 앉히는 역사를 번갯불에 콩 튀겨 먹듯 일사천리로 정계복귀는 물런 일약 최고의 권력을 수렴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역대 최고의 한명회와 버금가는 처세의 달인으로 등극한다.
흥선대원군에 정치 역량에 의해 국정의 혼란을 잠재우고 권문세족의 권력을 철폐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문예부흥에 힘을 쏟았으나 이미 분열 난립되었던 당파세력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세계열강의 남하정책과 일본제국의 조선에 대한 강제합병 야욕에 맞물려 고전하였고 고종 22세에 아들 고종이 성년으로 성장함에 섭정에 명분이 무색함으로 하야하여 명성황후 시해사건 3년 후에 파란만장했던 생을 다하니 구한말은 그의 운명과 함께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사실은 구한말 정서가 망국의 근원이었는데 세상물정에 귀닫고 눈감은 무사안일 함에 물들어 현실감에 대한 부정으로 체면상 냉수 마시고 트름하고 이쑤시던 선비기질의 허세와 허풍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선비기질은 본래의 선비의 성향과는 판이하게 변질된 성향으로 선비기질은 부정에 매우 강하게 저항하고 비록 상대가 당대 최고의 권력가라 해도 왕에 대한 불충은 대쪽같이 절개를 지켰던 고려 충신 정몽주 옹의 선죽교 이방언에 의한 암살에 의해 변절된 뿌리깊은 은원에서 부터 유래한다.
이 부분은 아직 여유가 있음에 여유가 허락하는데로 추후 차차 짚어 보기로 하고 당면과제로 지금 한국은 구한말 망국의 병폐와 다름없는 상황앞에 놓여 있임에 이 부분을 역설하고 방침을 설정하고 대안을 수립해야 하는 시급함이 카운터 다운 초읽기에 들어섰음을 우리 모두는 인식해야 하고 그 상황에 대한 감시와 방비에 한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않될 상황이다.
지금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위협과 난관은 다음 적통이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다음 적통이 보이지 않음은 난세의 기운이며 국운이 다하고 타국으로 전향함인데 타국이 꼭 망국이 아님에 이 또한 순종함이 하늘의 뜻이라 하면 이를 막고자 함은 역천이라 그 천벌 또한 만만치 않음인데 이를 어찌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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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역학자 작성시간 16.02.24 아나사마 그럴까요 ? 고려말의 정몽주 왜 아직도 존경 하는지 조선시대에 사육신과 생육신 왜 아직도 존경 하는데
수양대군의 측근인 칠삭동이 왜 한명회 아직도 칠삭동이로 부리는데 한명회는 당시에 선도 고수자
토정 이지함 선생 왜 아직도 존경 하는,데 조선중기에 서화담 왜 존경 하는데
귀하논리에 의하면 조선시대 이순신 왜 아직도 존경 하는데
우리는 우주에 비해서 잛은 생이나
이것 저것 보다 올바른 가치관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럼 대기업이 골목의 상권 이밍용 업 잠식 해도 그것에 대해서
하늘의 뜻 이군 이런 해괴한 종자가 있나 -
답댓글 작성자아나사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2.25 역학자 아니 독해력에도 문제가 있나 보네 ㅉㅉ... 당신이 열거하신 분들은 타국 사람보다 한국사람에게 그리고 한국사람이 존경한다고 하늘도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은 괘변이오? 그건 반도사관이요 아니면 우물사관이요 뭐요? 포은에 대한 고찰은 우리가 아주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데 이는 짐승과 인긴계의 경계선을 세속에 보인 사례이기 때문이오. 함부로 거론해선 경계에 갇히게 되고 소나무의 옹이처럼 사고가 뭉처버리니 조심해야 합니다. 님께선 아직 대력사를 논하기에는 매우 사관이 편협히신듯 합니다. 공산 사회주의가 이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인민을 위한다 해놓고 지들이 다 쳐먹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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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역학자 작성시간 16.02.25 아나사마 그래 다른것은 관두고 대기업이 골목길 상권인 이미용업 빵집 잠식 해도 그것이 하늘의
뜻인가요 아니면 가진자의 돈벌이 전략 인가요
그런것 이런것 전부 순전히 우리들은 모른체 할까요 -
답댓글 작성자아나사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2.25 역학자 상권까지 하늘이 관여한다고 생각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골목상권이 무너지면 대기업 아니라 국가경제의 지표도 무너진다는건 경제학의 기본원리입니다. 대기업들도 수익면이나 자금 유동성에 지장이 많음에 철회하고 있는 중인데 일부 몰염치들이 계약을 빌미로 영업하고 있으나 대부분 철회를 결정한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제도의 초입에서는 시행착오가 많은데 골목상권이 피해됨은 매우 애석한 일이라 생각하며 결국 제살 베어먹기를 알게 되는 것이 하늘이라 한다면 그부분은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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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역학자 작성시간 16.02.25 아나사마 즉 올바른 가치관 다른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대해서 구구 하게 억지 해석이나
다른 이론 붙이지 말것
그래서 그대는 멀쩡한 손가락 째서 충성맹세한 역적놈을 대통령 이라고
부른 것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인가요
사람으로로 또는 사회 구성원로서
또는 같은 민족으로 해야 될일이 안 해야 될일이 분명히 있는거지요
이것을 벗어나면 올바른ㅇ 인간 이다고 볼수가 없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