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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의소설

불멸(77)

작성자조흥제|작성시간26.06.10|조회수7 목록 댓글 0

                               안중근 의사 일대기 이문열의 불멸 (77)

 

                                                                                                         조 흥 제

 

                                             제 15장 깃발을 올려라

 

   가위가 머리칼을 잘라 내는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아슴아슴 잠에 빠져들고 있는데 문득 가위질이 멈춰지며 이발장이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한번 보세요. 마음에 드십니까?”

이어 안중근의 눈앞으로 부채만 한 거울이 다가들고 그 안에 낯익은 얼굴이 떠올랐다. 바람서리 맞으며 떠돈 그 몇 달 동안에 몇 년은 더 나이를 먹은 듯한 안중근 자신의 얼굴이었다. 야윈 탓인지 유난히 길어 보이는 얼굴 위를 잘 깎은 상고머리가 덮고 있었다. 그러나 두 볼과 입 언저리는 술이 많지 않은 구레나룻과 콧수염으로 지저분했다.

“자, 이제는 剃刀(체도)로 얼굴을 밀어 드리지요.”

안중근이 무얼 보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듯 거울을 거둔 이발장이가 그렇게 말했다. 해외로 나와서는 듣기 어렵던 서울 언저리 말투였다. 이어 솔로 무엇을 개는 듯하더니 향긋한 냄새와 함께 두 볼과 입 언저리 가득 거품이 덮였다. 한 때는 한 개에 쌀 한말 값이 넘는 적도 있어 아직은 조선 여인네들이 금쪽 같이 여기는 화장 비누였다. 러시아 거리 끄트머리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한인촌 골목의 이발소지만 그래도 블라디보스토크라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염은 어쩌시겠습니까?”

다시 쓱쓱 가죽에 칼 가는 소리가 나더니 이발장이가 다가들며 물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도 베코 칼이나 일본식 체도가 아니라 은빛 나는 양식 면도칼이었다. 그때 안중근이 불쑥 말했다.

“콧수염만 남겨 주시오.”

露(노)領(령)으로 접어들면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러시아인의 콧수염 때문이라기 보다는 연추에서 며칠 그를 따뜻이 돌봐 준 최재형의 콧수염을 상기하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뒷날 일본 경찰의 기록에는 안중근을 최재형의 부하로 분류해 놓을 만큼 두 사람의 천분은 남달랐는데 그 시작이 연추에서 보낸 그 며칠이었다. 최재형은 안중근이 의병 창설을 역설하고 다닌 뒤 처음으로 그 대의에 선뜻 응해 준 사람이었다. 그뿐 아니라 연추에서의 장구한 거처를 주선하고 활동자금까지 걱정해 주었다.

“찾아 볼 사람만 찾아보고는 이리로 돌아오시오. 그곳은 큰 도시라 몸 붙이기 쉽지 않을 것이오. 여기 와서 장구한 대책을 마련해 봅시다.”

안중근이 서둘러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던 날 최재형은 돈 20원(루불)까지 내 놓으며 그렇게 말했다. 포세트에서 블르디보스토크를 왕복하는 뱃삯을 물고도 며칠 숙식비가 남을 돈이었다.

안중근이 콧수염을 남겨 달라고 할 때 잠깐 멈칫하는 눈치였으나 이발징이는 말없이 안중근이 바라는 대로 해 주었다. 다시 둥근 거울이 앞으로 다가들었을 때 안중근은 왜 이발장이가 멈칫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러시아 사람들이나 최재형의 그것처럼 짙고 탐스러운 콧수염이 아니라 술이 적어 간신히 코 밑을 가린 담상담상한 콧수염이었다. 그 때문에 사람이 경망스럽거나 좀스럽게 보이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꾸면 짙어지기 마련입니다. 앞으로 잘 길러 보시지요.”

안중근의 마음속을 읽은 듯 이발장이가 그렇게 위로해 주었다.

이발소를 나온 안중근은 러시아 거리를 한 바퀴 둘러보고 한 군데 상점에 들러 일본인들이 도리우찌라고 부르는 서양식 사냥모자와 반외투 한 벌을 샀다. 처음 겪는 블라다보스토크의 독특한 추위 때문이었다. 12월 중순의 추위가 어찌나 매서운지 비싼 수달피 방한모는 못 사더라도 서양 모자는 사야 했다. 또 한국에서 마련해 온 겨울 겉옷도 단벌로 입어 낡았을 뿐만 아니라 마련부터가 블라다보스토크의 겨울 추위를 막기에는 너무 부실했다.

‘의복이 날개라더라. 아무리 최도헌이 소개한 집이라 해도 첫 만남부터 추레하게 보일 필요는 없지.’

이윽고 채비를 마친 안중근은 그런 중얼거림과 함께 ‘개척리 계동학교 앞이치권 댁’을 찾아 갔다.

“글세, 의암 선생이든 유인석이든 그런 사람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다니까. 들어보니 그 어른 벌써 육십을 넘긴 어르신네 같은데, 도대체 강원도에서 그런 큰 어르신네가 왔다는 소리는 없었다고. 그리고 李(이)剛(강)이라는 사람도 그렇소. 내 오두막이지만 여기 개척리 어귀에 집 차리고 앉아 지낸지 하마 십수 년이라 조선 사람 오가는 것은 대강 꿰고 있는데 그런 사람 얘기도 못 들었소. 수만리 바다 건너 미국에서 대표로 뽑아 보낸 사람이면 내 눈에 띄지 않고 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말이라.”

이치권이 짧은 곰방대로 애꿎은 재떨이를 땅땅 두드리며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전 날 저녁 이미 대답해 준 일을 또 물으니 짜증이 난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안중근은 기대하는 말투를 버리지 않고 물었다.

“그럼 다른 이들 움직임은 듣지 못했습니까? 연추에서 들으니 지금 여기 해삼위에는 온갖 조선 지사들이 다 모여들고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이범윤 대장까지 倡(창)義(의)會(회)를 밀쳐 두고 이곳에 와 계신다고 들었는데.”

“이 관리사리면 어디 계신지 알지. 지금 최봉준이 새로 연 사무실에 있을 거요. 요즘 거기 자주 들락거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소.”

“최봉준이 누굽니까? 어째서 이범윤 대장이 그 사람 사무실을 찾게 되었답니까?”

안중근이 다시 그렇게 묻자 이치권이 한참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최봉준이란 사람은 함경도 거부로 여기 블르다보스토크와 원산 사이를 오가는 기선 준창호의 선주요. 그 양반이 요새 뭔가 꾸미려고 사무실을 열고 조선 사람들을 불러들이는데 이 관리사도 거기 빌붙을 일이 있는 모양이지. 참 그러고 보니 이쪽이야말로 요즘 조선에서 행세깨나 하던 양반들이 슬금슬금 몰려드는 것 같던데. 유 뭔지, 이 뭔지 하는 양반들은 아니지만.”

“조선에서 행세하던 이들이라면 어떤 사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혹시 이름이라도 기억하는 분이 있습니까?”

“여럿은 모르지만 한둘은 기억하겠네. 작년부터 한인촌을 얼씬거리던 왕창동이란 평안도 먹물하고, 또 한 사람 조선에서 부러 왔다는 張(장) 뭐라던가. 그래 장지연이라는 사람하고……, 그런데 하도 떠들썩하게 추켜 대니 묻소만 그 장지연이란 사람 정말 조선에서 그리 대단하였소? 글줄깨나 읽을 줄 아는 것들은 모두 그 이름을 듣고 껌뻑 넘어가는 눈치라.”

그 말에 안중근은 자신도 모르게 눈이 둥그래졌다. 을사조약이 있은 다음 날 아침 대한매일신보에 ‘是日(시일)也(야)放聲(방성)大哭(대곡)이란 사설을 썼던 그 장지연이라면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망명한 다는 말은 없었는데 멀리 해삼위까지 왔다니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무얼 꾸민다면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가 그 장지연이라면 백암 박은식 선생이나 안창호의 소식뿐만 아니라 이강의 일도 알 것 같았다. 안중근은 이치권에게 장지연에 대해 아는 대로 알려 주고 최봉준이 연 사무실의 주소를 물은 뒤 집을 나왔다.

안중근이 어렵게 최봉준의 사무실을 찾아 가니 이치권의 말대로 무슨 일인지 여남은 평이 넘는 실내는 조선 사람들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오래 비워뒀던 곳인 듯 여기저기 손 보고 있는 일꾼들과 집기를 들이는 사람들 사이로 두루마기 차림의 조선인들도 몇 보였다. 장지연의 얼굴을 아는 안중근은 그들 가운데서 장지연을 찾아보았으나 사무실 안에는 없었다. 그래서 놋 단추가 두 줄 달린 외투를 입은 풍채 좋은 중년을 잡고 물어 보았다.

“장지연선생께서 왔다는데 어디 계십니까?”

“오늘은 뵈지 않는구려. 그런데 그 분은 왜 찾으시오?”

“서울에서 뵈온 적이 있는 분이라……, 그럼 이범윤 대장은 어디 계십니까?”

안중근이 그렇게 묻자 기이하게 번들거리는 눈길로 마주 보던 그 중년이 무뚝뚝하게 받았다.

“내가 바로 이범윤오만 무슨 일로 찾으시오.”

“각하를 눈앞에 모시고도 알아보지 못했으니 청맹과니가 따로 있겠습니까? 저는 황해도 해주부에서 나고 신천 청계동에서 자란 안중근이라 합니다. 용정에서 각하의 존성대명을 듣고 연추로 찾아갔다가 거기서는 뵙지 못하고 여기 해삼위까지 와서야 이렇게 뵙겠습니다.”

아버지 안태훈에게서 이어받은 인맥과 서북의 개화파 식자들을 중심으로 안중근의 이름도 다소 알지기기는 했으나 오래 조선을 떠나 있었던 이범윤은 안중근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멀리 북간도에서 자신을 찾아 왔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안중근을 정중하게 대해 주었다.

“내 본국을 떠난 지 벌써 여러 해가 되거니와 본국에 머물 때에도 황해도에 발걸음이 적어 공의 이름이 귀에 설구려. 하지만 간도에서 여기까지 나를 찾아 이국 땅 천리 길을 왔다하니 소홀히 맞을 수가 없소이다. 여기는 이목이 번다하고 마주 앉을 자리조차 마땅치 않으니 밖으로 나갑시다.”

이범윤이 그러면서 안중근을 데려간 곳은 최봉준이 연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러시아 찻집이었다. 아버지 안태훈이 죽은 뒤로 그토록 즐겨 마시던 술을 끊은 터라 안중근에게도 엄중한 얘기를 나누기는 찻집이 나았다. 주문한 노서아 가배(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이범윤이 물었다.

“이 엄동에 그토록 먼 길을 찾아 왔다면 반드시 까닭이 있을 터.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만나러 왔는가?”

그런 이범윤에게는 장안 명가의 자제이면서도 망해 가는 조국을 떠나 이국을 떠돌며 싸우는 지사로서의 위엄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안중근이 그런 것에 기죽어 머뭇거릴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 러일전쟁 때 각하께서는 러시아를 도와 일본을 쳤는데 그것은 하늘의 뜻을 어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일본은 동양을 위한다는 대의를 짚고 동양 평화와 우리 대한의 독립을 굳건히 할 뜻임을 세계에 선언한 뒤에 러시아를 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본은 하늘의 뜻을 순응한 것이므로 요행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만약 각하께서 지금 크게 의병을 일으켜 일본을 친다고 하면 그 또한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수괴 이등박문이 공에 취해 망령되고 건방지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없는 양 교만하고 극악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위로 임금을 속이고 아래로 백성을 함부로 죽이며 이웃나라와 友誼(우의)를 끊고 세계에 신의를 저바리니 이는 그야말로 하늘에 반역하는 것이라 어찌 그 날이 오래 갈 수 있겠습니까?“

안중근이 그동안 품고 온 말을 그렇게 뜨겁게 토해 냈으나 이범윤은 별로 감동하는 기색이 없었다.

“허나 일본은 갈수록 기세등등해질 뿐이네. 지난해에는 여순에 관동도독부를 열고 관동군을 설치하여 만주를 그대로 삼켜버릴 기세이네. 노서아는 동양철도를 지키기에도 쩔쩔매는 판인데 일본이 오래 가지 못한다니 그 무슨 소린가?”

“속담에 이르기를 해가 뜨면 이슬은 사라지고, 달도 차면 반드시 기운다고 했습니다. 이는 또한 자연의 이치이기도 한데 각하께서는 皇上(황상)의 거룩한 은혜를 입고도 이같이 나라가 위급할 때를 만나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늘이 주시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벌을 받게 된다 했습니다. 바라건대 각하께서는 하루 바삐 큰일을 일으키시어 하늘이 내리신 때를 놓치지 않도록 하십시오.”

안중근이 다시 그렇게 열 올려 권했으나 이범윤은 여전히 핑곗거리만 찾았다.

“말인즉 옳네만은 의병을 일으킨다는 게 맨 손으로 되는 게 아니네. 재정이나 軍器(군기)를 전혀 마련할 길이 없으니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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