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다. 화려한 꽃일수록 처량하게 흔적을 남기며 4월이 간다. 그래서 4월은 잔인한
달인가?
T.S 엘리엇의 <황무지>로 인해 4월이면 누구나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곳곳마다 벚꽃의 하려한 군무에 탄성을 질러대는 4월을 어찌 가장 잔인한 달
(Aprilis tecnules manth)이라 했을까.
심지어 “겨울이 따뜻했다”는 역설로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흔들어댈까
증세의 암흑기를 지나 신의 구속에서 벗어난 인간은 계몽주의의 기치 아래 신 중심 사회에서
인간 중심 사회로 바뀌었다. 그런 변화 속에서 과학이 발달하고 삶이 윤택해지자 세상이
지상천국을 이루리라는 꿈을 지니고 살았다.
그러나 세상을 살벌하게 바꿔버린 과학의 부정적 역할에 실망하기에 이르렀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과학의 역기능을 깨달은 것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참혹해지는
전쟁의 결과는 도덕과 종교적 타락으로 이어져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는 냉혹한 현실은
문학과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살아있는 것이 오히려 죽는 것만 못한 세상,
그래서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는 절망감이 예술적 정감으로 살아났다
과학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리는 오늘날에도 엘리엇의 황무지는 아직 유효하다.
곳곳에 섬광으로 번지는 전쟁의 무기, 나와 같은 종교인이 아니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종교적 신념은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황무지>가 탄생할 때보다
더한 지옥이 곳곳에 펼쳐지고 있다.
T,S 엘리엇에게 노벨문학상을 다시 주어도 이상하지 않을 황무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감자로 가냘픈 생명을
유지해주었으니.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황무지>의 제1장 ‘죽은 자의 매장’ 앞부분이다. 각 행을 breeding/ mixing/stirring/ covering/
feeding과 같이 운율을 현재 진행형 – ing로 맺어 “겨울이 오히려 따뜻했다”
는 어려운 현실이 계속되리라고 암시했다. 전쟁과 같은 참화나 도덕적 타락이 갈수록 심해지리라는
예언이다. 잔인한 달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문에 게시한 시빌라의 신화를
이해해야 한다. 사랑을 구애한 아폴론에게 시빌라는 손에 쥔 모래알만큼 오래 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젊음도 같이 달라는 말을 깜박 있었다. 그래서 몸만 늙어 호리병에 들어갈 만큼 작아졌다.
병 속의 시빌라에게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나는 죽고 싶다”고 답했다.
<황무지>의 주체는 살아 있는 것이 죽음보다 못하다는 사회적 상황을 빗대어 인간이 무한한 욕망을
경계한 이야기다.
잔인한 달의 의미에는 부활절에 생각하는 종교적 타락, 링컨의 암살과 같은 사회적 범죄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직접적인 원인은 스승 버트런드 러셀과 아내의 불륜으로
인한 정신적 갈등이 내재해 있다.
문명 비판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고통이 바탕을 이룬 작품이다. 결국 엘리엇의 아내는 정신병원에서
죽고 엘리엇은 68 보던 1957년에 30세의 발레리 플레처와 재혼했다. 노년의 찾은 안 정된 생활도
8년이 지난 1965년에 생을 마감하며 끝났다. 렌셀은 모두 네 번 결혼했는데 1952년 80세에 52세의
이디스 핀치와의 재혼이 마지막이다. 1970년 97세까지 18년의 행복을 누리다가 이승을 떠났다.
불행한 가족사가 명작 탄생의 동기가 된 것이다.
4월은 가장 아름다운 달/ 라일락에서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고/ 봄비로 화려한 꽃들이 피어난다./
그해 겨울이 따뜻했어도/ 잘못된 욕망과 추억은 망각의 눈으로 덮어버린다./
차가운 추억을 씻어낸 4 월보다 더 고울 순 없으리니
우리 모두의 가슴에 "가장 아름다운 4월"로 인식되는 포근한 사회, 생명을 초개와 같이 여기는 이념과
종교적 신념이 사라지고 사자 굴에서 어린아이가 놀 수 있는 평화로운 사회가 이루어져 따뜻한 정감을
담아내는 시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계간 <가온문학> 2026년 여름호 <권두언> 강기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