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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의소설

불멸 (72)

작성자조흥제|작성시간26.06.05|조회수13 목록 댓글 0

                                        안중근 의사 일대기 이문열의 불멸 (72)

 

                                                                                                                 조 흥 제

 

   그런 일본군이 한국군 시위대를 몰아대는 모습은 겁먹고 혼란 속에 쫓기는 양떼를 덮치는 이리 떼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때 심신이 굳어 옴짝할 수 없을 만큼 안중근을 분노와 통한에 빠져들게 한 것은 쫓기는 시위대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일본군이었다. 쫓기는 것은 제1연대 1대대의 태반이 넘어 보이는데 뒤쫓는 일본군은 일개 중대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거기다가 병영 안에서는 아직 간간이 기관총 소리가 나고 소탕전의 제압사격이 계속되는 것으로 보아 일본군의 주력은 아직 거기 남아 있는 듯했다.

갑오의려 때 안중근은 일본군이 겨우 1개 소대 서른 명으로 수백, 수천의 동학군을 몰아내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13년, 황제는 해마다 군제를 개혁하고, 외국 교관을 불러들여 신식 군대로 훈련했다. 거기다가 넉넉지 못한 내탕금을 쏟아 부어 갖가지 신형 무기를 사들였지만 성과는 그토록 참담했다. 군대로 일본군과 싸워 자주 독립을 얻어낸다는 것은 적어도 당장 국내에서는 어림없는 일로 보이기까지 했다.

“동지, 아무래도 아니 되겠소. 곧 일본군이 이리로 몰려들 듯하니 잠시 몸을 숨깁시다. 저들과 맞닥뜨려 좋을 일은 하나도 없소.”

오히려 싸움터를 경험한 적이 없는 안창호가 분노와 통한으로 굳어 있는 안중근을 가만히 집 뒤로 끌었다. 안중근이 아직도 제대로 아귀 맞게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권총을 가지고 나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안창호에게 끌려가다 보니 우르르 큰 길로 밀려 든 한국군들이 일본군의 총탄을 피해 저마다 좁은 골목길로 흩어지는 게 보였다.

일본군의 추격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한국군이 방어진지로 쓰고 있는 제1연대 1대대 병영을 점령해 근거를 없이 하는 게 목적이었던 듯 병영을 내 준 한국군이 모두 흩어져 달아나 버리자 일본군은 추격을 중지했다. 대오를 풀고 대여섯 명씩 무리를 지어 농부가 가을걷이 하듯 그동안의 전과를 거두어 들였다.

일본군은 먼저 자기들의 총에 맞아 죽어나 중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큰 길가나 골목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한국군을 개 끌듯 끌어 병영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나머지는 대여섯 명씩 패를 짜고 가벼운 부상으로 뒤처지거나 황망 중에 낙오하여 부근 민가로 숨어 든 한국군을 잡아들였다. 거기까지 몰려서도 달아나거나 저항하는 한국군이 있는지 민가 쪽에서 이따금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 사이 병영 안의 총소리가 그친 것으로 미루어 그 곳의 소탕전도 이미 끝난 것 같았다. 다시 1개 중대 정도의 일본군 병력이 병영 안에서 더 나와 앞서 나온 추격대를 도왔다. 일부는 시체와 중상자를 병영 안으로 끌어가고 나머지는 부근 민가로 흩어져 한국군 낙오병 수색을 도왔다.

“나가 보아야겠습니다. 이제 더는 이곳이 싸움터가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윽고 정신을 가다듬어 가만히 바깥의 동정을 살피던 안중근이 다시 지난날의 전투 경험을 되살려 그렇게 말했다. 대한제국 시위대의 참담한 현실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허옇게 질려 말을 잃고 있던 안창호가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시오.”

“일본군이 더 뒤쫓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이번 전투의 목적은 추격 섬멸이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빼앗은 우리 군대의 병영을 진지 삼아 수비태세에 만전을 꾀하려는 게지요. 지금의 수색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한국군의 반격을 철저히 차단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군이 저렇게 눈에 불을 켜고 날뛰는데 우리가 나가서 할 일이 있겠소?”

“총을 들고 싸우지는 못한다 해도 부상병을 돌보고 낙오한 장병들을 숨겨 주는 일을 도울 수는 있겠지요. 급합니다. 거기다가 선생께는 대한매일신보 객원논설위원이란 신분도 있으니 일본군과 마주쳐도 어느만큼은 보호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안중근도 숨어 있던 돌담 곁에서 몸을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둘 모두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다시 대문께로 간 뒤 손바닥만큼 열린 대문 사이로 한참이나 바깥의 움직임을 살폈다. 일본인 추격대의 총질로 죽거나 다친 한국군이 적지 않을 터인데 모두 병영 안으로 끌고 간 것인지 큰 길이고 울타리 곁이고 쓰러져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일본군 수색조는 위협적으로 번쩍이는 총검을 앞세우고 남대문 사거리를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한국군 시위대 낙오병들을 찾아냈다. 일부는 큰 길가를 따라 점포와 민가를 가리지 않고 이 잡듯 뒤졌고, 나머지는 골목 안으로 흩어져 들어가 초가집 기와집 할 것 없이 뒤엎어 놓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안중근과 안창호가 숨어 있는 곳까지는 일본군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 몇 백 명이라고는 해도 수색 및 체포와 이송을 함께 수행하느라 병력이 분산된 데다 대상 지역이 넓어 그렇게 된 듯했다.

“이제 가 봅시다. 저 골목 뒷집이 수런거리는 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소. 빠끔히 열린 대문으로 여기저기 골고루 살피던 안중근이 문득 그렇게 말하며 대문을 열고 옆집 골목 쪽으로 몸을 날렸다. 안창호가 얼결에 뒤따라 가 니 골목 어귀에서 네댓 집을 지나쳐 달려가던 안중근이 한군데 삐죽이 열린 대문 앞에 걸음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대뜸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뒤따라오는 안창호에게 말했다.

“이리 오십시오. 잠깐 들어가 보십시다.”

안창호가 따라 들어서며 보니 초가집이지만 디귿자로 제법 칸살 있게 지은 집이 있고, 그 집 앞마당에서 서너 사람이 마주 서서 숨죽인 소리로 무언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다른 데로 가 보시오. 여긴 숨겨 줄 곳이 없소.”

그러면서 손을 내젓는 사내는 그 집 주인인 듯했는데 두 눈만 반들거리는 오종종한 얼굴에는 남의 눈치만 보고 산 시전 장사치의 이력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이대로 잡히면 일본군에게 죽습니다. 동포의 정으로 잠시만 숨겨주십시오. 날이 저물면 제 갈 길을 찾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비는 것은 그들이 걸친 군복만으로도 한국군 시위대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는 두 사람이었다. 왼쪽 정강이 어름이 피투성이인 시위대 병정을 크게 상한 데가 없어 보이는 다른 병정 하나가 부축하고 있었는데 방금 사정을 한 것은 바로 그 성한 쪽이었다. 하지만 집 주인 쪽은 한사코 그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곁에 서 있는 우락부락한 조카를 내세워 거칠게 내 몰았다.

“집 주인이 안 된다지 않소? 이만 나가 주시오. 댁네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우리도 일본군을 척지고는 못 배기는 장사꾼이오.”

그때 안중근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갑시다. 어차피 이 집은 큰 길에 가까워 마음 놓고 숨어 있기 틀린 곳입니다. 게다가 집 주인도 이미 반 왜놈이 된듯하니 빌어봤자 구차스러운 꼴만 보이고 말 것이오.”

안중근이 결기 어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성한 쪽을 거들어 다친 시위대 병정을 부축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성이 나서 낯빛이 달라진 안창호에게 말했다.

대신들이 앞장 서 나라를 팔아먹은 마당인데 눈치만 보고 사는 저잣거리의 장사치에게 어찌 애국애족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골목 안 후미진 곳을 살펴 동포의 정을 빌어 볼 만한 곳을 찾는 게 낫겠습니다.”

“그럼 내가 달려 가 알아보겠소. 동지께서는 부상자를 부축해 천천히 따라오시오.”

안창호가 금세 말을 알아듣고 그에게 대답하며 대문을 나섰다. 안중근도 성한 시위대 병정과 함께 다친 병정을 부축하고 그런 안창호를 뒤따랐다. 한참이나 휑한 골목 안으로 내달리듯 하며 양편 대문을 기웃거리던 안창호가 한 군데 열린 문 안으로 뛰어 들었다.

“이리로 들어오시오. 여기 피할만한 곳이 있소.”

얼마 안 돼 상기된 얼굴로 뛰어나온 안창호가 부상병을 부축해 숨 가쁘게 달려 온 안중근을 그 대문 안으로 끌었다. 제법 뜰이 넓고 사랑채를 따로 가진 기와집이었는데 사랑채 앞마당에는 평상과 거적이 깔리고 거기 몇 사람이 누워 있었다. 더러 옷이 벗겨져 있었지만 다친 시위대 병정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들 사이로 西(서)醫(의) 교육을 받은 의사인 듯한 젊은 남자가 오락가락하며 치료를 하고 있었다. 안창호가 그들을 그리로 이끈 것은 그 의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거기 앉히시오.”

흰 붕대를 찢어 다친 어깨를 싸매 주던 의사가 비어 있는 평상 모퉁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투가 꼭 제 병원에서 환자를 기다리던 의사 같았다. 중근이 시위대 병정을 평상 한 구석에 앉히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우리 부상병들을 이렇게 마당 한 가운데 훤히 드러내놓고 치료해도 되나? 곧 일본군이 들이닥칠지도 모르는데.”

그러자 부상병의 어깨를 싸매고 있던 의사가 힐끗 고개를 들어 받았다.

“일본군이 마음 먹고 대부대를 풀어 뒤진다면 땅 속으로 꺼지거나 하늘로 솟지 않는 이상 어디로 피하겠소? 또 집안으로 들어가 봤자 수술대도 없고 어둡기만 한데 이렇게 다친 사람들을 그리로 몰아넣어 어쩌겠다는 것이오? 차라리 전투 중에 다친 사람은 적이라도 해치지 않는다는 萬(만)國(국)公法(공법) 정의에 의지해 보는 것이 나을 것이오. 성한 병정이나 어서 옷을 갈아입고 재주껏 멀리 피하라 하시오.”

그러자 안중근도 赤十字(적십자)란 말과 함께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났으나 그 규정이 일본과 그 보호국인 대한제국 사이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때 안창호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안중근을 보고 말했다.

“동지, 金(김)弼(필)淳(순) 선생께 인사 드리시오. 원래 누대를 의술로 이어 온 집안의 후인인데 다시 관립의학교에서 西(서)醫(의)를 공부해 의사가 되신 분이오. 부근에 왕진 나왔다가 총소리를 듣고 걱정이 되어 이리 달려오셨다고 하오. 그러자 의기 있는 사람과 사귀기를 좋아하는 안중근의 호기롭게 통성명을 했다.

“나는 신천 청계동에 사는 안중근이란 사람입니다. 근래 품은 뜻이 있어 서울로 왔다가 우리 대하민국과 황제폐하께서 잇달아 당하시는 해괴하고 망극한 변을 보고 망연자실해 하던 사이에 다시 이런 변을 만났소."

안중근이 평소 그렇듯 장황하게 자신을 밝히는데 김필순이 지극이 실무적인 어투로 안중근의 말머리를 잘랐다.

“통성명은 이만하면 된 듯하니 이왕 팔 걷고 나선 김에 나를 좀 도와 주시오.”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안중근이 머쑥해 하며 물었다. 김필순이 그런 안중근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투로 받았다.

“인근 민가에는 아직 이렇게 피 흘리며 숨어 다니는 부상병들이 많을 것이오. 골목을 뒤져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찾아 이리로 옮겨오시오. 귀하는 총소리에 놀라지도 않고 피를 겁내거나 꺼리는 기색이 없는 것이 이런 싸움터를 겪어본 듯해 특히 청하는 바요. 치료는 곧 내 조수와 간호원이 병원 인력거와 함께 이리로 오면 어찌 당해 볼 수도 있을 것이오.”

김필순이 안중근에게 그렇게 말해놓고 다시 안창호를 향했다.

“안창호 선생은 어서 대한매일신보에 기별을 보내 기자와 사진사를 청해 주시오. 다른 신문사에도 알리는 게 좋을 듯하오. 여기는 서울 장안 한복판이라 우리가 드러내 놓고 구료소를 차리고 기자들까지 모여 취재하고 있으면 설령 일본군이 오더라도 마구잡이 패악은 부리지 못할 것이오.”

안창호와 안중근은 그런 김필순의 침착하고 사려 배인 말에 두말없이 따랐다. 안창호는 그 길로 기자와 사진사를 데려오기 위해 대한매일신보로 달려가고 안중근은 인근 골목을 뒤져 대한제국 시위대 부상병들을 모았다. 김필순의 짐작대로 피 흘리며 부근을 헤매는 시위대 병정들은 뜻밖에도 많았다. 한 골목을 다 뒤지기도 전에 예닐곱이나 되는 부상병이 늘었다. 안중근은 그들을 김필순이 임시 의료막사로 쓰는 민가로 업어 옮기는 동안에 시위대 제1연대 1대대 병영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지를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왜놈 지시를 받은 우리 중대장들이 속여 우리 대대도 훈련원에서 맨손체조 연습이 있는 줄만 알고 맨몸으로 병영을 나서려던 때였습니다. 갑자기 병영 안에서 총소리가 나더니 대대장님께서 자결했다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부관이 울며 달려 나와 먼저 대대장님 말씀을 전하고 다시 유서를 펼쳐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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