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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보고 가을을 느끼다

작성자임영희 크리스티나|작성시간26.06.17|조회수13 목록 댓글 0

3월말이면 목련이 가장 먼저 무채색의 겨울을 깨운다. 목련꽃은 고목위에 내려앉은 하얀 등불이다. 잎도

나기 전 비늘같은 껍질을 뚫고, 나온 우유빛 꽃잎이

탐스럽다. 마치 누군가 밤새 고목 가지마다 하얀 한지 등불을 달아 놓은듯하다. 햇살이 꽃잎을 투과할때 비치는 은은함은 꽃잎조차 아직 숨을 쉬는 듯 고귀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목련이 질무렵 벚꽃이 아파트 단지 전체를 분홍색으로 덮는다. 벚꽃이 폭죽처럼 터진다. 벚나무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지를 맞대어 꽃터널을 만든다.

바람이 불면 꽃잎들이 뷰파인더 가득 흩날린다. 오래된  보도블럭 틈새마다 연분홍 꽃잎이 내려 앉아 단지

전체가 화사한 필터를 낀듯 몽환적이다. 

 

목련과 벚꽃의 화려함이 지나갈무렵, 라일락이 진한 향기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공기의 색깔을 바꾸는 보

랏빛 향기. 시각적인 풍경넘어의 감각에 집중한다.

짙은 초록 잎사귀 사이로 작은 보라빛 꽃송이들이

옹글몽글 맺힌다. 이때부터는 눈보다 코가 먼저 반응한다. 렌즈에 담기지 않는 그 진한 향기가 아파트 현관 입구까지 스며든다.

 

가을이 깊서가면 아파트 정원은 주로 은행나무와

주황, 빨강으로 물드는 단풍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봄에 화려했던 꽃나무의 잎들도 갈색으로 물들어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만 못해도 가을을 야무지게

보내려는 듯 저마다 알록달록 저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낙엽은 나무의 종류에 따라 색깔도 다르지만

농도도 다르다. 황혼기를 지나는 나도 이왕이면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고 싶어진다. 

 

인생의 초입은 마치 봄꽃과 같다. 나도 한때는 목련이나 벚꽃처럼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피어나길 꿈꾸었다.  젊은 날은 남보다 빛나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내 인생 가을에 접어 들면서 가을 나무의 지혜

를 배우고 싶어진다. 가을에 더 빛나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는 내가 가진 에너지를 가장 화려하게 태우며

나의 한 생애를 마무리하고 싶은 내 마음과 닮았다.

 

봄의 화사함보다 가을의 원숙함이 더 귀하게 느껴지는 요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붉은 단풍나무를 보며 내 인생의 가을도 저 나무들 처럼 아름답고 나다운

곱고 깊은 색깔을 내 품으며 알차게 마무리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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