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일대기 이문열의 불멸 (79)
조 흥 제
그해 8월 이강이 또 다른 공립협회 회원인 정재관과 블라디보스토크로 온 것은 그곳에 신민회 지회를 설립하기 위함이었다. 이강은 먼저 합법적 단체인 공립협회 블라디보스토크 결성하고 미주의 공립신문에 해당하는 기관지를 내기 위해 애쓰던 차에 거부 최봉준이 신문을 만들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신문을 지부 기관지로 활용할 수 있다 싶어 창간작업에 참여하고 그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그 무렵 최봉준이 새로 낼 신문은 ‘해삼위에 있는 조선인 신문’이란 뜻으로 ‘海(해)朝(조)新聞(신문)’이란 제호가 정해지고 본국에서 추상같은 논설로 명성이 드높은 장지연을 주필로 모셔와 다음 달에는 창간을 내기로 결정이 나 있었다. 그 바람에 나중 해조신문의 편집국이 될 그 사무실뿐만 아니라 편집인이 될 이강도 한창 분주할 때였다. 그런데도 이강은 찾아 온 안중근을 따뜻이 맞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했다. 안중근에게 여관이나 다름없는 이치권의 집을 나와 거처할 곳을 마련해 주었고, 나중에 새로 나올 해조신문에 기고할 통신원 자격을 얻어 주었으며 그가 관여하던 계동 청년회에 안중근을 입회시켰다.
안중근이 표트르만의 정월 찬바람에 열을 식혀야 할 만큼 심하게 귓병을 앓게 된 것은 바로 그 계동청년회의 회의석상에서 당한 봉변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개척리 교회에서 회의가 열렸는데 마침 사찰 자리가 비어 있어 안중근이 임시로 사찰을 맡게 되었다. 회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웬 험상궂은 청년이 의장의 허락도 없이 私談(사담)을 하며 떠들어 댔다. 안중근이 사찰의 소임을 하고자 그를 말렸다.
“지금은 회의중이니 발언권을 얻어서 말하시오.”
그러자 그 청년이 벌컥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종 간나새끼,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가 함부로 짖어대는 거이가? 굴러 온 돌빡이 박힌 돌빡 뽑아 재친다더이. 입회원서에 먹물도 마르지 않은 초짜 주제에 임시사찰도 감투라고 눈에 뵈는 게 없간.”
그러면서 우르르 달려 와 다짜고짜로 안중근의 뺨을 올려붙였다. 창졸간에 당한 일이라 안중근이 잠시 멈칫하고 있는 사이 거푸 따귀를 올려붙이고 있는 그 청년은 사람들이 뜯어 말려 떼어 놓았다. 하지만 그 청년의 그와 같은 행패에 익숙해져 있는 듯 잘잘못을 따져 보려고도 하지 않고 덮을 공사로 둘 모두에게 화해를 권할 뿐이었다.
안중근은 일생 불의한 폭력을 참지 않았으나 신앙과 관련되거나 상대가 하찮을 때는 예외를 두었다. 게다가 그 자리는 동포가 합심하여 조국의 국권을 회복하자는 뜻으로 모인 청년회의 모임이었다. 안중근이 분노로 치솟는 모멸감을 웃음으로 억누르며 그 난폭한 청년을 보고 말했다.
“오늘날 이른바 사회는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의 의견으로 그 주장을 삼는다. 그런데 우리가 이와 같은 일로 서로 다투면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옳고 그르고를 따질 것 없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어떤가?”
그러자 모두가 좋은 일이라 하며 손뼉을 치고 그 청년도 더 싸우려 들지 않아 시비는 거기서 그쳤다.
안중근의 자전적 기록을 보면 계동 청년회에서 말고도 두 번 더 그와 비슷한 예외가 보인다. 한번은 발렘 신부에게 맞았을 때요, 다른 한번은 서울에서 교우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다가 청계동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빌린 마차의 마부에게 맞았을 때인데 두 번 모두 안중근이 참고 화해하거나 용서한 것으로 적혀 있다. 하지만 계동 청년회에서의 봉변으로 얻은 귓병은 달포가 지난 그때까지도 안중근을 괴롭히고 있었다.
다음날 일찍 포시에트에 내린 안중근은 연추까지 삼십 리 남짓한 길을 눈보라 속에 걸어 최재형의 집으로 갔다. 마침 무슨 일인가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던 최재형이 반갑게 안중근을 맞았다.
“아예 블라디보스토크에 눌러 앉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구려. 지난 한 달 이쪽 일이 바빠 그쪽을 돌아볼 틈이 없었소. 거긴 어땠소?”
최재형이 그와 같은 물음에 안중근이 그 달포 사이에ㅔ 있었던 일을 간추려 들려 준 뒤 변명처럼 덧붙였다.
“모두가 이곳 연추의 요충됨을 말하기에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하면서도 이리 늦었습니다. 계동 청년회에 들고, 이강 동지를 도와 공립협회 지부 일과 신문 창간 쪽을 기웃거리다가 세월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그제 김두성을 만나 이범윤 대장이 도헌님과 만나 함께 손을 잡고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달려오는 길입니다.”
“공립협회 지부는 무엇이며 신문 창간은 무슨 얘기요?”
최재형은 먼저 공립협화와 신문 창간에 관심을 보이며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안중근이 미주에 있는 공립협회와 해조신문 창간 준비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하자 다시 물었다.
“김두성이란 사람은 누구요? 그가 누구기에 李(이)관리사와 내가 의병을 일으키려 한다는 말을 안 동지에게 해 준 거요?”
그 말에 안중근이 의암 유인석과 김두성의 관계를 털어 놓았다. 최재형이 이번에는 무언가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선비, 의병장을 지냈다는 유인석 선생, 안 동지도 잘 알고 있소? 도도하기로 이름난 천하의 이범윤이 그 분 한마디로 내게 굽히고 들게 할 어른이오?”
최재형은 일찍부터 러시아에 나와 살아 근년 본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안중근이 다시 열을 올려 의암 유인석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제야 최재형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소. 어쨌든 잘 돌아 왔소. 들은 대로 그 관리사와 내가 함께 의병을 일으켜 늦어도 이번 여름까지는 조선 국내로 진공할 작정이오. 애초 안 동지가 이리로 온 뜻대로 된 셈이니 이제부터 힘을 다해 도와주시오.”
이에 안중근은 먼저 동포들이 모여 사는 곳을 돌아다니며 의병을 모으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열아홉에 처음 발렘 신부의 服(복)事(사)로 천두교 傳敎(전교) 여행을 따라 다닐 때부터 닦아 온 언변과 을사조약을 앞뒤로 한 대여섯 해 치열할게 갈고 닦아온 의식으로 위로 멀리 하바로프스크로부터 아래로 地(지)新(신)墟(허)까지 원근을 가리지 않고 도는 유세였다.
안중근은 간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먼저 그곳 동포들을 고향 집과 부모형제를 떠나 다시 이룬 가정과 새로 사귄 친구로 안락하게 살고 있는 사람에 비유하여 연설을 시작했다.
“어느 날 고향 집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이 찾아 와 급히 말하기를 방금 집에 큰 화가 생겼소. 다른 곳에도 강도가 와서 부모를 내쫓고 집을 빼앗아 살며 형제들을 죽이고 재산을 약탈하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며 그러니 속히 돌아 와 구해 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여 고향집을 구하기를 마다한 그 사람을 도리를 모르는 짐승으로 몬 뒤 목소리를 높였다.
“동포들이여! 동포들이여! 내 말을 자세히 들어 보십시오. 지금 우리 한국이 겪고 있는 참상을 여러분은 알고 계시는 것입니까? 모르시는 것입니까? 몇 해 전 일본이 러시아와 개전할 때 전쟁을 선언한 글에는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한국의 독립을 굳건히 한다’는 말을 앞세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 그와 같이 중대한 의리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한국을 침략하여 을사 5조약과 정미 7조약을 강제로 맺은 다음 국권을 손아귀에 넣고 皇帝(황제)를 廢位(폐위)시켰으며 군대마저 해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철도 광산 산림 川澤(천택) 어느 한 가지 빼앗지 않은 것이 없으며 관청으로 쓰던 집과 민간의 큰 저택들은 병참이라는 핑계로 모조리 빼앗아 저희가 살고 기름진 전답과 오랜 분묘까지도 군용지라는 푯말을 박고 무덤을 파헤쳐 화가 조상의 뼈골에까지 미쳤습니다. 대한의 국민 된 사람으로서 또 단군 聖祖(성조)의 자손된 사람으로서 어느 누가 그 분함을 참고 욕됨을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이에 2천만 민족이 일제히 분발하여 3천리 강산에 의병들이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오나 아! 슬프도다. 저 강도들이 도리어 우리를 폭도라 일컫고 군사를 풀어 토벌하고 참혹하게 살육하여 지난 두 해 동안에 해를 입은 한국인만도 수십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남의 강토를 빼앗고, 거기 깃들어 살던 사람들을 죽이는 자가 폭도입니까? 제 나라를 지키고 침략해 오는 외적을 막으려는 사람이 폭도입니까? 그야말로 도둑이 매를 들고 설치는 격입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정략이 이렇게 포악해 진 근본을 따져 본다면 그것은 모두 이른바 일본의 대정치가라는 늙은 도둑 이등박문이 폭행과 패악에 있습니다. 이 쥐 같은 늙은 도둑은 한국민족 2천만이 모두 일본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고 그래서 지금 태평무사하게 살며 날마다 발전하는 것처럼 꾸며 위로 저희들 천황을 속이고, 밖으로 세계 열강의 눈과 귀를 가려버렸습니다. 제 마음대로 농간을 부려 못할 짓이 없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민족이 이 늙은 도둑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꼭 없어지고 말 것이며 동양도 또한 말살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모두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조국을 잃은 것입니까? 선조의 백골을 잊은 것입니까? 친척과 일가들을 잊은 것입니까? 만일 잊어버리신 게 아니라면 이같이 위급해져 죽느냐 사느냐 하는 때를 당해 크게 분발하고 각성하십이오. 뿌리 깊은 나무가 어디서 날 것이며 나라 없는 백성이 어디서 살 것입니까. 만일 여러분이 외국에서 산다고 하여 조국에 무관심하고 전혀 돌보지 않는 것을 러시아 사람들이 알면 반드시 ‘한국 사람들은 조국도 모르고 동족도 모르니 어찌 외국을 도와 줄 줄 알며 다른 종족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이같이 무익한 종족은 쓸데가 없다’하여 나쁜 평판이 들끓어 머지않아 러시아 국경밖으로 쫓겨날 것이 뻔한 일입니다. 조국의 강토가 이미 외적에게 뺏긴 터에 의지해 살던 외국인마저 우리를 배척하고 받아주지 않는다면 늙은이와 어린 아이를 업고 끌며 장차 어디로 가서 살겠습니까?”
안중근이 거기까지 열변을 토하고 청중들을 돌아보았다. 청장년 사오십 명이 모여 듣고 있었는데 오랜 타국살이로 굳어진 표정은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였으나 어딘가 격앙의 기색이 느껴졌다. 북간도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반응이었다.
안중근은 이어 함께 온 엄인섭과 김기룡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연단이라 할 수 있는 나무 탁자 뒤쪽으로 나란히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그들의 얼굴도 알아보게 상기돼 있었다.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엄인섭도 안중근의 연설에 만족해 하는 기색이 뚜렀했다.
엄인섭과 김기룡은 그곳 꼬르치프 쪽으로 유세여행을 떠나기 전에 안중근과 의형제를 맺은 사람들이었다. 엄인섭은 함경도 경흥 사람으로 연추 도헌 최재형에게는 생질이 되었다. 최재형 일가가 연추에 자리 잡자 일찍 가족과 함께 그리로 옮겨 살았다. 엄인섭은 안중근이 연추로 돌아와 처음 사귄 사람이었는데 담략과 의협심이 남달라 마음을 터놓게 되었다. 말수는 어눌하고 느렸으나 행동은 민첩하였으며 특히 사격 솜씨가 일품이었다.
김기룡은 평안도 북변 사람으로 안중근처럼 간도를 거쳐 연추로 흘러들었지만 단순히 호구를 위해 떠도는 유람은 아니었다. 나라를 걱정하고 원수 갚을 궁리에 골몰한 지사로서 역시 진작부터 안중근의 믿음을 샀다. 김기룡은 그 무렵 최재형이 새로 마련한 의병 훈련소에서 심신을 단련하며 지내다가 안중근의 유세여행에 따라 나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