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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와 산스크리트어 그리고 팔쾌와 역

작성자돌둘| 작성시간12.07.15| 조회수307|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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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호두까기 작성시간12.07.15 신라 하니까 예전에 본 드라마 선덕여왕이 생각납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같은 모화사상의 책 외에 수많은 역사서들이 이조시대에 금서가 되고 불에 태워버렸다니까 실제 당시의 신라가 저토록 사대주의적이었나는 한번 의심해 봐야합니다. 물론 당시의 신라상황이 당나라와 화친을 맺은건 확실하지만. 적어도 전통종교가 가장 늦게까지 큰 힘을 발휘하고 불교가 늦게 정착한게 신라이기 때문이지요.
    불교가-승려들의 권력유착- 가장 큰힘을 발휘한 시기는 고려시대이고.... 김부식도 고려조 사람이고.
    이조시대 이전의 모화사상에 대해서는 사라진 역사서들 만큼이나 그 규모나 영향력이 불분명합니다.
    물론 사대주의뿌리는
  • 작성자 호두까기 작성시간12.07.15 신라에서 시작된걸로 봐도 좋겠지만, 고구려의 영양왕[연개소문이 시해]과 온건파 귀족들도 사대주의라 할수 있겠고. 결정적으로 연남생이 당나라에 붙음으로서 고구려는 끝을 고하게 됩니다. 백제의 경우도 백제판 연남생이라 할 예식진의 배반으로 멸망하고 예식진은 당의 높은 관직에 올랐다는데 http://cafe.daum.net/mookto/GUJC/3361 이쯤되면 백제도 말기에 당에 사대하는 집단이 있었으리라 생각할수 있습니다. 즉, 신라만 사대주의자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이렇게 놓고 보면 어쩌면 김부식이 서술한 만큼 신라는 당에 굴종적 태도를 취한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모화사상의 완성은 불교가 아닌 유교니까요.
  • 작성자 돌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7.16 호두까기님 안녕하세요.
    이 찗은 댓글로 다 말할수는 없지만 서구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화된 아시아국가중 자기말과 자기글과 자기문화와 자기역사를 완전히 잃어버린 나라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 국가의 국민들은 가난의 악순환 속에서 어떤 희망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고 있읍니다.
    제가 후대신라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과 글과 문화와 정신과 역사가 비틀려 버리면 그 다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복구되기가 힘이듭니다.
    정권을 누가 잡았든 그런것은 증요한게 아니라봅니다.
    당시 당나라 유학생들이 지은 시를 보면 오늘은 징안에서 저녁을 먹고 내일은 서라벌에서 금의환양의 축배를 들리라와 같은
  • 작성자 돌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7.16 흔적이 발견됩니다.
    그만큼 당나라 유학은 출세의 보증수표였다는 것으로 그사람의 인격이나 학문적인 소양은 문제가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라이트 세력이 장악했던 후대신라의 분위기를 우리현대사로 예를들면 높은 인격과 학문적인 소양을 쌓으며 수십년을 강단에 섰던 민족진영의 노교수와 미국가서 거지같은 따라지 대학 돈주고 겨우겨우 따온 힉위와 기독교 신자라는 간판을 가진 젊은놈중 우선순위는 젊은넘이었다는 거지요.
    지금도 사회적인 븐위기는 비슷하다 보는데 조금만 과거로 돌아가봐도 확연하게 노골적으로 들어난 것입니다.
    <김 덕수 사물놀이 패의 이야기를 떠 올려보시면 아시리라 보는데 국내에서 렇게 천대를 받다가
  • 작성자 돌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7.16 유럽에서 따봉이라는 극찬을 하며 떠벌리니까 그제서야 국내에서 인정을 받는 웃지못할 일이 일어난 시간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라 봅니다.
    요즘처럼 대통령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절대 왕권에 의해 약 오백년 가까이 세습형태로 당라이트 세력이 장기적인 집권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반세기 정도의 식민 지배를 받아도 과거의 조상들의 정신이 완전히 무너지다싶이 한 아시아국가들의 후대 비참한 상황에 비교했을 때 오백년의 시간은 너무 긴 시간이 아닐까요?
    저는 후대신라를 전대신라와는 완전히 다른 반 민족 성향의 세력으로 단정합니다.
    당의 국력에 대항할 세력이 거의 없던 국제상황
  • 작성자 돌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7.16 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모든 과거를 부정하는식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이나 첨수도에 나오는 돈자와 노자의 의미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읍니까?
    우리말 그대로 돈자는 재물과 관련된 돈으로 노자는 농경사회에서 가장 큰 재물은 쌀이고 쌀이 나오는 곳이 논이니 논을 뜻하는 것이 노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 않겠읍니까?
    윗글에서도 수저에서 저의 의미를 무언가를 헤아린다는 의미로 말했는데 저와 관련된 말로 저울 제다 재대로 해라 등등이 있다고 봅니다.
    후대신라인들이 당나라에 심취하며 비틀린 언어와 문자 체계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말과 문자의 혼돈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그 흔적중의
  • 작성자 돌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7.16 여러 단서들중 중요한 기록이 범어그대로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고 봅니다
    불교경전이다보니 거의 변형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 그대로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보기에 우리말과 범어의 유사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시말해 천수경의 진언의 말 하나하나가 명사처럼 뜻말이 됨으로 우리말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범어로 전해진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 봅니다.
  • 작성자 돌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7.16 끝으로 고려시대나 이씨조선에 전해진 사서들은 대진국 즉 발해에서 전해진 것으로 봐야합니다
    후대신라가 저질러놓은 민족정기의 비틀림을 대진국의 유민들이 고려에 귀의하며 상당히 바로 잡혔다고 보나 그것에 결정타를 날린것이 이씨조선이고 일제이고 실증사관이라고 봅니다.
    늘 안녕하시기를
  • 답댓글 작성자 호두까기 작성시간12.07.17 답글 잘 읽어습니다. 대진국이 당시에 당을 견제할만한 세력이었다 봅니다,저는. 그리고 신라와도 많은 교역을 했겠지만 이조시대 모화사상에 근거한 분서생유로 없어진것이라 보고. 물론 돌둘님이 생각하시는것 처럼 사대주의에 의한 폐혜도 많았으리라 봅니다. 그럼에도 저는 신라 후기의 장보고 청해진이 산동성에 있었다는
    성훈님의 칼럼처럼 당시의 국가관이 후에 이조만큼 자주성이나 진취성을 잃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
    어쩌면 대진국과 당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햇을수도 있구요. 후대신라의 기록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등. 모화사상과 숭불사상에 쓰인 책들에서 주로 나오다보니 그로인한 왜곡도 가늠해야만 한다고 봅니다.
  • 작성자 호두까기 작성시간12.07.17 수리수리나 수저,젓가락에 관한 해석은 잘 보았습니다. 앞으로의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작성자 돌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7.17 얘 호두까기님이 잘 보신 것 같읍니다.
    동아시아에서 당에 대항할 유일한 세력이 대진국이었다고 저도 봅니다.
    문제는 당과 대진국 사이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사이에 놓여진 동해와 비교할 정도로 큰 장에물이 있었는데 만주일대인 요동이었다고 봅니다.
    수와 당이 고전을 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닙니까?
    서로 눈치만 봤을 뿐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당이든 대진국이든 국가의 존망을 걸고 위험한 도박을 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대진국은 건국 초기부터 고구려의 계승을 천명할 정도로 우리고대 역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실제적으로도 아시아 각지에 흩어진 고대 사서들을 찾는데 국가적인 심혈을
  • 작성자 돌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7.17 기우려 역사복원에 상당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신라에 대한 견해도 맞다고 봅니다.
    당시는 너무 많은 우리전통이 널리 살아있다보니 노골적으로 이를 부정했다가는 역효과가 날건 뻔한거고 할 수 없이 우리전통에 기대는 척 하며 서서히 진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문화가 홍익정신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니 껍질만이라도 그에 걸맞을 정도의 흉내라도 내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 봅니다.
    이 말에도 어페가 있다 보지만 마땅한 말이 없어 그냥 쓰겠읍니다만 삼한통합이후 화랑의 철폐와 함께 진행된 것이 우리정신의 뿌리인 신교를 말살하려한 것이라 봅니다.
    이흥년간 이루어진
  • 작성자 돌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7.17 국가적 사업중 가장 큰 역사가 사찰의 건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백성들은 끼니 걱정을 할 정도였는데 막대한 국가 제정을 거대사찰을 짓는데 쏟아 붓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양태가 아닙니까?
    그 목적은 결국 신교의 정신을 말살하려한데 있다고 봅니다.
    삼국동합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화랑을 슬며시 없앤 것이나 무당에 대한 박해들이 그 흔적이라 봅나다.
  • 답댓글 작성자 호두까기 작성시간12.07.18 확실히 제일 먼저 원화를 없애고 그 후신인 화랑을 전후에 없애버린것은 토사구팽 이지요. 김유신과 천관녀의 야사도 있을정도로 화랑조차 출세를 위해선 전통종교계를 멀리 해야 했으니. 아마 이건 김유신의 가야출신이라는 특수성 때문이었겠지만요. 김춘추 이후의 불교 융성과 신교의 몰락, 사대주의의 영향력은 연구가 더 되어야겠지만 천관녀 야사가 신교몰락의 신호탄이라 보고 있습니다.
  • 작성자 돌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7.17 글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 작성자 돌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7.18 호두까기님과 대화를 하다보면 역사를 보는 관점이 상당히 균형이 잡혀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역사책으로만 역사를 보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입니다.
    어떤 분이 역사를 제대로 보려면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고 글을 올리신것 같은데 저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역사란 살아있던 사람들의 기록인데 고리타분하게 글자몇자만 가지고 따진다는 것은 이미 죽은 학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과 연계된 역사해석이 현실에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예를 들면 이 순신장군이 훌륭했다는 이야기 말고 왜 훌륭하게 되었는지 자라온 환경이 어떠했는지 어떠힌 교육을 받았는지 어떻게 해야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 작성자 돌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7.18 자라온 배경들을 가르쳐야 제1, 제2의 이순신장군이 나올 것 아닙니까?
    다른 모든 분야의 여러 훌륭한 위인들의 공적만 가르치지 말고 그런것 보다는 그런 훌륭한 공적을 이루기까지 자라온 배경을 더 중점적으로 가르쳐야 후대또한 그와 같은 인물로 성장할 수 있는것 아닙니까?
    지금의 역사교육을 보면 알맹이는 없고 그저 훌륭했다는 성과위주의 지식들만 달달 외우게 한다고 보는데 이래서야 진정한 역사교육이라 볼 수 있나요.
    속에 담았던 소리를 조금해 봤는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늘 안녕하시기를
  • 답댓글 작성자 호두까기 작성시간12.07.18 저도 좀 고집스런 글을 올렸는데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름철 건강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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