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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의소설

불멸 (80)

작성자조흥제|작성시간26.06.13|조회수12 목록 댓글 0

                                         안중근 의사 일대기 이문열의 불멸 (80)

 

                                                                                                                    조 흥 제

 

  안중근은 연추를 떠나기 전날 엄인섭, 김기룡과 의형제를 맺었다. 엄인섭이 두 살 위라 맏형이 되고, 안중근이 다음이 되었는데 안중근보다 한 살 아래인 김기룡이 셋째가 되었다.

안중근은 그와 같은 청중의 반응에 힘을 얻어 다시 연설을 이어갔다.

“여러분, 여러분은 저 波蘭(파란) 사람들이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일이나 청나라 사람들이 흑룡강 위에서 겪은 참상을 듣지 못했습니까? 나라를 잃어버린 인종과 강성한 나라의 국민이 동등하다면 나라 망하는 것을 걱정할 것이 무엇이며 또 조국이 강국이라고 좋을 게 무엇 있겠습니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나라가 망한 인종은 그와 같이 참혹하게 죽고 학대 받는 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대한 인종은 이같이 위급할 때를 당하여 무슨 일을 해야 좋겠습니까? 이리 생각해 보고 저리 궁리해 보아도 무엇을 하든 결국 크게 의거를 일으키는 것만 못하니 죽기로 적을 치는 일밖에 다시 더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지금 대한에서는 內地(내지) 13도 강산에 의병이 일어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그리하되 만일 그들 의병이 패하는 날에는 슬프다. 저 간악한 왜적들은 옳고 그르고 간에 덮어 놓고 사람마다 폭도란 이름을 붙여 모조리 죽일 것이요, 집집마다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고 말것입니다. 그런 꼴을 당한 뒤에 한국 사람들이 무슨 낯으로 세상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총을 메고 칼을 차고 일제히 들고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기고 지고 잘 싸우고 못 싸우고를 돌아 볼 것 없이 한바탕 통쾌한 싸움으로 천하 후세에 부끄러운 웃음거리다 괴는 일을 면하게 합시다.

만일 그들이 애써 싸우기만 하면 세계 열강의 공론도 없지 않을 것이니 독립의 희망도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일본은 앞으로 5년을 넘기지 않고 러시아나 청나라, 미국 세 나라 가운데 한 나라와 반드시 전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한국에는 큰 호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한국 사람들이 만일 아무런 준비가 없다면 설령 일본이 그 싸움에 진다해도 한국은 다시 다른 도둑의 손 안으로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로써 한 번 의병을 일으키고부터는 계속하여 싸움을 그치지 않아 큰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요, 스스로 강한 힘으로 국권을 회복해야만 온전한 독립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그야말로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만사가 망하는 근본이요,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만사가 흥하는 근본이라’는 마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돕는 자는 하늘이 돕는다’고 하는 것이니 이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대로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겠습니까? 분발하여 힘을 내는 것이 옳겠습니까?“

안중근은 그렇게 말을 맺고 한 번 더 동포들의 분발을 촉구한 뒤 연단에서 내려왔다.

강연을 마친 안중근 일행은 그 날 밤 꼬르치르 마을에 있는 유경집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다. 유경집은 유승열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는데 한의사로서 소왕령(우수리스크)에 개업하였다가 그때는 포브라니야로 옮겨 살고 있었다. 전부터 알고 있던 안중근이 엄인섭과 김기룡을 데리고 찾아 가자 바갑게 맞아 주었다.

“나도 안공이 유세를 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워낙 의원을 비워 두고 갈 수는 없어 귀한 말씀을 듣지 못했소. 그러나 나라를 위하는 안공의 청정을 익히 아는 바라 대강은 짐작하는 바가 있소. 드디어 소문으로만 떠도는 의거가 연추에서 일게 된 듯하구려. 이왕 내 집에 오셨으니 지금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도 안공께서 직접 알려 주셨으면 좋겠소.”

유경집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저녁상을 차려내어 안중근 일행을 잘 대접한 뒤 그렇게 말했다. 안중근이 사양없이 그 말을 받았다.

“의병을 일으키는데 더 필요한 것을 어찌 일일이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총을 들고 대오에 설 수 없으면 軍器(군기)와 兵站(병참)이라도 힘을 보태 주십시오. 나라를 위하는 일념으로 자진하여 나서 주시면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유경집이 적지 않은 돈을 내 놓으며 말했다.

“얼마 되지 않지만 군자금에 보태 쓰도록 하십시오. 이 포브라니치나야에는 조선인이 많이 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이곳으로 옮겨 개업한 것도 오래지 않아 아직 살이가 넉넉지 못합니다.”

그때 누가 방문 밖에서 시원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제가 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손님들이 계시다. 인사라도 여쭙고 가겠다면 들어오너라.”

유경집이 그렇게 허락하자 문이 열리며 한 청년이 들어왔다. 열 일고여덟이나 될까? 부리부리한 눈매에 키가 훤칠했지만 얼굴에는 어딘가 아이 티가 남아 있었다.

“내 아들인데 이름은 동하라 하오. 올해 열일곱인데 나를 따라 의원 일을 배우고 있소. 요즘은 약재가 들고 남을 돌보는 게 일이오.”

유경집이 손님들에게 아들을 그렇게 소개했다. 그런데 안중근이 살펴보니 낯에 강연할 때 청중 가운데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안중근이 반가운 기분으로 그 일을 말하려는데 유경집이 인사를 마치고도 머뭇거리며 앉아 있는 아들 유동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달리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

“아버님, 제가 이 분들을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저 하나라도 의병이 되어 총칼을 들고 조국을 위해 싸우고 싶습니다.”

그 말에 유경집의 낯빛이 홱 변했다.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놈이 무얼 안다고 함부로 나서느냐? 의병이 된다는 게 어떤 일인지 알기나 하고 지껄이는 거냐?”

“저도 이미 나이 열일곱이 되었습니다. 장부 나이 열일곱이면 나라를 위해 죽어 아까울 게 없습니다. 낮에 저 안 선생님의 연설을 듣고 깨달은 바 있어 작정한 일이니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시끄럽다. 분수 모르고 끼어들어 덤벙대다가 네 몸 주고 국가대사까지 결딴내려 드느냐? 썩 나가거라.”

그러면서 목소리르 높이는 유경집의 어조는 팔사적인 떨림마저 느껴졌다.유경집이 허락하기는 틀렸다고 본 안중근도 부드러운 말로 거들었다.

“간악한 왜적은 그만큼 강성하여 우리 의병의 싸움은 십년, 백년을 기약하고 싸워야 할 긴 전쟁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나가는 것은 이겨 싸움을 끝내기 보다는 오히려 한몸을 죽여 앞으로 치러야 할 긴 싸움을 돋울 뿐이니 자네는 그때 우리를 이어 나가 싸워도 늦지 않다. 지금은 자네가 아버님의 허락을 받는다 해도 우리가 자네를 데리고 갈 수가 없다.”

그러나 어린 유동하의 씩씩한 기상은 안중근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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