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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안드로메다 중생들을 위한 절정고수의 역사강의3

작성자신석재|작성시간16.02.28|조회수772 목록 댓글 12


제글을 읽어주시는 있는 그대로 읽어주시는 선한 독자분들께,

조롱하며 격한 말로 설명하여 죄송합니다.

또한 아래와 같이 또 한번 놀래키게 되서 죄송하게 생각하나 어쩔 수 없이 한 번은 뱉어야 하는 말이니 양해 바랍니다.



앞글의 댓글을 보니 가관이더군. 짧게 소회를 밝히니 잘 쳐듣도록.

점잖은 말로 대하기 어려운 대구리 비고 심뽀가 꼬인 중생들의 비난 댓글엔 앞으로 일체 대응하지 않을 거임.

나이 더 쳐먹었다고 자신을 드러내는 한심한 새퀴덜을 내가 제일 쳐받을 놈으로 치니 그리 쳐알기 바래. 

더불어 왜종을 대변하는 듯한 언사를 씹어돌리는 기색이 보이면 여지없이 욕지랄 할테니 각오하고 하든가 말든가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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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한다는 생각으로 앞글에 올렸던 참고도 한 번 더 보고 시작하자.


앞글을 보니 조금 부족해 보여 내 블로그 글은 수정해놨는데 여기 글은 스크랩이라 수정이 안되더군. 아래 참고도의 주석도 일부 고쳤으니 찬찬히 읽어주기 바래.


참고도 -  북경 이동 지역의 유주 5 군 주요 물길과 장성.산해관.바다


주) 현대지도엔 고북구.평곡.옥전은 저 위치 그대로 표시되어 있으며 현대지도에 표시된 노룡.산해관(임유관)은 조작된 위치로 원래

     위치는 쪽으로 지금의 란하 하류를 건너서 위 참고도와 같이 지금의 란하 서쪽 강안에 표시되어야 하는 것임.



자, 예정대로 이번엔 임유관.산해관 동쪽 바다에 대해 설명하겠어.


우선 명 시기 제도된 약도 수준의 요양총도를 보여주지. 1562 년 명나라 사람 정약증이 편찬한 <주해도편>에 실린 명 시기 요동도지휘사사 소속의 정요중위 치소인 요양을 지도 제목으로 하여 산해관부터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소위 요동반도라는 복주.금주(여순구) 지역과 파사 곧 금.원시기 설치된 파사부와 인접한 압록강이 묘사된 지도이니 특별히 신경써서 봐주길 바래.


고지도- 요양총도



어때?

지금의 산해관, 지금의 요동만인 발해, 지금의 대릉하, 지금의 요하, 지금의 요동반도, 지금의 압록강(파사)를 그럴싸하게 잘도 그린 것 같지? 현대지도에 표시된 발해 북안에 있는 진황도 동북쪽 지형과 똑같다구? 


꿈깨셔. 저 약도를 그린 화사의 지리인식 범위는 지금의 발해 동북쪽에 표시되어 있는 지금의 산해관 지역마저도 백지상태로 전혀 몰라. 왜일까?


산해관 동쪽에 표시된 바다는 강폭이 바다와 같이 넓어진 지금의 란하 최하류이기 때문이야. 여순이 표시된 반도 모습의 땅은 지금의 요동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란하 최하류 중에 남쪽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삼각주 형태의 땅이고 그 동쪽에 있는 귀퉁이 바다와 그 바다와 이어진 파사 동쪽의 물길 곧 압록강의 최하류까지 모두 지금의 란하 최하류라는 소리야. 따라서 저 요양총도를 그린 화사는 지금의 란하 최하류 곧 산해관 동쪽 바다까지가 지리 인식 범위의 최대치라는 것이야.


서기전 109 년 漢나라 무제 유철이란 놈이 죄인들을 모아 5 만여 병사를 보내 조선을 침입할 때 발해에 뜬 7000  명의 수군이 북쪽으로 향하여 건넌 바다가 지금의 천진 동쪽 먼 바다이며 조선 땅에 들어오려면 다시 동쪽으로 건너야 하는 바다가 바로 지금의 란하 최하류 바다이고 저 요양총도에 그려진 산해관 동쪽 바다라는 말이다.


또한 수나라 양광도, 당 태종.고종 때도 저 산해관 동쪽 바다인 지금의 란하 최하류를 건너야만 고구려 강역 남쪽에 치우친 평양성을 직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쨋든 이번 글은 그 바다가 지금의 란하 최하류이며, 금의 란하는 현토.요동 2 개 군을 경유하는 2100 리 길이의 염난수와 요동군을 경유하는 1250 리 길이의 대요수 그리고 대요수의 남쪽 지류인 백랑수, 대요수의 동쪽 지류인 소요수.대량수 및 낙랑군을 흐르는 820 리 길이의 열수와 요동군과 낙랑군 경계를 흐르는 패수浿水 등이 몽땅 흘러들어 합쳐지는 아주 큰 수계水界이기 때문에 그 최하류는 아주 큰 만灣일 수 밖에 없고 고대인들은 바다로 불렀다는 것을 논증하는 거야.


그러면 그 근거는 무얼까?

<한서/지리지>의 요서군 주석에는 이렇게 되어 있어.

遼西郡 秦置 有小水四十八 幷行三千四十六里...

 서군 진나라가 설치했고 작은 개천이 48 개가 있는데 모두 합치면 3046 리에 이른다. ...


요서군 땅 안에는 48 개나 되는 작은 개천이 흐르며 그 길이를 모두 합치면 3000 여리에 이른다는 거야. 즉 요서군 동쪽은 장성의 동쪽 끝이며 바다에 닿았고 또한 요서군의 남쪽은 어양.우북평군에서 흘러오는 난수가 갈석 남쪽을 지나 흘러 들어가는 곳도 바다야. 동쪽과 남쪽이 바다인데 좁은 군땅 안에 또 개천이 어마무시하게 많다는 거지.

그러면 요서군 땅은 뭐다?

조금 과장하면 거의 늪이란 소리야. 


그렇다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요서군 지역을 관통해 바다에 이를 때까지는 장성 수축공사가 무척 어려웠을 거야. 그러나 어찌되었든 동쪽에 있는 바다까지는 도달해야 동북쪽의 이민족으로부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바다 직전까지 지점에서 공사를 마무리 지었는데, 그러면 그 산해관 앞에 있는 바다는 어떻게 할까?


못하는 거지. 

장성 공사를 어떻게 바다에 혀?

그리고 바다 건너 땅에 지키고 쓰다듬을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런데 요양총도에는 산해관 앞 바다가 만灣 형태를 이루어 그 꼭지점에 대릉하 하류와 삼차관.삼차하 곧 요하.혼하.태자하가 합쳐진 물길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어.

그러면 그곳이 뭐다?

마자, 요동군이야.


<후한서/군국지> 기록과 같이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요서군까지는 3300 리, 요동군까지는 3600 리라는 그 요동군이기 때문에 산해관.임유관에서 동북쪽으로 불과 300 여리 떨어진 곳에 의무려산이 있는 무려현도 있어야 하고, 대릉하 곧 우북평군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요서군 북쪽 지역인 유성현 지역을 지난 후 동남쪽으로 휘어 요동군 방현에서 대요수로 합쳐진다는 백랑수의 하류도 보여야 하고 1250 리 길이라는 대요수가 망평.양평.요수현을 지나 바다로 들어가기 직전 경유하는 안시현 곧 해주위도 보여야 하는데, 모두 보이잖아?

그래서 요양총도는 대략 정확하다고 평할 수 있는 것이야.


자 이번에는 청 시기 홍양길이 편찬한 <건륭부청주현도지>에 실린 심양도?를 보여줄께.


고지도 - 건륭부청주현도지.심양도?



아래는 왼쪽 부분만




워뗘?

산해관 동쪽 바다가 지금의 발해 요동만처럼 보여?

앞글에서 설명한 650 리 경수가 발원.경유하는 우북평군 서무.무종현 생각나?

그 우북평군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흐르는 백랑수가 <요사/지리지> 이후엔 대릉하로 개칭돼, 알지?

그 대릉하 최하류 동쪽에 광녕 곧 무려현, 그 아래  험독, 그 동쪽에 방房, 그 남쪽에 안시安市 보여?

바로 그곳이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 리 떨어져 있고 산해관에서 300 여리 떨어진 요동군 지역이야.

그러면 이도정.발착수도 보이겠네? 그곳이 뭐라?

요택이야.


그러면 그 동북쪽으로부터 흘러오는 물길 곧 거류하라 표시된 물길, 더 상류에 요해遼海도, 삼만위도 보이지? 

또 동쪽에 철령도 있지?

바로 그곳이 <한서/지리지> 현토군 서개마현에 주석된 서북쪽으로 흐르는 마자수와 마자수를 받아들인 2100 리 길이의 염난수가 흐른다는 곳이고 <후한서/군국지> 현토군에 주석된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4000 리 떨어졌다는 바로 그 지역이야. 

그 남쪽에 보이는 심양 곁을 흐르는 혼하는 한 시기 소요수로 <한서/지리지> 현토군 고구려현에 주석된 요산이 있는 곳이며 그곳에서 발원하는 소요수이고 <요사/지리지>부터 혼하로 개칭되지.




머리 아파?

진도 너무 뽑았나?

결론은 내고 다음으로 가야지.


결론:

산해관 동쪽 바다는 발해 요동만이 아니고 지금의 란하 최하류를 말하는 것인데 고대인들은 강폭이 너무 넓고 그곳의 환경이 바람이 세어 심한 파랑이 일어 후조선 사신들의 배가 풍랑을 만나 파손되어 정사 이하 30 여명이 죽을 정도로 바다와 같은 강이기 때문에 바다라 하였고 지도에도 바다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 바다 곧 만灣의 꼭지점으로는 현토.요동군으로 흘러들어오는 2100 리 길이의 염난수, 1250 리 길이의 대요수 및 대요수의 지류인 백랑수.소요수.대량수 곧 요 시기 이후의 대릉하.혼하.태자하가 몽땅 흘러들어오는데 그 꼭지점으로부터 산해관까지의 거리는 최대 300 리이다.

왜?

<한서/지리지>의 요서.요동군의 주석인 낙양으로부터 동북쪽으로 3300 리, 3600 리 떨어져 있다는 기록때문이다. 


핵심:

따라서 한나라 고조 유방이 설치한 요동군은 지금의 란하를 동쪽으로 넘지 못하고 란하 서쪽 강안에서 북쪽으로 오르면서 요서군 다음에 설치된 것이며 요서군 임유관.산해관 동쪽에 묘사된 바다는 현토.요동군을 경유하는 2100 리 길이의 염난수 최하류로 보아야 하며 1250 리 길이의 대요수는 염난수의 서남쪽에 있는 지류로 보아야 한다.



다음은 낙랑군에 대해 설명할 거임.


예습용 참고도- 단군 부여와 낙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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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우리國史, 단기 43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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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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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金子 | 작성시간 16.02.29 삼분지계 조조의 시 '관창해' 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낙양성 부근에서 갈석산을 찾을 게 아니라...
    창해가 보이는 갈석산을 찾아야합니다.

    관창해 = '창해를 바라보며' 이니..

    당연히 창해를 먼저 찾아야하고... 다음에 창해가 보이는 갈석산을 찾으면 됩니다.

    대조빠들은... 양자강을 창해라고 하죠?
    그럼, 그렇게 믿으면 됩니다.

    양자강가 어딘가에... 낙양에서 걸어가도 되는 거리에 또다른 갈석산이 있다는 얘기겠지요.

    그건 당연히 대륙조선설이 허구라는 증거로 작용할거구요.

  • 답댓글 작성자삼분지계 | 작성시간 16.02.29 金子 황해도 갈석산에서 신석재랑 캠프퐈야 하다 산불내는 소리하고 있넹 증말!

    낙양에서 걸어갈 거리에 있는 갈석에서 바다가 보이고, 섬이보이고, 큰파도, 섬안의 빽빽한 나무가 보이겠나?
    창해가 바다가 아니라는 것은 확연하지? 때문에 공산당이나 신석재의 비정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고!

    국어모르나? 낙양 주변에 갈석, 창해 둘다 있다는 애기자나!! 것도 오붓이^^ 뭘찾지 말라는거야? '시'가 낙양부근에서 갈석과 창해를 찾으라고 하는데? ㅋㅋ 뭔소린지!

    양자강이 창해가 아닌 이유를 찾아서 글을쓰고,
    또다른 낙양이 있었는지 기록을 찾아보고
    창해와 갈석을 찾아보고 댓글을 쓰란말야!!

  • 답댓글 작성자삼분지계 | 작성시간 16.02.29 삼분지계 때문에 갈석, 창해로 추정할 수 있는 두군데 알려준다!

    갈석 : 진시황, 한무제, 조조, 수양제, 당태종 등 중국의 유명한 9명의 황제가 올랐다는 갈석산은 원래 산서성 남단 황하변에 있는 지금의 중조산

    창해
    1. 낙양북쪽 하남성에서 산동으로 흐르는 황하(중조산이 있는)
    2. 하남과 산동사이 대야택이라는 내륙호수, 동해 혹은 창해로 불림.

    <갈석보출하문행> 제목의 뜻이나 제대로 알고 글남기삼^^
  • 작성자금강야차 | 작성시간 16.02.28 잘모르고 계신것같아서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님이 아는만큼 부족하지만 더 알고있고.. 님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부분 몇년전에 더 큰 곳에서 느끼고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입은무거울수록 좋고 님이 아는것보다 더 상상할수없을 정도로 알고 더 밑바닥에서 처절하게 소리내어 싸우고 있는 사람도 많다는것을 알아주세요. 우주의 한 먼지조각밖에 안되는 존재입니다.
    유식하고 멋진말 글로 포장해도 결론은 간단하며 모두가 알수있는 말과 글이 정답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신석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3.01
    그래요?
    어떻게 처절하게 싸우고 있나요?
    제대로 된 지식은 갖추고 싸우나요?

    또 뭐가 `결론은 간단하고`
    모두가 알 수 있는 말과 글이 정답이란 개소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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