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오래된 노트>
김신정 지음
사계절
‘봄’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국민시인 윤동주가 19세였던 1936년 10월 습작 노트인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에 실은 59편 중 한 수다.
이 습작 노트는 만주 북간도의 이주민 후예인 윤동주가 간도 용정의 은진중학 2학년 때인
1934년부터 평양 숭실중학을 거쳐 다시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중학에 재학했던 1937년 3월까지
쓴 작품들을 싣고 있다. 윤동주는 쓰고 고치고 다시 다듬은 작품들 가운데 선택한 17편의 시를
두 번째 습작 노트 ‘창’에 옮겨 적은 뒤 다시 이런 작업을 반복했다. 중학 시절 쓰기 시작한
두 권의 비밀노트는 그를 불멸의 시인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1931년 3월 15일, 명동소학교 졸업사진. 두 번째 줄 맨 오른쪽이 윤동주.
올해로 윤동주 사후 81년. 그는 여전히 한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태어난 중국 동북지역 그리고 그가 유학했던 일본의 교토와 도쿄 그리고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에서도 그를 기리고 그의 시를 애송하는 독자들이 많다.
‘21세기의 독자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그를 기억하고 있나’라는 질문은 윤동주 연구자이면서
열렬한 팬이기도 한 김신정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에게도 그 자신이 풀어야 할 숙제였다.
김 교수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윤동주의 노트와 자필 시고에 남은 모든 기록을
샅샅이 되새기고, 윤동주가 발을 디뎠던 모든 지역을 방문해 그곳 사람들의 증언을
청취한 후 이를 모아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를 펴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앨범에 실린 윤동주와 동기들의 단체 사진. 다들 교련복 차림이다.
가운데, 오른쪽에서 세번째에 윤동주가 비스듬히 앉아 있다.[사진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만주, 평양을 오가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42년 일본으로 유학했으며 이듬해 7월 교토에서
체포돼 1944년 3월 31일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복역 중
1945년 2월 16일 옥중에서 사망했다.
1942년 8월 4일 , 일본 유학 첫해 여름방학에 귀향한 윤동주(뒷줄 오른쪽)가 고향 용정에서
송몽규(앞줄 가운데) 등 또래 친척들과 찍은 사진. 도쿄에서 용정까지, 그는 선박과 기차를
갈아타며 여러 항구와 정거장을 지나쳐 이 자리에 도착했다. 윤동주의 생애 마지막 귀향길이었다.
[사진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생전에 윤동주는 시집조차 내지 못한 ‘무명시인’이었다. 사후 3년 만인 1948년에야 처음으로
친구 정병욱, 그리고 강처중이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유고시집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1941년 친구였던 윤동주와 정병욱이 함께 찍은 사진. 윤동주는 1941년 11월, 일제 말기의
전시 총동원 체제에서 출간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시 원고 열아홉 편을 세 부의 필사본으로 남겼고,
윤동주 자신과 친구 정병욱, 스승 이양하가 한 부씩 필사본 원고를 소장했다.
이후 윤동주는 일본에서 검거되었고, 정병욱도 학병으로 징집되었다.
정병욱은 "나나 동주가 살아서 돌아올 때까지" 원고를 간수해주기를 어머니에게 간곡히 부탁했고,
그의 어머니가 전남 광양의 집 마루 밑 큰 독 안에 맡겨 두었던 원고를 보관한 덕분에 윤동주의
시가 해방 후 빛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김신정 교수의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는 시인의 시작(詩作) 과정과 작품을 해석한 학술서인
동시에 팬심을 가득 담은 헌정본이다. 윤동주가 시를 창작한 정확한 시점, 시공간의 이동과 흐름,
세밀한 시어의 교체 과정을 잘 보여 준다. 김 교수는 윤동주의 습작 노트에 등장하는 시어와 시구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의식의 흐름을 추적했다.
윤동주가 도쿄 유학 시절 쓴 시 '봄'의 일부. 릿쿄대학 엠블럼이 있는 종이에
'쉽게 씨워진 시'에 이어 적혀 있다. [사진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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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정을 통해 시어들이 다듬어지고 시가 재탄생하게 됐는지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호주머니’ ‘오줌쏘개디도’ ‘양지쪽’ ‘자화상’ 같은 여러 시의 퇴고 작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시를 써나간 흔적과 다시 지우고 고친 흔적, 곳곳에 덧붙인 흔적들을 해석했다.
1943년 초여름, 일본 교토 우지강의 다리 위에서 윤동주와 도시샤대학 학생들이 함께한 모습.
함께 사진을 찍은 기타지마 마리코와 모리타 하루는 이날의 소풍이 윤동주의 송별회를 위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태평양전쟁이 격화하면서 전시 체재가 강화되는 가운데 조선인 유학생 윤동주는
고향 용정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이 사진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은 7월 14일,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윤동주의 생애 마지막 사진이다.[사진 박희균 ‘윤동주를 추모하는 모임’ 회장]
채 28년이 되지 않은 윤동주의 짧았던 인생은 이동과 월경으로 점철됐다. 그는 만주와 한반도, 일본 열도를
넘나드는 노마드(유목, 떠돔)였다. 경계를 넘는 이동의 과정은 힘든 여정이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시의 영토를
확장시키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윤동주의 시어들을 좇아서 시인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로
시야를 확장하고 답사했다.
1945년 3월 6일 윤동주의 장례식. [사진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
윤동주는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 노트 표지에 “예술은 길고 인생은 쩝다(짧다)”라고 자필로 썼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원했던 윤동주의 시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애창되고 있다.
분명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내일 흠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 할게외다”라고 읊은
그의 바람처럼 윤동주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 가고 있다.
자필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적힌 '서시'. [사진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기념비로, 영화와 사진으로, 추도식과 시낭송회로 윤동주라는 별을 보고 시와 추억, 사랑,
쓸쓸함과 동경을 소환하는 팬들이 많다. 이 책은 또 하나의 윤동주 기념비로 소중히 간직될 것이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2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