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사 석탑, 흥국사 대방
이번 서울 답사에 참가해 서울 은평구 진관사, 고양시 흥국사를 다녀왔다. 진관사는 진관사 태극기로 유명한 절이다. 이번에 답사에서 본 것은 이건희 기증으로 진관사에 온 오층석탑과 채색된 탑 때문이다. 탑에 채색한 예가 없기 때문에 궁금했다. 우리나라 석탑이나 석불에 채색한 흔적이 있다는 것이 오래 전부터 알려졌다. 돈황의 석불도 채색됐으니 채색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불상에 호분을 칠하는 것은 이어졌으나 탑에 색을 칠하는 것은 명맥이 끊어졌다.
20세기 초반에 세워진 것이긴 하지만 채색 흔적이 있는 것을 처음 보니 신기했다. 나 역시 그렇지만 조선 후기 석탑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논문을 검색해보니 전지혜 논문 하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조선후기 특히 일제강점기에 대한 석탑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마주한 석탑은 이전에 보던 석탑과는 달랐다. 탑이 세장한데 이것은 조선 후기 탑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각층 탑신석에 모두 조각돼있는데 초층 탑신석 조각을 제외한 2층과 5층은 연꽃으로 보이는데 초층과 4층은 어떤 꽃인지 모르겠다. 전지혜는 조선 후기 탑의 문양이 능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것을 고려하면 모란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붕돌은 우리 눈에 익은 비석에서 많이 보는 지붕돌이다. 지붕돌 끝에는 풍경 등을 달았던 흔적이 있다. 이 탑 중심은 3층 탑신이다. 탑신 사면에 부처가 조각돼있는데 수인이 같다. 그리고 부처가 새겨있는 한 면 상부에 편액이 조각돼있는데 조명을 비춰보니 다보탑多寶塔이라고 쓰여 있다. 아마도 편액이 있는 면이 전면이 아닐까 한다. ‘다보탑’이란 이름으로 유추해볼 때 중심전각이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이라고 하면 ‘다보탑’이라고 쓰여 진 면이 대웅전을 향했을 수도 있겠다.
지금 상태로 보면 색을 부처가 있는 면 전체를 칠한 것은 아니고 부처와 장엄부분만 칠한 것으로 보인다. 부처 부분은 광배와 가사 깃 부분 만 칠했는데 청색과 하늘색을 사용했다. 그리고 장엄으로 보이는 상부 구름문양 부분은 하늘색과 붉은색을 사용했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붕하부에는 추여와 보 마구리를 조각했는데 다른 부분보다는 부처가 새겨져있는 3층을 더 정교하게 조각했고, 보 마구리에는 주변에 여섯, 가운데 하나 모두 7개의 매화점이 표현돼있다. 매화점은 그림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조각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3층 도리부분 일부에 붉은 색 흔적이 보인다. 이것을 보면 기둥까지 색을 칠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여간 색을 칠 한지 120년 쯤 됐다고 하니 색이 바랠 만도 하다. 색을 올린 지 120년 된 것이 이 정도니 500년 이상 된 석불이나 석탑에 색이 없는 것도 이해가 된다. 지금 많은 석불이나 석탑에 색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보물로 지정된 '진관사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에는 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작은 석불이 한 구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천불상 중 하나일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 석불 참 매력적이다. 보면 볼수록 천진난만한 모습에 빠져든다. 이런 불상을 만든 석공은 어떤 분일까? 그 분 마음도 불상을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런데 문화재청 자료를 보면 문화재 지정일이 2002년인데 그때 사진과 조금 다르다. 아마도 문화재 지정 이후 다시 개금을 한 것 같은데 지금 상태가 더 나아 보인다. 옷주름도 살아나고 표면도 잘 다듬어져 매끄럽다. 무엇보다 눈매와 입모양을 잘 살려 복스럽고 천진난만함이 더 살았다. 역시 화장발만으로도 아름다운 미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참 한 가지 더, 진관사에 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된 16 나한상이 있다. 이것을 보자 얼마 전 봤던 불교박물관 ‘선운사특별전’에서 본 나한상이 생각났다. 선운사 특별전 나한상을 보면서 대단한 작품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나한상과 비교해보니 더욱 대단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다시 나한상을 보러 불교박물관을 찾아봐야겠다.
진관사 다음에 흥국사를 찾았다. 흥국사에는 등록문화재 제583호로 등재된 대방大房이란 건물이 있다. 등록문화유산이니 근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대방은 조선 후기에 생긴 절의 형식이다. 절이 영세해지다 보니 불당과 스님의 생활공간을 하나로 합친 절집이다. 아래 링크한 자료에 의하면 1912년 또는 1915년 미타전을 개조한 것이라 한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위계승자인 영친왕이 여덟 살이었던 1904년 영친왕의 어머니 엄비(순현황귀비)가 영친왕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기위해 ‘만일 기도회’열면서 궁중의 상궁과 나인이 들이 많이 드나들게 되자 누각, 공양간, 요사채가 함께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이런 대방형식의 건물은 전국에 꽤 있다. 영월 금몽암禁夢庵도 ㄱ자형의 건물로 요사와 법당이 붙어있다. 대방 평면은 ㄱ또는 ㄷ자 형태다.
건물 앞쪽으로 돌출된 지붕 부분 한 칸은 아마도 최근에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마루도 본채 퇴칸 부분은 우물마루인데 앞에 돌출된 부분은 장마루다. 증축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언제일까?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2015년 찍은 사진을 보면 단청이 매우 짙게 나온다. 이것을 보면 2010년 이후 달아낸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돌출된 부분을 보면 아래부분에 머름이 보인다. 이것을 보면 원래 누마루였는데 비슷한 시기에 방으로 개조하고 누마루 아래도 막아 욕실이나 창고 등으로 개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자료
- KBS 역사스페셜 – 석굴암 불상에도 색을 칠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OARdfFqDo
- 한국 石塔史에서 조선후기 석탑의 의의/전지혜/동북아시아문화학회/동북아문화연구vol.1, no.84/2025
- 고양흥국사 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